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났을 때 나는 남쪽에 있었다
마음은 공복이었고 길은 허기졌다
저녁이 오자 해변의 외곽이 허물어지고,
세상은 객지라서 다 외로웠다
작은 빗방울 하나에도 쉽게 여수旅愁에 젖어
처음부터 비를 맞기 위해 이곳으로 향한 것 같다
항구의 불빛은 빗줄기보다 더 빨리 바다로 뛰어든다
회색 바다에 일렁이는 둥근 입들,
쓸쓸히 노래를 부른다
비를 만나면 이별도 당연하게 여겨져
유통기한을 지난 모든 추억이 밤바다를 휘감는다
당신은 어디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지········
여자만汝自灣 자욱하게 는개 가라앉는 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부정할수록
더욱 무겁게 내리는 비
지금 여수 밤바다에 내리고 있다
-여영현의 시집 [밤바다를 낚다], (천년의시작, 2018) 중에서 ‘여수에 내리는 비’
여영현의 시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을 시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바다’로 표상되는 ‘물’의 이미지를 통해 삶을 성찰하였다. ‘세상은 객지라서 다 외로웠다’라고 말한 시인은 광활한 곳을 항해하는 한 주체의 고독한 심연을 정밀하게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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