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지키는 것이 최고의 경쟁력인 시대
문화를 지키는 것이 최고의 경쟁력인 시대
  • 배동현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0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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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현 칼럼니스트
▲배동현 칼럼니스트

몇해전 EBS가 초등학생들에게 나무젓가락, 포크, 쇠 젓가락을 쓰게 한 뒤 뇌파를 조사했더니 쇠 젓가락을 사용할 때 집중력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억력과 정서를 담당하는 뇌의 기능도 30%~50% 더 활발해졌다. 아이들 식생활에서 포크 사용이 늘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데 손을 빼앗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손재주 코리안’의 DNA가 죽어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스포츠 국제대회에서 한국이 유난히 강한 종목들이 골프 양궁 배드민턴 핸드볼 하키 등 주로 손을 쓰는 것들이다. 한국인의 손 기술의 모태가 되는 게 젓가락 문화다.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쌀 문화권 국가들이 대부분 젓가락을 쓰지만 쇠 젓가락을 쓰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무거우면서도 가는 쇠 젓가락을 쓰려면 정교하고 힘 있는 손놀림이 필요하다. 한국어에는 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리키는 말들이 수없이 많다. 사람이 부족한 경우 흔히 ‘손이 모자란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을 때 ‘내 손 안에 있다’고 한다. 어떤 일과 관계를 끊을 때는 ‘손을 뗀다’고 한다. 뭔가 일이 잘 돌아가게 하려면 ‘손을 써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어려서 ‘할머니 손에’ 크기도 한다. 남의 잔꾀에 속았으면 그의 ‘손에 놀아난 것’ 이다. 이쯤 되면 손은 단순한 신체의 일부 차원을 넘어선다. 그러니 한국인만큼 손과 관련된 기술과 문화가 발달한 나라는 없다. 몇 년 전 미국에 이민 간 어느 주부가 국내 신문에 투고한 글이 생각난다. 자기 딸이 매일 백인 아이들에게 왕따 당했었는데 딸이 혼자 공기놀이 하는 걸 보고는 아이들이 그 환상적인 테크닉에 반해 앞 다퉈 접근해 오더라는 것이다. 실뜨기나 바느질, 뜨개질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자 놀이였다. 그렇다 보니 칸트는 “손은 눈에 보이는 뇌”라고 했다. 능숙한 젓가락질은 뇌의 발달과도 밀접하다 얼마 전 한국과 핀란드 초등학생들에게 “장난감이나 물건을 고치기 위해 망치로 못을 박아봤는가”라고 물었더니 핀란드 학생은 100% “해봤다”고 했는데 한국 학생은 “해봤다”는 학생이 15%에 불과했다. 컴퓨터가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뇌를 대신할 수는 없듯 기계가 손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 성능 좋은 상품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도 수제품(手製品)이 갖는 정교함과 인간의 냄새는 따를 수 없다. 스위스의 정밀 시계 산업을 떠받치는 힘은 바로 스위스의 뜨개질 문화라는 사실이다. 첨단기술은 기술대로 발전시키되 우리가 갖고 있는 ‘손의 경쟁력’의 문화는 계승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사랑채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자던 소년은 새벽마다 목청을 돋워 읽으시던 고문의 가락을 들었다. 눈을 감으면 그 소리는 어제 들은 듯 새록새록 평생을 따라다녔다. 구순의 한학자 손종섭 선생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다. “‘백이열전’ 읽은 것을 직접 녹음해두고, 밥 먹을 때도 듣고 책 보면서도 들었다. 자꾸 듣다 보면 글이 저절로 외워졌다. 의미는 늘 소리를 뒤따라오는 것이다. 소리를 내서 읽어보면 대번에 좋은 글인지 나쁜 글인지를 알 수가 있다. 좋은 글은 글자 하나하나가 빳빳이 살아 있고, 나쁜 글은 비실비실 힘이 없어 읽어도 소리가 붙질 않는다.” 옛날 국문과 선생께서 말씀해주신 고문을 외우던 방법이다. 옆집 총각의 책 읽는 소리에 마음이 설레 담을 뛰어넘은 처녀들의 이야기는 옛글 속에 심심찮게 나온다. 꿈 많은 사춘기 소녀에게 울타리 너머 목소리의 주인공이 왜 궁금하지 않았겠는가? 아이들은 부모가 읽어주는 동화책에서 모국어의 리듬을 처음 익힌다. 동서양 할 것 없이 책은 으레 소리를 내서 읽는 것이다. 산사(山寺)에 틀어박혀 아랫배에 힘을 주고 삼동(三冬) 내내 책만 읽다가 내려온 젊은이는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글을 지으면 겨우내 읽은 가락이 절로 붓끝을 타고 흘러나온다. 글공부에서 소리 내서 읽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들숨 날숨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면 좋은 글이 된다. 자꾸 꺽꺽하게 분질러지거나 목에 걸리면 나쁜 글이다. ‘관동별곡’이나 ‘3.1 독립선언문’, ‘소나기’ 같은 유명 작품들을 녹음하여 글과 함께 CD로 들려주는 책이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생각이 든다. 책 읽는 소리를 좀체 들을 수 없는 시대가 되고 보니, 집집마다 낭낭하게 글 읽는 소리가 그리워진다. 소리 내어 글 읽는 운동을 펼쳐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계승발전 시켰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낭독은 모국어의 가락을 익히는데 있어 가장 효율적인 우리의 문화다. 길가다 듣는 책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풍경은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흡족해 진다. 경쟁력이 으뜸인 이 시대에 우리의 훌륭한 문화를 찿아 경쟁력을 제고하는 노력이 필요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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