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던 ‘만국전도’, ‘양녕대군 친필’ 되찾았다
사라졌던 ‘만국전도’, ‘양녕대군 친필’ 되찾았다
  • 최유진 기자
  • 승인 2019.05.2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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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문화재청, 도난됐던 보물 제1008호 '만국전도' 회수
▲보물 제1008호 '만국전도(조선시대 세계지도)'
▲보물 제1008호 '만국전도(조선시대 세계지도)'

(내외뉴스=최유진 기자)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세계지도인 '만국전도'(萬國全圖)가 도난당한지 25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29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지수대)는 문화재보호법위반(은닉) 혐의로 A씨(50)와 B씨(70)씨를 각각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008호(7종 46점) 중 하나인 '만국전도'(조선시대 세계지도)와 함양박씨 문중 전적류(고서적) 116책, 양녕대군의 필체가 담긴 '숭례문'(崇禮門)과 '후적벽부'(後赤壁賦) 등 목판 6점(숭례문 2점, 후적벽부 4점)을 회수했다.

만국전도는 1661년(조선시대 현종 2년) 문신 박정설이 한문판 세계지리서 '직방외기'에 실린 만국전도를 토대로 채색·필사한 세계지도다.

조선시대에 지도 관리를 통상 관(官)에서 해왔던 점과는 달리 개인이 제작한 지도로 현재까지 민가에서 확인된 세계지도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만국전도'는 태평양을 중심으로 5대양·6대륙이 이어져있고, 바다와 육지가 각각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구분돼 칠해져 있다.

김성희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은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지도와 유사한 개념"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아마 세계가 어떻게 생긴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한문판) 세계지도를 필사·채색하며 세계 속 우리나라의 위치 등을 가늠했을 것"이라며 "조선 17세기 실학과 서학을 받아들였던 조선시대 지식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지도"라고 평가했다.

정제규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은 "(만국전도에) 울릉도는 표기됐지만 독도로 생각되는 표시는 없다"면서도 "예전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상도, 하도 개념으로 이해했다. 울릉도를 표현한 자체는 독도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7년 문화재청은 '함양박씨 정랑공파 문중 전적(보물 제1008호)' 중 만국전도, '고희 초상 및 문중 유물(보물 제739호) 등 문화재 5점을 도난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언론을 통해 발표한 바 있다.

만국전도는 1994년쯤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소재 함양박씨 문중에서 도난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해 8월 만국전도를 유통하려 한다는 첩보가 입수되면서, 문화재청과 공조 수사를 통해 추적에 나섰다. 당시 경찰은 판매하려 한 사람을 통해 '구매 희망자' 추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후 통신·계좌 추적을 통해 A씨를 같은 해 10월 말 검거했고, 만국전도를 회수할 수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만국전도와 고서적은 경북 안동의 한 식당 내부 벽지에서 숨겨져 있었다.

'숭례문'과 '후적벽부' 목판에는 조선시대 3대 왕인 태종의 장자 양녕대군의 생전 필체가 담겨있다.

▲브리핑 중인 지능범죄수사대 김근준 지능2계장.
▲브리핑 중인 지능범죄수사대 김근준 지능2계장.

해당 목판들은 2008년 10월쯤전남 담양 소재 양녕대군 후손의 재실인 몽한각에서 도난돼 11년 만에 회수됐다. 발견한 곳은 경기도 양평 소재 B씨의 비닐하우스 창고였다.

두 목판은 양녕대군의 유묵(遺墨)으로서 숭례문 목판의 경우 현존하는 유일한 목판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위원은 "후적벽부 목판 끝 부분을 보면 '세상에 양녕대군의 친필로 알려진 것은 숭례문 3자와 후적벽부를 쓴 초서, 이렇게 2개'라는 내용이 있다"면서 "그래서 시간이 오래 지나 목판들이 없어질 것을 두려워해 집안 후손들이 담양 몽한각에서 새로 새긴다는 말까지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19세기 조선의 수도를 상징하는 4대문 중 가장 대표적인 남대문에 걸린 현판은 양녕대군이 쓴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있었다"면서 "이에 따라 후손 집안에서 목판을 새기기까지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8년 숭례문이 화재로 멸실된 후 복원 과정에서 '숭례문' 탁본이 쓰였는데, 이 역시 양녕대군 후손에 의해 제작된 것이라고 정 위원은 전했다. 이번에 회수한 목판 역시 해당 탁본을 토대로 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후적벽부는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겨울 달밤의 적벽강에서 두 손님과 쓸쓸한 정감을 읊은 한시를 양녕대군이 초서체로 작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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