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왜 그린란드인가?
지금 왜 그린란드인가?
  • 모지환 기자
  • 승인 2020.01.0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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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패권다툼 격전장이 된 그린란드
▲Ilulissat, Greenland. Kertu. Shutterstock
▲Ilulissat, Greenland. Kertu. Shutterstock

세계 최대의 섬 그린란드 영토 논쟁

덴마크령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인 그린란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매입제안으로 세계적 화제로 부상했다. 농담 같은 제안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정학적, 경제적 가치가 높아진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중간의 패권다툼이 숨어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매입 의사에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가 “터무니없다”며 불쾌감을 표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프레데릭센 총리가 그린란드 거래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며 예정됐던 덴마크 방문을 전격 취소해 버렸다.

외교적 비화가 돼버린 이 당혹스런 해프닝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그린란드 영토 매입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5일 백악관 참모들에게 그린란드 매입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WSJ 보도가 나온 뒤인 18일 트럼프 대통령은 뉴저지주 모리스타운 활주로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린란드 매입 관련 보도에 대해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소유하고 있고, 우리는 덴마크와 동맹이다. 미국을 위해 전략적으로 흥미로운 것”이라고 말하며 사실상 그린란드 매입 지시설을 인정했다.

이에 대해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그린란드를 방문해 기자들에게 “그린란드는 자치령이기 때문에 덴마크 소유가 아니며 매각 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1979년 그린란드는 자치권을 획득했으며 2009년 국방과 외교를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덴마크와 분리되어 거의 독립국이 되었다.

▲An aerial view of Oqaatsut. Image by Jonas Bendiksen. Magnum Photos. Greenland, 2018.
▲An aerial view of Oqaatsut. Image by Jonas Bendiksen. Magnum Photos. Greenland, 2018.

덴마크 정부는 명목상으로나마 그린란드가 덴마크의 일부로 남아있길 원한다. 그린란드에 매장된 엄청난 양의 자원을 절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린란드 정부에 주민 1인당 1천만원 이상 보조금을 주면서 어떻게든 덴마크령으로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문제는 그린란드가 독립국으로 가려고 하지만 현재 그린란드의 독립 기반이 약하고 국제적 지위도 매우 어정쩡하다는 점이다. 그린란드는 대외적으로 덴마크 식민지배 300주년이 되는 2021년 이전까지 완전독립을 목포로 삼고 있지만 현실은 불투명하다.

그린란드가 독립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풍부한 자원인데 최근 유가 하락 등으로 타격을 입기도 했으며, 덴마크로부터 받는 그린란드 예산의 60%에 달하는 5억9100만 달러(약 7000억원)의 보조금을 포기하기에도 경제기반이 약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덴마크 정부가 그린란드 보조금 지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틈새를 파고 들어가 그린란드 매입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The town of Ilulissat, Greenland's third largest, with a population of 4,400. Image by Jonas Bendiksen. Magnum Photos. Greenland, 2018.
▲The town of Ilulissat, Greenland's third largest, with a population of 4,400. Image by Jonas Bendiksen. Magnum Photos. Greenland, 2018.

천연자원의 보고이자 전략적 요충지

그린란드는 면적 217만㎢에 이르는 세계 최대 섬으로 남한의 21배, 미국의 4분의 1에 달한다. 그린란드는 인구 5만7천명으로 그중 88%가 이누이트(에스키모) 원주민 혹은 이누이트-유럽 혼혈이다. 그린란드(Greenland)라는 이름과 달리 영토의 84% 이상이 얼음으로 뒤덮인 동토의 땅이고 초원은 영토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그린란드라는 이름은 중세시대 이곳에 정착한 바이킹이 지은 이름이다. 바이킹 이주 집단은 그린란드에서 정착 가능한 땅을 발견해 정착했는데 이들은 녹색의 땅이라는 의미로 Grœnland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것이 국제적인 명칭으로 널리 퍼졌다. 바이킹의 그린란드 정착 신화를 다룬 <붉은 에이리크의 사가(Eiríks saga rauða)>에 따르면 초기 정착자인 에이리크가 다른 이주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마치 풍요로운 땅인 것처럼 보이려고 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1721년 덴마크의 한스 에게데가 현재 그린란드 최대 도시인 누크(Nuuk)의 전신 고드호프를 세웠으며, 19세기에 이르러 덴마크령이 되었다. 덴마크의 식민지배 이후 덴마크 국토로 편입됐다가 1979년 자치권을 획득했고 2009년 6월 21일에 제한적 독립을 선언해 보다 고도화된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린란드의 자치권 확대를 가속화시킨 것은 무엇보다도 그린란드의 동토층 아래 매장돼 있는 풍부한 지하자원이다. 영토의 대부분이 얼음에 덮여있어 그동안 이를 개발하지 못했는데 근래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지하자원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지면서 자원개발과 독립여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미국 지질조사국이 추정한 바에 따르면 그린란드에는 전 세계 매장량의 각각 13%, 30%에 달하는 원유와 천연가스가 묻혀있다. 금, 납, 아연, 우라늄 등 비철금속도 풍부하고 반도체, 휴대전화 등 첨단제품 제조에 없어서는 희토류가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희토류는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의 히든카드이기도 하다.)

경제가치에 더해 그린란드의 지정학적 가치도 급부상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해가 녹으면서 북극 항로가 열렸기 때문이다. 북극항로를 이용해 한국에서 유럽까지 운송할 경우, 말라카해협과 수에즈운하를 거쳐 가는 기존 항로에 비해 거리로 7000km, 시간으로 10일 정도를 단축할 수 있다.

▲Greenland’s unique topography is defined by huge icebergs and looming mountains(scmp.com)
▲Greenland’s unique topography is defined by huge icebergs and looming mountains(scmp.com)

미중간 패권다툼의 새 무대

사실 미국이 전략적 요충지인 그린란드 매입을 시도한 것은 오랜 역사를 갖는다. 1867년 앤드루 존슨 대통령이 매입제안을 했다가 거절당하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잠시 미국이 점령하기도 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에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알래스카 조약 때처럼 1억 달러에 그린란드 매입하겠다고 덴마크에 제안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그린란드에 공군 기지를 세우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린란드의 군 요충지적 중요성을 간파했던 미국은 1953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덴마크와 공동방위협정을 맺고 그린란드 툴레에 공군기지를 설치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중국이 경제·군사 분야에서 세계파워 넘버2로 급부상하면서 패권을 노리자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고, 두 국가가 충돌하는 격전장도 더욱 확대되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600년 전 정화의 원정대가 개척한 바닷길과 고대의 육상 실크로드를 현대판으로 재구축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에 야심차게 매진하고 있으며 그 중 한 곳이 그린란드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에게도 그린란드는 경제적, 지정학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북극항로까지 연결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중국은 전략적 요충지로 떠오른 북극해를 지배하기 위해 그린란드를 자국의 영향권 아래 두는 게 필수적이다.

중국 정부가 2018년 1월 발표한 ‘북극정책백서’에는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북극항로와 연결시킨다는 계획이 나와 있다. 것이다.

중국정부는 그린란드에 만연한 반미감정을 토대삼아 진출을 시도해오고 있다. 2017년 그린란드 자치정부는 대형 제트여객기가 이용할 수 있는 3개의 국제공항을 건설할 자금을 덴마크에 요청했으나 덴마크 정부는 타당성이 적다고 판단해 거절했다.

이에 그린란드 자치정부는 중국 국영은행에 신공항 건설 투자를 요청했고 중국은 중국 건설사가 신공항을 짓는다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그린란드에 공군기지를 운용하고 있는 미국의 강력한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그린란드 신공항은 2019년 2월 중국 대신 덴마크로부터 자금을 받아 건설하기로 했다.

▲Climate scientist Steffen Olsen took this picture while travelling across melted sea ice in north-west Greenland
▲Climate scientist Steffen Olsen took this picture while travelling across melted sea ice in north-west Greenland

그린란드의 미래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매입제안은 실구매 시도보다는 그린란드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중국에 대한 견제구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그린란드인의 반미감정이다. 이러한 반미감정은 미군이 주둔지에 배치한 화학무기에서 비롯된 환경문제 때문인데 미국은 이를 은폐하다가 2005년에 이르러서야 이를 인정했고 제대로 된 배상도 하지 않았다.

또 1960년대 툴레 기지에 배치된 B-52 폭격기 1대가 툴레 기지 인근에 추락하였는데 이때 핵폭탄 4발 중 1발이 미 회수된 상태로 인근 바다에 그대로 있는 상태다.

이렇듯 반감이 많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결례를 범하면서 그린란드를 돈으로 매입하겠다는 제안을 하는 바람에 그린란드의 반미감정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은 이 틈을 노리고 있다. 국내총생산의 70%를 덴마크에 의지하고 있는 그린란드 또한 덴마크로부터의 완전독립을 위해 중국 자금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중국 자금이 대거 유입되면 덴마크에 대해 경제적 자립을 선언할 수 있고 본격적인 경제개발에 나설 수 있을 걸로 기대하고 있지만 미국의 강한 견제로 결과를 예단하기는 힘들다. 그린란드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미중 패권다툼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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