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의 추억
겨우살이의 추억
  • 배동현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1.0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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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배동현
▲시인 배동현

(내외방송=배동현 칼럼니스트) 남의 눈치 보며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흔히 얌체족이라고 부른다.

인간세속에 있어 얌체족들이 선량하고 순박한 사람을 속이듯 이 나라에 있어 정치판에도 그런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자기자식을 공짜로 키운다. 멍청한 박새가 이를 모르고 내내 헛고생하며 뻐꾸기를 지극정성을 다해 키운다. 그래서 뻐꾸기는 지나친 얌체족의 최상급으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나무에 있어 제일 얌체는 누구일까? 나무의 생태를 조금 아는 이라면 오래 생각할 것 없이 겨우살이라고 답할 것이다. 겨우겨우 간신히 살아간다 하여 겨우살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또한 겨울에도 푸르다 하여 겨울살이가 겨우살이로 되었다는 두 가지의 해설이 있다. 한자로 동청(涷靑)이라고 하니 겨울살이에서 유래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욱 타당 할 것 같다. 주로 참나무 종류의 큰 나무 위 높다란 가지에 붙어 자라는 ‘나무 위의 작은 나무’로서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까치집이다. 모양은 풀 같지만 겨울에 어미나무의 잎이 다 떨어져도 혼자 진한 초록빛을 자랑한다하여 늘 푸른 나무로도 분류된다. 가을이면 굵은 콩알만 한 노란 열매가 달린다. 가을 햇살에 비치는 열매는 영롱한 수정처럼 아름답다. 열매는 속에 파란 씨앗이 들어있고 끈적끈적하며 말랑말랑한 육질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서 산새 들새가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배불리 열매를 따먹은 산새가 다른 나뭇가지에 앉아서 ‘실례’를 하면 육질의 일부와 씨앗은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배설된다. 마르면서 마치 방소성 접착제로 붙여놓은 것처럼 단단하게 가지에 고정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끄떡없이 씨앗을 보관할 수 있는 철저한 얌체족의 유전자를 자랑한다.

겨우살이는 알맞은 환경이 되면 싹이 트고 뿌리가 돋아나면서 나무껍질을 뚫고 살 속을 파고 들어가 어미나무의 수분과 필수 영양소를 빨아먹고 산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지 잎에서는 상당한 양의 광합성으로 겨울나무에 모자라는 영양분을 보충해 준다. 사시사철 놀아도 물 걱정 양식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아무리 세찬 겨울바람이 몰아쳐도 겨우살이는 흔들흔들 그네를 타며 마냥 즐겁게 산다. 땅에다 뿌리를 박고 사는 다른 나무들과 필사적인 경쟁을 하는 어미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분통 터질 노릇일 것이다. 뽑아내 버릴 수도 없고 어디다 하소연할 방법조차 없으니 고스란히 운명처럼 당하고만 살아간다. 겨우살이의 타고난 얌체 짓을 누가 좋아 하겠는가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 멋진 식물이다,

변산의 채석강, 충남의 안면도가 서해안의 ‘3대 낙조’지대로 유명하다. 노을은 햇빛이 수증기와 미세 먼지에 산란돼 생기는 자연현상이다. 저녁 무렵 태양이 지평선 가까이로 갈수록 노란색에서 주황으로 그리고 빨강으로 점점 더 화려하게 변신한다. 석양에 물든 노을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답다.

사람들은 낙조(落照)의 아름다운 황홀경을 맛보기위해서 명승지를 찾는다. 언젠가 인생의 만양(晩陽)에 선JP가 자신을 ‘지는 해’라면서도 “서쪽하늘을 벌겋게 황혼으로 물들이고 싶다”고 했다.

당시DJ와 연대하기위해 다시 공조키로 한 직후에 한 말이니 겨우살이 정치를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JP의 ‘벌겋게 물들이고 싶다’는 표현에서는 ‘황홀한 노을’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붉은 욕망’의 노추(老醜)가 연상돼 우리를 힘들게 했던 적이 있었다. 조락(凋落)이란 낱말은 ‘잎이 시들어 떨어짐’이란 뜻도 있지만 ‘세력 따위가 차차 쇠하여 보잘것없이 됨’이란 풀이도 있다.

인생은 조령(凋零)이지만 처지는 조락이 아님을 강조하고자 낙조를 끌어들인 건 아닐까. 태양이 아니고야 누군들 하늘을 붉게 물들일 수 있으랴. 그런데 JP는 그 높은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 싶다고 했으니 그것은 ‘과욕’ 아니면‘노욕(老欲)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해 세밑에 JP는 ‘조반역리(造反逆理)’라는 휘호를 썼다. ‘기존질서를 뒤엎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과연 그러했던가? “나라와 사회의 규범과 섭리를 어지럽히지 말고,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작했다고 설명했다. 어쩌면 JP의 말처럼 그가 말년의 세상을 따사롭게 물들이는 노을이었다면 그야말로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배동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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