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떠나는 문희상 국회의장,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정계 떠나는 문희상 국회의장,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 정영훈 기자
  • 승인 2020.05.21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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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퇴임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은 문희상 국회의장 (사진=연합뉴스)
▲ 21일 퇴임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은 문희상 국회의장 (사진=연합뉴스)

(내외방송=정영훈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은 21일 퇴임 기자회견에서 “고단했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며 55년의 정치인생 소회를 밝혔다.

또 문 의장은 퇴임과 동시에 정계 은퇴를 예고했다. 문 의장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서 있는 지금 몹시 떨린다”며 “국회의장직뿐만 아니라 나의 인생 자체였던 국회와 정치를 떠난다는 두려움일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사실 심정이 복잡했다. 김종필 전 총리께서 말씀하셨던 ‘정치는 허업’이라는 말이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나날이었다”면서도 “아쉬움은 남아도 나의 정치인생은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자평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에서 문 의장은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가장 슬펐던 순간으로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일을 꼽았다.

특히 김 전 대통령과의 1979년 서울 동교동 지하서재에서의 첫 만남과 1997년 김 전 대통령 당선 상황을 떠올리며 “제 목표는 모두 다 이뤄졌다고 그때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돌아보니 덤치고는 너무 후한 정치인생을 걸어왔다. 무려 다섯 정부에서 제게 역할이 주어졌고,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21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아들 문석균씨의 ‘지역구 세습 논란’엔 “쓰라림을 느꼈다”고 표현했다. 또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2년과 21대 국회의 과제로 ‘통합’과 ‘개헌’을 제시하며, 그 일환으로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언급했다.

그는 “만약 누군가 건의할 용의가 있다면 과감히 통합의 관념으로 확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적기”라며, “물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상당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타이밍을 놓치면 놓칠수록 의미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사면을 겁내지 않아도 될 시간이 됐다는 뜻”이라며 “그것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 판단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정농단 사태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려면 제도적으로 완벽하게 (20대 국회) 하반기에 했어야 했다. 촛불을 완성해야 했다. 제도화의 첫째는 개헌”이라며, “총리 권한을 보완해 ‘책임 총리’로 가자는 게 내 주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대통령령으로 고친다는 것은 무리할 정도로 많이 했다. 아주 잘한 것”이라며 “국회가 법제화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문 의장은 이날 의정부 시민들을 향해서도 “(위기의 순간) 실의에 빠져있던 저를 일으켜 세운 원동력을 고향 의정부 시민들의 손이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퇴임 이후 행보에 대해서는 “진짜 꿈은 단층집에서 살고 싶다. 10평짜리 꽃밭을 갖는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지난 2018년 7월 국회의장에 오른 문 의장은 오는 29일 제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임기를 마치게 된다.

그는 1945년 3월 경기 의정부 출생으로 경복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학생운동에 몸담았다. 1987년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 초대회장을 맡아 정치무대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고,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 당선됐다.

고(故)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복심’으로 활약했으며, 제19대 국회에서는 비상대책위원장을 두 번이나 맡아 흐트러진 당을 다잡는 구원투수로 활약했다. 이로 인해 ‘겉은 장비, 속은 조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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