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전의 불교, 당신은 아직도 갱년기이신가
2500년전의 불교, 당신은 아직도 갱년기이신가
  • 최준혁 기자
  • 승인 2020.05.22 1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동현 칼럼니스트
▲배동현 칼럼니스트

(내외방송=최준혁 기자) 몇 해 전 4박5일의 일정으로 불교의 성지 미얀마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미얀마의 이른 새벽은 열대지역임에도 쌀쌀했다. 말로만 듣던 아침공양을 볼 요량으로 새벽기도 겸 양곤(미얀마의 수도)에 있는 대표적 위파사나 수행도량인 ‘마하시 수도원’을 방문했다. 열대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가는 빗줄기가 안개처럼 흩어진 새벽공기는 상쾌할 만큼 서늘했다.

6시, 조용한 수도원을 흔드는 요령소리. 자주색 가사를 걸친 스님들이 발우(그릇)를 하나씩 안고 수도원 입구로 모여 한 줄로 늘어섰다. 묵언 가운데서도 까치의 울음소리만이 경내의 적막을 깨우고 있었다. 50여명이 모이자 스님들이 나지막이 경전을 암송하기 시작한다. 행렬은 탁발을 위해 수도원을 나섰다. 남방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삶의 표본이다, 필요한 모든 것을 보시(사찰이나 승려에게 물품을 제공하는 일)에 의존하는 걸승(거지스님)의 삶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 출발선이 탁발이다. 그들이 지닌 것은 말 그대로 가사 한 벌과 얇은 플라스틱 발우 하나뿐이다. 이들은 수도원에 모여 수행에 전념한다. 사찰이나 사원을 소유하거나 운영하지도 않는다. 돈과 관련된 모든 일로부터 격리돼 있다. 미얀마 승려들이 이같이 초기 불교의 가르침을 고수할 수 있는 것은 전 국민의 90%에 이르는 볼교 신자들의 독실한 후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탁발 행렬이 동네 어귀로 접어들자 중년 부인 하나가 작은 솥단지를 들고 반갑게 맞이한다. 주걱으로 밥을 퍼 걸어가는 스님들의 발우에 한 주걱씩 능숙하게 담아준다. 스님들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도록 하기위한 능숙한 조치가 놀랍다. 마하시 수도원의 경우 스님 한 명에 신도 두 명이 후원인으로 등록해 칫솔에서 비누까지 모두 제공해주는 것이 관행이다. 스님들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수도원을 찾아오는 신도들이 줄을 잇는다. 승려가 아니더라도 미얀마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거의 의무적으로 출가(出家)의 경험을 체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체험이 많을수록 존경받는 사회가 미얀마다. 탁발승들이 떠난 수도원 마당. 비구니들과 일반 수행자들이 경행(걸으면서 하는 수행)하는 모습이 슬로비디오를 보는 것 같이 이채로웠다. 위파사나 수행은 앉아서 하는 참선과 경행을 반복한다. 경행하는 수도자는 자신의 발과 몸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매우 천천히 움직인다. 몸의 움직임을 관찰함으로써 마음을 보고, 그 속에서 무아(無我)와 무상(無常)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유학을 온 한 스님은 아예 남방불교로 출가해 법명도 남방식으로 지었다 한다. 5개월 전 경남 김해의 남방불교 사찰인 다보선원에서 출가하자마자 이곳으로 왔다는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서 이쪽으로 출가했다”고 자랑했다. “비록 몸은 힘들지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 더욱 열심히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위파사나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고, 또 깨달음을 얻기 위해 더 효율적인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반가워했다. 그래서 그는 남방불교를 ‘근본불교’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얀마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의 남방불교에서 행해지는 수행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흔히 북방의 대승불교와 대비해 남방의 소승불교는 남방불교식수행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더욱 충실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편다. 원시불교의 행태에 더욱 충실하기 때문에 믿음의 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 수행법이 ’위파사나‘란 주장이다.

고대인도어로 위파사나는 ’바로본다‘는 의미다. 수행자가 자신의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세밀히 들어다 봄으로써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수행법이다. 위파시나 수행의 본 고장인 미얀마엔 이천오백 년 전의 불교가 살아 숨쉬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발우 하나만 들고 수행에 전념하는 남방불교의 진수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식사 물품 등 모든 것을 보시에 의존하며 부처수행원형에 가깝게 가는 무소유의 삶. 스님 1명당 신도 2명꼴 후원으로 坐禪(좌선)하며 맨발로 걸으며 徑行(경행)을 종일 반복하는 수행을 실천하는 미얀마의 마하시 수도원의 승려들! 부처님의 고난의 수행에서 그들이 기어코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양곤의 대표적 수행도랑인 미하시 수도원의 元始佛敎化(원시불교화)와의 대화, 현제 한국불교와의 차이는 얼마나 클까? 2500년전의 불교가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달빛 쏟아지는 밤에 꿈을 꾼다. 비틀거리는 환영을 본다. 당신은 아직도 건강하신가 아니면 여적 갱년기 이신가.



오늘의 이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