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이라 하지 않는다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이라 하지 않는다
  • 전기복 정책위원
  • 승인 2020.07.01 13:2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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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방송=전기복 정책위원) “별들 가운데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기댄 채 잠들어 있다”

유명한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의 한 대목이다. 소설이 발표되고 약 16년 후 고흐는 그림으로 또 다른 『별』을 창조한다.

도데의 고향이자 소설의 배경이 된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론강을 사이에 둔 니므와 생레미. 고흐는 생레미 외곽에 있는 생폴드모졸 요양원(이하 생폴)을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그곳 야경을 보고 동생 테오에게 ‘별이 빛나는 하늘’을 갖고 있다며, 편지를 쓴다. 태양이 쉬는 시간 하늘은 별이 되고 고독한 화가의 마음은 그림이 된다. 고흐의 그림1 『별이 빛나는 밤』이 태동하는 순간이다.

고흐는 1888년 12월 23일 저녁 본인의 귀를 잘랐고, 그 후 잦은 발작으로 아를병원에 입․퇴원을 한다. 이듬해 3월 아를 시민 30여명이 고흐를 다시 입원시키라며 탄원서를 시장에게 제출하고, 경찰에 의해 노란집은 폐쇄된다. 우여곡절 끝에 노란집으로 다시 돌아온 고흐는 이제까지 자신의 생활비를 지원하던 동생 테오의 결혼 소식을 접하고 되풀이되는 발작에 요양원행을 결심하게 된다. 그렇게 고흐는 1889년 5월 8일 생레미 외곽에 있는 생폴에 입원한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6월 중순까지 생폴 독방 2층 쇠창살이 달린 창문 등 제한된 공간에서의 생활이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익어가는 밀밭, 풍성히 자란 올리브 숲, 하늘 높이 치솟은 사이프러스 그리고 알필산맥의 푸른빛까지 햇빛 닿는 곳 하나하나는 칼라 인쇄판처럼 머릿속 깊이 각인된다. 밤이면 별 헤다 은하수에 빠져버린 수많은 기억들은 슬프고도 아름답고 지독히도 고독하고 빛나는 조각들로 마음에 간직됐을 것이다.

생폴에 입원하고 약 한 달간은 건물 밖에서 그림 그리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야간에도 그림을 그릴 여건이 못 됐다. 그래서 고흐는 이전의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던 것과는 달리 낮 시간에 여유가 있는 방을 별도로 배정받은 스튜디오에서 『별이 빛나는 밤』(그림1)을 그린다. 지난해 고갱과 함께할 때 상상하며 그리는 것을 낯설어했던 그가 제한된 환경을 극복하며 시도한 그림이다.

그림의 전체적인 구도를 보자. 전경의 마을이나 산맥보다 배경의 달과 별을 중심으로 한 하늘이 그림의 대부분이다. 하늘과 닿는 공제선을 낮게 표현한 것이다. 라위스달의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또 전경 사이프러스는 어떤가! 배경을 가릴 뿐 아니라 너무 크게 묘사된 느낌을 준다. 밤의 고요속에 용트림하듯 휘감아 오르는 사이프러스는 고흐 자신일까……. 그림을 통해 영원을 꿈꾸는 화가의 내면을 보는 듯하다.

생폴에서 북쪽인 생레미 너머로 산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1에는 알필산맥이 보인다. 그가 일주일 전쯤 완성한 그림2 『생폴요양원 뒤쪽의 산맥 풍경』에서 묘사된 산 능선과 닮아있다. 실제 산은 생레미 반대쪽에 위치해 있다. 부재한 산을 끌어온 것은 우리의 좌청룡 우백호 믿음같이 생레미를 포근히 감싸 안은 느낌을 주는 역할을 한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본 장면들을 편집해 아름다운 평온을 창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드로잉(그림3) 『별이 빛나는 밤』은 회화(그림1) 『별이 빛나는 밤』을 완성한 후 펜과 잉크로 동생 테오에게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 그렸고 1889년 7월 2일 편지와 함께 동생 테오에게 보내진다. 자세히 보면, 세 집에서 초여름 늦은 저녁밥(이른 아침밥도 좋겠다.)을 짓는 듯 연기가 피어오른다. 삶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가 함께 솟는 듯하고 생동감을 더해 준다. 그러나 회화(그림1) 『별이 빛나는 밤』에서는 생략됐다. 시간상(초저녁 밥짓는 시간)으로든 시각적(피어오르는 연기의 역동성)인 면에서든 한밤중의 이미지와 차분한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피어오르는 연기를 삭제하는 상상력의 발휘나 기억의 편집이 필요했을까.

가가호호 사람의 온기가 노란 불빛이 돼 창문을 밝히고 있다. 하늘까지 닿는 뾰족한 첨탑을 자랑하는 생마르탱 성당의 불빛은 꺼져있다. 실제에선 첨탑 옆 돔형태를 한 건물도 시옷자지붕으로 그려 종교적 색채보다는 주변집들과 어울리게 표현됐다. 6월 초순경 외출이 허락되고 요양원 밖 어디에선가 생레미를 내려다보며 그린 『생레미 풍경』(그림4)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땅에선 10여채로 단순화된 집들, 아를여인들의 올림머리 모양새인 마을 주변의 올리브숲, 조용히 일렁이는 파도 같은 산, 모든 선들이 곱게 그어졌다. 의지를 절제한 선 처리는 밤의 느낌을 더 깊게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고흐 자신은 “선에서 의지와 감정 부족으로 습작이며 좀 과장된 느낌을 줄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반면, 전경 좌측의 사이프러스는 하늘 깊숙이 내면의 에너지를 뒤틀며 나아갔다. 독방에서 불면의 밤을 보내며 수없이 별을 응시했을 고흐의 내면을 보는 느낌이다. 죽음 아닌 방법으로 별에 갈 태세로 마치 사이프러스가 천상의 기관차인양 별에 닿게 그렸다. 불 꺼진 성당과 돔 건물의 변형, 기성종교보다 자연과 그림 등에서 위로와 위안을 갈구했나 보다. 하늘에는 태양의 아우라에 버금가는 듯한 그믐달과 열한 개의 별, 사이프러스 나무와 살짝 닿은 달 다음으로 밝게 빛나는 샛별.

천문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889년 6월 중순엔 고흐의 방에서 볼 수 있는 동쪽 하늘에 보름달에 가까운 달이 떴을 것이라고 한다. 다소 감성에 어울리지 않는 접근이라는 생각이지만 사실일 것이고 고흐의 그림에 나타난 그믐달과는 상반된다. 그래서 나는 상상까지는 아닐지라도 기억의 총합인 그림1 『별이 빛나는 밤』이라고 말한다.

하늘 한가운데를 소용돌이치며 휘감아 나아가는 흰색 띠며 산등선 위에 떠 있는 희고 노란빛 넓은 나선은 은하수나 구름, 안개를 그린 것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민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묘사한 드로잉(그림3) 『별이 빛나는 밤』을 다시 한 번 더 보게 된다.

나의 어릴 적 시골마을 초여름 저녁에는 저녁밥 짓는 아궁이마다 시작된 연기는 굴뚝을 타고 지붕이며 산중턱에 걸렸다가 어둠이 짙어지는 시간이 되면 어느덧 산등성이 위에서 구름인 듯 길게 흰색 띠를 이루고 천정 위로 뜨는 은하수를 맞이하는 풍경이었다. 여름날의 서정과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장면이다. 그래서 나는 여름 감성과 잘 통하는 그림 한두 번째로 『별이 빛나는 밤』(그림1)을 꼽는다.

고흐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면 캔버스 모퉁이에 서명을 남기곤 했다. 『별이 빛나는 밤』(그림1)에는 서명이 없다. 의미 없는 그림 정도로 생각해 동생 테오에게 보낼 그림목록에도 기입하지 않고 ‘밤 습작’이나 ‘야간 효과’ 등으로 불렀다. 고흐 사후에는 상당 기간 『별』(그림1)로 통칭되었고 3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다양한 전시회를 통해서 그림이 알려지면서 좀 더 감성적인 제목인 『별이 빛나는 밤』(그림1)으로 불리게 된다.

“나는 별을 보면 늘 꿈을 꾼다” 고흐의 말이다. 그는 하늘의 별을 보고 『별이 빛나는 밤』이라 불리는 그림1을 통해 사후 세상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고 영원히 기억되는 화가로 별에 닿는 꿈을 이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별 하나가 캔버스에 내려와서 현대인의 고독한 영혼을 깨워주고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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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정 2020-07-02 16:36:18
잘 읽고 갑니다^^

온전 2020-07-01 19:18:46
여름엔 역시 별이 빛나는 밤이죠.
goo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