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모습을 예술 작품으로…시각과 청각으로 과거의 삶 재구성
100년 전 모습을 예술 작품으로…시각과 청각으로 과거의 삶 재구성
  • 이지선 기자
  • 승인 2020.12.1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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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집처럼 꾸며놓은 작업실과 이외의 전시실 눈길
▲ 편집실 등 모든 전시를 하나의 집처럼 꾸며 그 안에 한 데 모아놓았다. (사진=이지선 기자)
▲ '황금광시대' 전시실. 편집실 등 모든 전시를 하나의 집처럼 꾸며 그 안에 한 데 모아놓았다. (사진=이지선 기자)

(내외방송=이지선 기자) “지금 조선은 그야말로 황금광시대다. 평안도나 함경도나 전라도나 어디를 물론하고 산이 있고 바위가 있고 흙이 있는 곳곳에는 망치를 든 탐광꾼이 없는 곳이 없고 양복쟁이, 상투쟁이, 어른, 어린애 할 것 없이 눈코 박힌 사람이 두셋만 모여 앉은 자리에서 금광 이야기 나오지 않는 곳이 없으리만치 금광열이 뻗치었다.”

1934년 목병정이 ‘삼천리’에 쓴 글이다. 1920-30년대는 황금에 미친 시대였다.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의 논평 등에서는 계급이나 학식 등을 가릴 것 없이 모두 금덩이를 찾아 굴을 팠던 시기를 그려내며 풍자하곤 했다.

일민미술관은 1920 기억극장 ‘황금광시대’를 10월 8일부터 12월 27일까지 개최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동시대 예술가들이 선보이는 5개의 씬으로 구성된 프로젝트형 전시회다. 1920-30년대 발행한 신문이나 잡지의 기록을 통해 100년의 시공간을 이동하며 산책자의 시선으로 잊혀지거나 삭제된 당대 사건들을 재구성하는 포럼의 장을 펼친다.

▲ 그룹 뮌의 '픽션 픽션 논픽션'. 보이는 것은 어둠 속의 저 LED 프레임들 하나뿐. 청각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사진=내외방송 이지선 기자)
▲ 그룹 뮌의 '픽션 픽션 논픽션'. 보이는 것은 어둠 속의 저 LED 프레임들 하나뿐. 청각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사진=내외방송 이지선 기자)

첫 번째 씬(1전시실)에서는 그룹 뮌 MIOON의 신작 ‘픽션 픽션 논픽션’을 만나볼 수 있다. 시각보다는 청각을 위한 예술이었다. 일본식과 서양식을 절충해 섞어놓은 듯한 1920년대 건축양식의 주택을 얇은 LED 프레임으로 구조화했다. 그 주택에 거주했던 피아니스트 윤성덕의 1933년 잡지 ‘신여성’에 실린 인터뷰를 생생하게, 바로 눈앞에서 기자가 인터뷰하듯 하는 장면을 오로지 귀(헤드폰)로 감상할 수 있다. 눈앞에 펼쳐진 건 특별히 상징적이거나 클라이막스 때마다 효과로 번쩍번쩍 빛나는 어둠 속의 LED 프레임뿐이다. 매우 신기하면서도 집중도가 엄청나지는 전시였다.

두 번째 씬(2전시실)에서는 안무가 이양희가 건축가 표창연, 시노그라퍼 여신동 등과 협업한 공간 설치 작업을 통해 100년 전 살롱을 재현한 가상의 카바레 ‘클럽 그로칼랭’을 무대로 해 신작 ‘연습 NO.4’, ‘언더그라운드 카페’를 선보인다. ‘언더그라운드 카페’는 1997-8년 동명의 공간에서 벌어진 ‘림보’의 공연 영상 기록을 보여준다. 이양희의 작품 ‘연습 NO.4’는 1920년대 서구 무용과 전통 무용의 접점을 이뤘던 ‘신무용’으로부터 파생된 레퍼토리를 기반으로 신체의 움직임과 원칙, 기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 이양희의 작품 '연습 NO.4'. 마치 바로 앞에서 무용 안무를 선보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사진=이지선 기자)
▲ 이양희의 작품 '연습 NO.4'. 마치 바로 앞에서 무용 안무를 선보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사진=이지선 기자)

세 번째 씬(3전시실)은 조선희의 장편소설 ‘세 여자’(2017)를 전시로 구현했다. 이 소설은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라는 당대의 신여성이자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여성의 관점에서 그동안 버려지고 채워졌던 기록들 사이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 또 하나의 물건을 만들어냈다. 특히 볼만했던 것은 그 중 허정숙이 편집장으로 일했던 1922년 창간된 잡지 ‘신여성’의 편집실을 재현한 것이었다.

▲ '신여성'의 편집실 재현. (사진=내외방송 이지선 기자)
▲ '신여성'의 편집실 재현. (사진=내외방송 이지선 기자)

관객들은 1920년대 소품들로 가득찬 공간을 통해 100년 전 시공간의 경계를 이동한다. 남겨지거나 버려진 파편들을 한 대 모아 관람객 스스로, 상상력으로 하나의 무언가를 재구성해낼 수 있다.

▲ 일민 김상만 선생의 집무실 보존한 일민기념실. (내외방송=이지선 기자)
▲ 일민 김상만 선생의 집무실 보존한 일민기념실. (내외방송=이지선 기자)

일민 김상만 선생의 집무실을 보존한 일민기념실과 3전시실에 마련된 네 번째 씬에서는 미디어아티스트 권하윤이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에서 영감을 받아 가상현실(VR)과 함께 관람할 수 있는 설치작품 ‘구보, 경성 방랑’을 선보였다. 관람객은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하고 ‘구보씨’의 음성을 들으며 1920년대 당시 신문에 자주 등장했던 캐리커처를 따라 당시 근대도시를 거닐던 사람들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다섯 번째 씬(3전시실)은 ‘수장고의 기억: 일민컬렉션’이었다. 건축가 표창연과 디제이 하성채의 협업을 통해 일민미술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던 조선의 공예품과 민예품이 마치 2020년에 소풍을 나온 관람객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공예품들이 회전목마나 롤러코스터 위에 자리했다. ‘세상은 요지경’, ‘오빠는 풍각쟁이’ 등 1930년 일제강점기에 흥했던 대중가요 민요가 들려왔다. 어두운 식민 시대를 살았지만 풍자와 해학을 통해 어둡고 메말랐던 감정을 승화시켜왔던 우리나라 국민들의 산 역사를 관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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