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중대재해 처벌…실효성 없는 법률제정에 입법 취지 무색
무늬만 중대재해 처벌…실효성 없는 법률제정에 입법 취지 무색
  • 박찬균 기자
  • 승인 2021.01.0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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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빼고 저것 빼고 적용도 3년 유예…입법 독주하던 여당 어디로 갔나
사고 사망자 20%는 5인 미만 사업장…처벌 수위도 정부 의견보다 후퇴
▲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7일 오후 국회 법사위 앞에서 온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피킷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한국노총)
▲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왼쪽)이 7일 오후 국회 법사위 앞에서 온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피킷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한국노총)

(내외방송=박찬균 기자) 공수처 관련법, 공정경제 3법 등에서 입법독주를 하던 여당이 정작 국민의 생명과 연결된 입법에서는 야당이나 행정부의 눈치도 아닌 재계 눈치를 보느라 만드나마나한 법을 만들고 있다.

작년 4월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같은 후진국형 대형 산업재해를 근절하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 국회 심사를 거치면서 이것 저것 빼는 것도 모잘 적용마저 3년간 유예하는 변죽만 울렸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 여야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처벌 수위를 낮춘 데 이어 소규모 사업장은 아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해 노동계 반발을 넘어 실효성 자체가 없는 법을 만들고 말았다.

여야는 7일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따른 중대재해 처벌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기로 합의했다. 영세 사업장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적용할 경우 사업주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의 유예기간을 두는 것도 아니고 아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경우 법의 실효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국내 제조업 산재 사고 사망자 206명 가운데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42명으로, 20.4%에 달한다. 산재 사고 사망자 5명 중 1명꼴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라는 얘기다. 사업장 규모별로 산재 사고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5∼49인 사업장(122명)이었다. 50∼299인 사업장(30명)과 300인 이상 사업장(12명)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노동계가 영세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 유예 방안에 대해서조차 강하게 반대해온 것도 영세 사업장의 산재 사망 사고가 그만큼 빈발하기 때문이다. 영세 사업장이 산재 예방 인프라를 갖추는 데 부담이 크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면 된다는 게 노동계의 입장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성명에서 "소규모 사업장에서 안전보건 조치를 당장 적용하기 어려울수록 정부가 예산과 인력 지원 계획을 시급히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기로 한 것은 정부가 법사위에 제출한 의견보다도 후퇴했다. 정부는 50∼99인 사업장에 대해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공포 이후 2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4년의 유예기간을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법 적용에 시차를 두되 예외를 허용하지는 않은 것이다.

여야는 산재가 아닌 공중 이용시설 등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인 '중대시민재해'도 10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음식점과 같은 다중 이용업소의 경우 바닥 면적이 1000㎡(약 302평) 미만이면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여야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처벌 강도도 의원 발의안보다 상당 수준 낮춘 상황이다. 여야는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을 선고하도록 했다.

의원 발의안보다 처벌 강도가 낮은 정부 제안(2년 이상 징역형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 벌금형)과 비교해도 징역형의 하한선을 낮추고 벌금형의 하한선은 없앤 것이다. 이 밖에도 일정 기간 여러 차례 법을 어긴 사업장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영 책임자 등의 의무 위반에 따른 것으로 추정한다는 의원 발의안 조항이 여야 합의에서는 빠졌다. 형사 재판에서 범죄 사실을 인정하려면 엄격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정부 입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건설공사에서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발주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의원 발의안 조항도 제외됐다. 건설 현장의 산재는 발주자의 무리한 공기 단축 요구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발주자도 처벌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게 노동계 입장이지만, 정부는 발주자도 처벌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공무원의 부실한 사업 인허가가 중대 재해로 이어질 경우 공무원도 처벌 대상으로 하는 조항도 삭제됐다. 공무원의 관련 업무 기피와 소극적 행정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정부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여야의 합의대로 영세 사업장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노동계 요구는 대거 빠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현실화되자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7일 국회에서 심사 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 5인 미만 사업장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노동계 요구에 크게 못 미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하며 재심사를 요구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에서 논의가 진행될수록 원안보다 후퇴한 결과만 들려온다"며 "온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재논의 절차에 들어가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여야가 중대재해 처벌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기로 한 데 대해 "이 작은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재해 사망이 전체의 20%를 차지한다"며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해 고용, 임금, 복지 등 모든 노동 조건에서 차별을 받는 상황에서 죽음마저도 차별을 당할 처지에 내몰렸다"고 비판했다.

여야가 경영 책임자의 벌금형 하한선을 없애는 등 처벌 강도를 낮추고 건설공사 발주자와 사업 인허가 권한을 가진 공무원 처벌 조항 등을 삭제한 데 대해서도 민주노총은 "숭숭 구멍을 낸 것"이라며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재계의 요구만 대폭 수용하며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는 이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있으나 마나"라며 "절규와 호소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경고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에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죽음과 5인 이상 사업장에서 발생한 죽음이 다르지 않음에도 죽음에도 차별을 만들어두는 저의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5인 미만 사업장 제외를 비롯해 누더기를 쓰레기로 만든 합의는 당장 철회돼야 한다"며 "이런 상태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한국노총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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