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삶을 보듬는 의자'
고흐의 '삶을 보듬는 의자'
  • 전기복 기자
  • 승인 2021.01.1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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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뱃대가 놓인 빈센트의 의자, 아를, 1888.12, 런던 내셔널 갤러리
▲ 담뱃대가 놓인 빈센트의 의자, 아를, 1888.12, 런던 내셔널 갤러리

(내외방송=전기복 기자) 자연에 인간의 손을 거치면 건축물이 되고, 사람이 기거하면 주택이 된다. "주택이 더 작아지면 방, 방이 더 작아지면 가구다. 가구 중에서도 가장 작은 단위는 의자다" 이런 면에서 욕심의 최소단위가 의자라는 말로 바꿔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이런저런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스님이 남기고 간 '길상사 의자'를 처음 봤을 때의 전율이 그때처럼 느껴진다. 나무에 손길 몇 번 주지 않고 자연의 모습 그대로인 투박한 의자다. 소박한 거처 처마 오른편 풍경 아래 '세상 영화가 덧없음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에 놓여있다.

오래전 그 의자를 본 기억이 새롭게 다가오는 새해 아침이다. 길상사 의자에 대한 기억이 소환되자 지난해의 분잡했던 일들에 대한 상념들이 조금은 누그러들고 예술적 감흥에 조응할 여유가 생긴다.

그림 감상에 있어 '의자'라는 키워드에는 뭐니해도 고흐의 '담뱃대가 놓인 빈센트의 의자'를 꼽을 수 있다. 일명 '고흐의 의자'다. 너무나 잘 알려진 그림이라 식상할 수도 있겠지만 부르는 이의 음색에 따라 느낌이 달리 전해 오는 노랫말처럼 그림이 주는 위안도 안내하는 이의 마음과 보는 이의 여백에 따라 달리 느껴질 터이니 함께 내 마음에 맞는 의자를 찾아 떠나 볼 일이다.

고흐의 '담뱃대가 놓인 빈센트의 의자'(이하 고흐의 의자로 표기)는 그의 작품 '폴 고갱의 안락의자'(이하 고갱의 의자로 표기)와 한 쌍을 이루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주제는 아를의 노란 집에 있던 가구로 이 그림들은 자연스럽게 폴 고갱이 아를을 방문한 1888년 10월 23일 이후에 그려졌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구체적으로는 1888년 12월 '고갱의 의자'를 그린 후 '고흐의 의자'는 그려졌다.

▲ 폴 고갱의 의자, 아를, 1888.12,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 폴 고갱의 의자, 아를, 1888.12,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그는 두 화가의 자화상과도 같은 상징성을 갖는 이 그림을 어떤 연유로 이 시기에 그렸을까?

화가공동체를 꿈꾸던 고흐는 고갱이 자신이 머물든 노란 집에 기거하게 되자 그의 가르침과 영향을 받아 그림을 그리곤 하지만 서로 다른 기질로 인해 그림이나 생활방식, 삶을 대하는 이야기에서 싸우고 논쟁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자리를 비운 고갱의 빈 의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비어 있는 그의 의자를 그리려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편지 일부를 보자.

"고갱과 헤어지기 몇일 전 비어 있는 그의 의자를 그리려고 했다"

치닫는 갈등은 그의 건강문제와 깊이 연관되었고 1888년 12월 23일 귀 절단사건으로 고갱과의 동거는 파국을 맞는다. 이렇듯 고갱과의 다름과 고갱의 부재 그리고 그가 꿈꾼 화가공동체의 실현 불가능성이 주는 상실감까지, 이 한 쌍의 '의자' 그림으로 표현된 것은 아닐까.

그림을 보자. 두 그림 모두 캔버스를 가득 채우며 존재감을 보인다. 의자의 다리는 한쪽 다리가 캔버스 끝단에 닿을 정도로, 이 영역만은 벗어날 수 없노라며 저항하는 듯 강렬하게 윤곽을 잡았다.

'고흐의 의자'는 햇살을 받아 붉게 비치는 타일과 진노랑색 의자가 밝고 소박한 분위기다. 반면 '고갱의 의자'는 벽과 의자의 초록이며 붉은색이 무겁고 권위적인 느낌을 준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한 편지에서 "두 그림은 낮과 밤의 분위기를 상징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이렇듯 낮과 밤이 함께 할 수 없음은 자명하고 두 그림에서 사용된 색상들은 이러한 다름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또한 두 의자가 놓인 방향도 서로의 지향성이 다른 만큼의 방향으로 등지듯 놓여있는 모습이다. 이뿐만은 아니다. 그림 속의 정물화처럼 그려진 의자 위의 소품들도 두 화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흐가 즐겼던 담뱃대, 고갱의 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상징하는 책 두권과 촛대 말이다.

옹이가 보이는 투박하게 다듬어진 의자는 소박한 고흐의 삶을 나타내기에 충분하고, 카펫이며 팔걸이 그리고 모양을 낸 등받이와 곡선미를 가미한 다리는 그림을 그리기 전 사회생활 경력으로 다듬어진 고갱의 세련된 이미지와 부합된다.

고흐는 당시 일상생활의 균형이 허물어진 상태에서 기능적인 물건인 의자를 주제로 한 그림에 왜 이렇게 집착하고 정성을 들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어떤 다름에도 불구하고 늘 깨어있는 자신을 들어내면서도 상대를 배제하지 않고 존중함을 보여주기 위함이리라 감상해 보면 어떨까.

'고흐의 의자' 뒤로 놓인 상자 속의 해바라기꽃송이 속의 씨앗이 발아를 내포하고, 파랗게 돋는 양파 새싹이 그렇게 일깨워주고 있다면 과장일까. 고갱의 의자도 마찬가지다. 밤을 밝히는 벽면의 가스등뿐만 아니라 의자 위의 촛불이 밝지 않는가.

▲ 빈의자: 개즈힐(판화), 1870.6, 루크 필즈 作
▲ 빈의자: 개즈힐(판화), 1870.6, 루크 필즈 作

이러한 의미는 고흐가 작품 속에서 '의자'를 그림으로 그린 역사성에서 더 내밀하게 찾아볼 수 있겠다.

이제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고갱의 의자'는 직접적으로는 사무엘 루크 필즈(1843-1927)의 '빈의자:개즈힐'(1870)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찰스 디킨스(1812-1870)가 소설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를 신문에 연재하던 중 갑자기 사망하자 삽화가 루크 필즈는 그의 고급스러운 책상과 책상에서 떨어져 놓인 빈 의자가 있는 이미지를 그린 것이다. 루크 필즈가 의자에 찰스 디킨스의 부재함을 그렸듯이 고흐도 '고갱의 의자'에서 파국으로 떠난 “의자에 없는 그의 빈자리, 즉 거기에 없는 그 사람”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그림을 그린 것이었다.

하지만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기숙학교를 전전하던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과 함께하고자 한 갈망이나 애틋함이 부재나 애정에 대한 민감함으로 작용한 듯 보인다. 특히 1878년 암스테르담에서 성직자 공부에 능력의 한계를 보이자 조력하던 아버지가 떠난 후의 기억도 그렇다. 그의 편지 몇 구절은 그것을 증명해 주듯 표현되어있다.

"아버지가 탄 기차가 완전히 역을 빠져나갈 때까지 바라봤다. 방으로 돌아왔을 때, 책상에 바싹 붙은 아버지의 의자와 책상 위에 전날부터 놓여있던 책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단다······. 난 그때 아이처럼 울었어."

사실 고흐가 두 의자 그림을 그리기 전에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빈 의자'는 누에넌 시절 모델을 찾아 농촌 이곳저곳을 누비다 어느 농가에서 그린 '난로 옆의 촌부'(1885.6)라는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난로 옆의 촌부, 누에넌, 1885.6,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 난로 옆의 촌부, 누에넌, 1885.6,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난로 옆의 촌부'는 난로 위의 주전자를 가운데 두고 빈 의자를 마주한 촌부는 감자가 든 큰 그릇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감자를 다듬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일 나갔을 남편이나 가족을 기다리며 음식을 준비하는 아낙의 마음은 난로 위로 밝게 타오르는 불빛의 온기보다 더 따사함이 풍긴다.

여기서 빈 의자는 부재로부터의 상실감이 아니라 고된 노동 후의 쉼을 보듬는 안락한 의자, 온전한 가정의 모습을 담보하는 의자다. 이렇듯 따스함에서 연원한 고흐의 빈 의자인 것이다.

▲ 난롯가 의자에 앉은 농부, 에텐 시절인 1881.9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동봉한 소묘
▲ 난롯가 의자에 앉은 농부, 에텐 시절인 1881.9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동봉한 소묘

그렇다면 고흐의 '빈 의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많은 사람들이 고흐가 두 의자 그림을 그린 이후 요양병원인 생레미 생폴드모졸병원에 입원하거나 생의 마지막을 보낸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삶을 조망해 볼 때 "그의 '빈 의자'에는 그림 '영원의 문턱에서'(1890.4-5월)를 통해 '슬퍼하는 노인'을 앉혔다"라며, 결국 '비애'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 슬퍼하는 노인(영원의 문턱에서), 생레미, 1890.4-5,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
▲ 슬퍼하는 노인(영원의 문턱에서), 생레미, 1890.4-5,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르고 달리 해석하고 싶다. 오래전 고흐가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초기 시절인 누에넌에서부터 '고흐의 의자'처럼 단순하면서도 투박한 이미지의 빈 의자에 농부나 물레를 잦는 여인, 감자 껍질을 벗기는 촌부, 바느질하는 아낙 등을 앉혔다. 노동하는 이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의자인 것이었다.

▲ 얼굴을 감싸고 있는 노인(영원의 문 앞에서), 헤이그, 1882.11,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 얼굴을 감싸고 있는 노인(영원의 문 앞에서), 헤이그, 1882.11,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특히 1882년 작품인 '얼굴을 감싸고 있는 노인'에서는 불 꺼진 난로를 배경으로 그려 삶이 암울함을 암시했다면, 고흐가 사망한 해인 1890년에 그려진 '영원의 문턱에서'는 '얼굴을 감싸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동일하나 난로에서 타오르는 불빛을 배경으로 처리하여 고달픈 일상 속에서도 희망이 남아있음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고흐가 '빈 의자'를 통해 부재한 사람을 상징하고 들어내어 보였듯이, '영원의 문턱에서'는 역으로 '슬퍼하는 노인'이라는 사람을 앉힌 의자를 통해, 삶이 고달픈 이들에게 내어준 의자, 노고를 덜고 보듬는 의자를 상징하고 강조해 보인 것이라 해석하고 싶다.

그래야 "고흐의 그림이 가진 힘은 모든 사물과 인간, 자연을 향한 화가의 따듯하고 열린 마음에서 나온다"는 혹자의 일갈과 맥이 닿는다.

새해다. 새해 벽두, 화가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는 그림 감상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림 한점, 차 한잔, 소박한 의자면 족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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