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외적인 판단에 외교 문제까지 판결문에 명시” 비판
▲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내외방송=신새아 기자)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각하 판결이 나온 뒤 거센 후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판결을 내렸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4부 김양호 판사에 대한 신상이 공개됨과 함께 탄핵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오며 비판의 여론이 뜰끓고 있기 때문이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으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과 법률적 의미는 다르지만 청구가 인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사실상 같다.
일단 청와대 국민청원은 10일 기준 26만 9946명의 동의를 받아 정부의 공식 답변 대상이 됐다.
지난 8일 '반국가·반민족적 판결을 내린 김양호 판사의 탄핵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국민청원에서 글쓴이는 "김 판사가 각하 판결을 내린 까닭을 살펴보면 과연 이 자가 대한민국 국민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반국가적·반역사적 내용으로 점철돼 있다"며 "김 판사를 즉각 탄핵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한일협정으로 얻은 외화, '한강의 기적' 만들어"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재판부가 판결문을 통해 '정치적 판단'을 덧붙였다는 이유로 논란을 키우고 있다.
재판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이에 터잡은 징용의 불법성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국내법적인 법해석이며 대법원 판결은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이에 터잡은 징용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국내법적 사정만으로 식민지배의 적법 또는 불법에 관하여 상호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일괄하여 이 사건 피해자들의 청구권 등에 관하여 보상 또는 배상하기로 합의에 이른 ‘조약’에 해당하는 청구권 협정의 ‘불이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한국만 문제삼고 있는 것처럼 해석될 여지가 있는 대목인 것이다.
특히 재판부는 "대한민국이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되는 세계 경제사에 기록되는 눈부신 경제 성장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라고 하며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 시민단체 "어느나라 사법부냐" 규탄...비판 여론↑
관련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한국노총·민주노총 등 시민단체들은 즉각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회복을 외면하고 반헌법적 판결을 선고한 재판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판결을 내린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며 “법관은 헌법정신과 양심에 따라 피해자의 인권회복을 위해 판결해야 하지만 재판부가 헌법정신을 거스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여론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비판의 의견이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이자 다른 강제징용 사건 소송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민사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각하하면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라 걱정을 판결문에 적시하는 재판부를 본 적이 있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 높아지는 탄핵요구 목소리...정부 반응은
▲ (사진=포털사이트 캡처)
논란의 중심에 선 판결을 내린 재판부의 재판장인 김양호 판사에 대한 탄핵을 요구하는 청원에 대해 정부는 이제 답을 해야 한다. 청와대는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에 대해서는 담당 비서관이나 부처 장·차관 등을 통해 공식 답변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판결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어 국민청원을 통해 탄핵요구를 받은 판사들은 최근에도 여러 사례가 있다.
지난 2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한 판사들을 탄핵하라는 국민청원에 청와대는 "법관 탄핵은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고유 권한에 해당해 답변이 어렵다"고 답변한 바 있다. 헌법에 따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하고 헌법재판소에서 심판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법관을 탄핵하려면 헌법 규정에 따라야 한다. 헌법 제65조제1항은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편 온라인을 통해 판사들의 사진과 신상이 유포되면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해 "도 넘은 재판부 공격"이라고 꼬집는 의견도 있다.
수십년 법조계에 몸을 담은 한 법조인은 내외방송을 통해 "최근 국민청원 게시판에 해당 판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탄핵을 요구하는 마녀사냥식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며 "현정부 출범 이후 개설된 청와대 게시판은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당초 취지가 무색하게 변질됐다. 이번 하급심 판단은 상급심에서 법리적으로 따지면 될 일"이라고 씁쓸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저작권자 © 내외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