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고흐의 숨은그림찾기
[문화산책] 고흐의 숨은그림찾기
  • 전기복 기자
  • 승인 2021.11.1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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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주르가 보이는 크로 평원의 추수, 아를, 1888년 6월, 네덜란드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몽마주르가 보이는 크로 평원의 추수, 아를, 1888년 6월, 네덜란드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내외방송=전기복 기자) 고흐의 그림에는 몇 년을 보아온 그림인데 최근에서야 '이런 부분도 있었어'라고 자못 놀라게 되는 그림들이 있다. 이후 나는 돋보기를 책상 위에 놓고 간혹 그림 전반을 관찰하듯 보는 버릇이 생겼다. 이를 자칭 숨은그림찾기 감상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고흐가 숨겨놓은 숨은그림을 찾으며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을 소개한다. 

고흐는 빨리 그림 그리기로 유명하다. 그 자신도 이를 의식하고는 "사람들이 너무 급하게 그렸다고 말하면 그들이 그림을 너무 간단하게 본 거라고 대답하라"고 동생에게 편지로 당부하곤 했다. 그렇게 빠르게 풍경화를 그렸을지라도 그 속에는 늘 함께 하는 요소가 있다. 다름 아닌 사람인데 '이렇게 작게 묘사된 사람이 그림에 무슨 영향을 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쯤에서 여기에 어울리는 그림을 보자. '몽마주르가 보이는 크로 평원의 수확'(1888.6)이다. 이 그림은 고흐가 아를에 도착하고 맞이한 봄에 그린 과수원 연작에 이어서 6월 중순경 추수기의 밀밭을 주제로 한 또 다른 연작의 하나다. '수확'이나 '추수'라는 단어에서 가을이라는 이미지를 단 1%라도 가졌다면 6월, 초여름 밀을 수확할 시기의 밀밭이며, 여름의 강렬한 빛과 색채를 표현한 그림임을 명확히 해둘 일이다.

몽마주르가 보이는 크로 평원의 추수(두 사람이 걷는 모습, 부분 확대)
몽마주르가 보이는 크로 평원의 추수(두 사람이 걷는 모습, 부분 확대)

이 그림은 숨은그림찾기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도상학적인 요소를 따라서 시선이 열심히 움직이게 된다. 뜨거운 태양 아래, 강렬한 색채들이 주는 흥분을 저 멀리 흰빛 알피유산맥과 맞닿은 파란 하늘이 차분하게 광활한 대지를 조망하게 한다.
 
집 다섯 채, 몽마주르 수도원은 어디에 있을까? 말이 끄는 수레와 놓인 수레 네 대, 말 두세마리, 세워진 사다리 두 개, 수레에 탄 두 명인지 한 명인지 분간하기 힘든 사람과 나머지 여섯 명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여기서 숨은그림찾기의 백미는 사람인데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기'에 충분한 인원이다. 쉽게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은 중경의 좌측 수확하는 사람과 중앙부의 마차 위에 탄 사람(두 사람인 듯하다) 그리고 우측의 수레 위에서 짚단을 옮기는 사람과 수레 뒤에서 수레 위 짚단으로 팔을 뻗어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도 식별하기는 힘들다. 전경의 숲에 있는 사람은 언뜻 보면 나무의 일부로 보인다. 나머지 두 사람이야말로 진짜 숨은그림찾기 해야 하는데 이렇게까지 작게 표현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들이 내딛는 발걸음이 있어 왠지 모르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바쁜 농가일 속에서도 긴 삶의 여정을 생각하게 하는 차분함이 느껴지는 그림으로 승화된다. 그들이 내딛는 발걸음은 중경에 있는 빨간 지붕의 두 집 좌측면을 연하는 길 중간쯤에 있고 우리들의 시선도 그곳에 머물게 된다.

하여, 자랑을 모르던 고흐도 "이 그림은 다른 모든 그림들을 침묵하게 한다"는 평을 했다.

숨은그림찾기의 유사버전인 다른 그림찾기는 또 어떤가, 이 또한 그림을 세밀하게 여기저기를 보게 만드는 효과는 숨은그림찾기와 진배없다.

몽마주르가 보이는 크로 평원의 추수(연필, 펜, 잉크), 아를, 1888년 6월, 미국, 워싱턴 국립 미술관
몽마주르가 보이는 크로 평원의 추수(연필, 펜, 잉크), 아를, 1888년 6월, 미국, 워싱턴 국립 미술관
몽마주르가 보이는 크로 평원의 추수(사람이 없는 부분 확대)

고흐는 '몽마주르가 보이는 크로 평원의 수확'을 그리기 전에 몇 점의 연습 작품을 통해, 이를 계획하고 연습했다. 특이한 점은 유화작품을 완성하고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펜으로 드로잉을 한 점 더 그린다. '왜일까'라는 의문과 색상은 차치하고, 유화작품과 차이가 나는 부분은 무엇일까? 묘사되지 않은 부분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본인의 눈에는 왼쪽 사다리 끝부분 위, 중경의 밀밭에서 수확하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몽마주르에서 본 크로 평원,(연필, 펜, 잉크), 아를, 1888년 7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몽마주르에서 본 크로 평원,(연필, 펜, 잉크), 아를, 1888년 7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고흐는 같은 해 7월 크로 평원을 연필과 갈대 펜으로 갈색, 검정색만으로 풍경화를 그린다. '몽마주르에서 본 크로 평원'(1888.7)인데, 그림의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몽마주르 수도원 방향으로 크로 평원을 바라보면서 그린 유화 작품과는 달리, 반대 방향인 몽마주르 언덕에서 크로 평원을 내려다보면서 그린 작품이다. 

검고 희며 갈색인 색채에, 점과 선, 선의 길이와 두께 그리고 반복되는 곡선과 빗금만으로 독립된 작품과 같은 풍경화를 완성한다. 놀라움은 잠시 접어두고, 이번은 '몽마주르가 보이는 크로 평원의 수확'과 '몽마주르에서 본 크로 평원', 두 그림에서 같은그림찾기를 해보자. 

몽마주르에서 본 크로 평원,(두 사람이 걷는 모습, 부분 확대)
몽마주르에서 본 크로 평원,(두 사람이 걷는 모습, 부분 확대)

단연 나는 '농로를 걷는 두 사람'이라 생각한다. 크로 평원을 보는 방향이 다른 만큼 두 사람이 걸어가는 방향만 다를 뿐 중경을 가로지르는 농로의 중간지점에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길을 걷는 두 사람이 있다. 

이처럼 고흐는 크로 평원을 여러 방향에서, 또 그 속에 있는 다양한 주제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다. 드넓은 들판에 매료되었음이 틀림없다. "이 평야를 보러 처음 동행했던 화가는 벌써 50번이나 몽마주르를 올랐다"고 하니, 이후 고흐도 수십 번은 오갔을 것이다.

"풍경이 사소한 고통을 잊게 해주니 거기에 무언가 있는 셈이야" 이렇게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관심을 보인 점에서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몽마주르 언덕에서 크로 평원을 보면서 고흐가 말한 "거기에 있는 무언가"는 무엇일까? 숨은그림찾기라는 돋보기를 끼고 다시금 시선을 사방으로 움직여 보자. 집, 수레, 사다리, 짚더미, 수확하는 들판 등 도상학적인 요소들은 이미 보았고 특히, 들녘 여기저기에서 제 일에 열심인 농부가 있음도 마찬가지다. 이는 다른 많은 풍경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고흐 그림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등을 굽히고 밭일하는 농부가 있는 '꽃피는 복숭아나무가 있는 크로 평원', 한 사람인 듯 두 사람인 '수확하는 사람과 밀단', 길가는 여인이 있는 '프로방스의 건초더미', 꽃밭을 가꾸는 농부가 있는 '생트마리 풍경', 수확하는 두 농부가 있는 '밀밭에서 본 아를 풍경' 등 수 없는 작품들을 나열할 수 있다.

일전에 고흐의 군대이야기에서 소개했듯이, 몽마주르 언덕을 지나던 병사는 "사람 사는 느낌이 나는 크로 평야 풍경"이라는 일갈로 고흐가 말한 "거기에 있는 무언가"와 우리가 찾는 숨은그림찾기에 답한다면, 각자는 어떤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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