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고흐의 숨은그림찾기2 - '오이란' 편
[문화산책] 고흐의 숨은그림찾기2 - '오이란' 편
  • 전기복 기자
  • 승인 2021.12.0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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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풍: 오이란(게이사이 에이센 모사), 파리, 1887년 9-10월,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일본풍: 오이란(게이사이 에이센 모사), 파리, 1887년 9-10월,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내외방송=전기복 기자) 토요일 아침. 여유롭게 신문을 펼쳐든다. 요즘 대세라는 '오징어 게임'의 놀라운 비주얼 주역, 채경선 미술감독의 인터뷰 기사가 큼직하니 자리하고, 그가 얼마나 디테일한 면과 상징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데 신경을 썼는지 말하고 있다.

"지영(240번)과 강새벽(067번)이 같이 앉아있는 위치에 죽은 꽃과 죽지 않은 꽃이 각각 세팅돼 있다. 어느 쪽이 죽지 않은 꽃을 세팅했는지는 시청자들이 찾아봐 달라" 짧은 순간 다시금 오징어 게임을 보게 되고, 눈은 이미 화면 여기저기를 관찰하게 된다. 

그렇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미술 작품에 이렇게 접근해 볼 일이다는 생각이 또 든다.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듯 말이다. 유인효과 만큼 재미도 더하고, 감상은 차치하더라도 그림 여기저기를 더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을까.

그래서 화보를 펼치며, 아들 녀석한테 투박한 대화로 다듬어지지 않은 실험에 나선다. 학이 어디 있는지 찾아봐. "여기 있네"며 손가락으로 금방 집는다. 개구리는…, "어〜" 하다가 또 찾는다. 

사실 그림의 존재는 익히 오래전부터 알았다. 그러나 배경의 큼직하니 서 있는 학은 보였으나 전경 하단의 개구리 존재는 몰랐다. 그렇게 섬세하게 보려고 하지 않은 결과다. 그러면 학이며 개구리는 왜 거기 있을까? 라고 묻자 이제 제법 길게 뜸을 들인다. "뭐, 물가니까 있겠지…." 그러곤 일어서 자기 볼일이다. 맞다. 학이며 개구리는 물가니까 있다고 치자. 수영복도 아닌 기모노 차림의 여인네가 물가를 배경으로 왜, 덩그러니 서 있는지 도대체 모를 일이다.

숨은그림찾기가 아니라 무슨 선문답인가. 일주일이 가도 대화가 쉽지 않은 부자지간의 대화는 다름 아닌 고흐의 '오이란'(1887)이란 그림을 두고, '그렇게 봐도 그냥 일본풍을 한 여인네만 보고 넘겼더니… 안 보이든 개구리가 있음을 이제 알았다'며 시비 걸듯, 아들 녀석한테 숨은그림찾기라도 해 보라며 나눈 대화다. 이 그림을 보고 '어떤 느낌'이나 '소감이니 감상평'을 운운했다면 아마도 '몰라〜'라고 지나쳤을 것이 뻔하다. 

오이란은 "일본 에도시대의 대표적인 유곽지대인 요시와라의 유녀(遊女) 중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부르는 호칭"인데 일본인 게이사이 에이센(1790–1848)이 이를 그린 그림이 유명하다. 1886년 5월에는 '파리 일뤼스트레'라는 파리의 대중잡지에 게이사이 에이센의 작품이 일본 특집호 표지 그림으로 게재되었는데, 고흐는 이를 모사해서 '오이란'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갑작스러운 일본풍 그림에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오이란'과 함께 일본풍의 세 작품, 히로시게의 목판화를 모사한 '꽃이 핀 자두나무', '빗속의 다리' 등이 그려지는데, 어떤 연유일까.

고흐 개인을 두고 보면, 프랑스 파리로 거쳐를 옮기기 전인 벨기에 항구도시 안트베르펜에서부터 자신의 방을 우키요에 판화로 장식하기 시작했다. 고흐가 우키요에 판화로 쉽게 자신의 방 분위기에 변화를 줄 수 있었던 것은 의외로 경제적인 접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일본 작품을 취급하는 상점도 늘어났지만, 무엇보다 판화의 특성상 반복해서 수백 장의 그림을 찍어내고 저가로 판매하기 때문이었다. 

1853년 일본은 미국에 문호를 개방하고, 1860년대에는 이미 영국 런던이며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며 유럽인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두 세기 전 고흐의 나라,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동인도회사의 상선 스페르웨르호를 타고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를 향하던 중 태풍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漂着)한, 우리에게 익숙한 사건만 생각해 봐도 그 교류의 역사 속에서 1860년대 이후 유럽사회에 일명 일본풍이라는 유행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고흐도 자연스럽게 일본의 그림을 접하게 되고 그 영향을 받게 되었으리라. 그러나 화가로서 당시 유행하던 일본 우키요에 그림에서 받는 자극은 간단하지 않았다. 강조한 윤곽선과 원색의 색상, 간결한 선 처리와 단순한 형태, 원근법을 무시하거나 과장한 표현 양식, 무엇보다 전체적인 느낌에서 받는 평면성 등은 새로운 자극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제 펼쳐 든 그림에 집중해 보자. 고흐의 '오이란'이다. 원작대로 직사각형 바탕에 기모노를 입은 여인네가 뒤돌아보는 자태를 하고 섰다. 배경의 연못 정중앙 위에 그림을 그렸다기 보다는 마치 기모노를 입은 여인을 콜라쥬한 느낌을 준다. 우측 하단으로부터 상단까지 대나무가, 좌측상단에는 갈대밭이 자리하고, 그 아래로는 수련이 흰꽃을 만개하고 물 위를 부유하는 구도다. 

여인네를 왜, 연못 위에 배치했을까. 생태학적으로 대나무가 물가에 사는 식물이 아니라는 점이나, 초여름에 꽃을 피우는 수련이며 연꽃과 늦가을 성장을 멈추고 말라버린 노란빛 갈대의 부조화만큼이나 ‘이상한 표현’이라고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

고흐가 생존했던 당시는 없던 사조인 초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어떤 대상을 그것이 놓여 있는 본래의 일상적인 질서에서 떼 내어져 뜻하지 않는 장소에 놓는 것"을 뜻하는 데페이즈망이라고 해도 되는 것인지. 

숨은그림찾기를 통해서 다른 접근을 해 보자. 대나무만큼이나 동양적인 이미지인 학을 찾아보자. 좌측 갈대숲 전면에서 먹이를 찾기 위해 물속을 응시하는가 하면, 주변을 경계라도 하는 듯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양새를 한 한쌍의 학을 볼 수 있다. 

1886년 당시 프랑스 대중잡지 '파리 일뤼스트레' 5월호 no 45-46의 표지 그림.게이사이 에이센(1790 – 1848)의 '운룡 우치카케의 기괴'를 판화로 옮긴 작품.
1886년 당시 프랑스 대중잡지 '파리 일뤼스트레' 5월호 no 45-46의 표지 그림.게이사이 에이센(1790 – 1848)의 '운룡 우치카케의 기괴'를 판화로 옮긴 작품.

프랑스어 그뤼(grue, 학)에는 매춘부라는 뜻도 있는데 그림의 오브제인 여인네가 매춘부와 연관성을 갖는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유녀인 오이란이 기거하던 '요시와라' 유곽지대가 설립된 장소에는 갈대가 지천으로 있었기에 '요시와라'에는 "갈대밭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하니, 그림의 갈대밭에 있는 학 즉, 요시와라 유곽지대에 있는 유녀(매춘부)로서의 직사각형에 그려진 오이란이라는 여인네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다음 숨은그림찾기는 두꺼비와 개구리다. 대나무의 초록빛깔과 여인네의 옷에 표현된 붉은 색의 대비나 직사각형의 노란 바탕이 여인네를 돋보이게 하면서 눈길을 끄는 것이 쉽게 개구리를 찾기 위해 시선을 옮길 수 없게 한다. 눈을 그림 상단에서부터 좌우로 살피면서 내려온다. 그림 하단 중앙에 '요시와라' 유곽을 지키듯 큼직하니 앉은 두꺼비가 자리하고 있다. 그래도 개구리는 보이지 않는다. 수련잎 모양과 색상을 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가 보다. 오른쪽 앞다리를 든 모양새가 수문장 두꺼비 앞에서 '요시와라' 유곽지역에 들어가도 되는지 묻는 분위기다. 

개구리 또한 프랑스어로 그르누유(grenouille)인데 매춘부를 뜻하는 속어로 '학'과 함께 '기모노를 입은 여인네'를 연못 위에 그린 그림의 구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학이나 개구리의 습생이 연못을 매개로 생활하지 않는가. 하여, 게이사이 에이센의 그림을 모사하여 여인네를 그린 다음, 연못을 중심으로 그 가장자리에 학과 갈대 그리고 개구리 등을 상징적이고 장식적으로 그려 넣지 않았을까.

일부에서는 "두꺼비와 개구리도 우타가와 요시마루라는 일본 화가의 '곤충과 미물들을 그린 목판화'(1883)에서 끌어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보다 앞선 1863년에 그린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보면, 옷을 반듯하게 차려입은 남자들 사이에 누드 상태로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는 여인이 있고 그림 왼쪽 하단에는 어지러진 빵과 과일, 하늘색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는데 그 아래쪽을 자세히 보면 개구리 한 마리가 흰색 배를 보이며 '나 여기 있음'을 알리고 있다.

마네는 당시 부르주아들이 매춘부를 불러 점심식사를 하는 생활상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여인의 벗어놓은 옷가지 옆에 개구리(grenouille)를 굳이 그려 넣어 화면 밖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누드의 여인네는 매춘부임을 암시했다. '오이란'의 '개구리'는 요즘 말로하면 세기의 악플이 달린,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이 유명한 작품 '풀밭 위의 점심 식사'에서 묘사된 '개구리'에 대한 오마주같은 것이리라.    

에두아르 마네 作, 풀밭 위의 점심, 프랑스, 1863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에두아르 마네 作, 풀밭 위의 점심, 프랑스, 1863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살롱전에 출품하고 낙선되자 낙선작 선정기준 등에 이의를 제기한 마네, 이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자 결국 나폴레옹 3세는 곧 있을 선거를 생각하여 낙선전을 개최하게 한다. 낙선전의 중심에는 마네가 있었다. 서양 미술사의 전환점과도 같은 일을 만든 이와 그의 작품을 고흐가 모를 수가 없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숨은그림찾기 해야 할 개구리가 왜 그기에 있는지. 그는 이미 그 의미를 알고 있었으리라. 그리하여 '개구리 네가 곧 오이란이다'라며 개구리, 학 그리고 갈대의 습생지인 연못 정중앙에 기모노를 입은 오이란이란 여인네를 그려놓았다고 본다.

풀밭 위의 점심(부분 확대), 하단 빨간 점으로 표시된 좌측 옆으로 개구리가 앉아 있다.
풀밭 위의 점심(부분 확대), 하단 빨간 점으로 표시된 좌측 옆으로 개구리가 앉아 있다.

그의 그림을 소개한 반 고흐 미술관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머리 모양과 허리띠(오비)를 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여성이 매춘부임을 알 수 있는데, 허리띠는 기모노 뒤가 아니라 앞쪽에 묶여 있다. 반 고흐는 그녀에게 수련, 대나무 줄기, 학, 개구리로 가득한 연못을 액자에 넣었다. 이 장면은 숨겨진 의미를 지니고 있다 : 그뤼(grue, 학)와 그르누유(grenouille, 개구리)는 '프로스티튜트 (prostitute, 매춘부)'를 뜻하는 프랑스 속어였다"

진짜 숨은그림은 고흐가 '오이란'을 그린 얼마 후 자신의 다른 그림 속에 삽화처럼 이 오이란을 그려 넣는다. 다름아닌 '탕기 아저씨의 초상화'(1887-1888년 겨울)로 이 그림의 배경에는 온통 일본 목판화 그림으로 채워져 있고 그림 우측 하단 측면에서 그림 '오이란'을 찾아볼 수 있다. 

고흐가 파리에 온 첫해 겨울내 지크프리트 빙의 가게를 들리면서 동양 미술품을 감상하고 구매한 것처럼, 이후에는 화방의 주인인 탕기 가게를 자주 드나들면서 그림 도구를 사거나 매매를 위해 그림을 맡기기도 한다. 

탕기 아저씨의 초상화, 프랑스, 1887년 가을, 파리 로댕 미술관
탕기 아저씨의 초상화, 프랑스, 1887년 가을, 파리 로댕 미술관

특히 그의 화방 뒤 창고에는 일본 목판화를 많이 보관하고 있어 그것을 감상하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도 했다. 이렇듯 고흐는 화방 주인 탕기와 일본 목판화가 갖는 관계와 애증 그리고 가게의 분위기를 그의 초상화 배경에 우키요에 그림을 배치함으로써 잘 표현하고 있다. 더 나아가 보면, 고흐는 자신의 그림을 또 다른 그림에 그려 넣어 오브제와의 관계나 설명의 도구로 사용함은 물론 그림을 역사화하는 경향이 있다. 

큰 맥락없이 열심히만 달려왔다. 오늘은 고흐의 '오이란'이라는 작품 속 숨은그림 개구리와 학을 찾아보고, 또 그의 그림 속 그림을 찾아서 숨은그림이 갖는 의미 등을 생각해 보았다. 

숨은그림찾기. 재미만 찾고 그림 감상에 무슨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러나 아이 트랙커(Eye-Tracker)라는 장치를 통해서 감상자들의 시선이 움직인 경로를 살펴보면, "눈 움직임이 다르다"고 한다. 전문가의 시선이 그림의 중앙이며 가장자리 여기저기를 두루 살피는가 하면, 일반인의 경우는 특정 대상이나 중앙 부위에 시선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 배경이나 가장자리는 거의 보지 않는단다. 

우리는 앞서 '오이란'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보았듯이 가장자리에 있는가 하면, 존재 자체도 몰랐던 요소들이 주제를 의미하고 암시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라도 그림 전반을 세밀하게 관찰하도록 할 수 있는 쉬운 접근법을 고민함은 당연한 일이 된다. 몇 번을 봐도 보이지 않든 구성요소가 눈에 들 때, '이런 요소도 있었어'라고 깨닫게 된다면, 스스로 좀 더 시선을 화면 전반에 고루 나누면서 더 세심하게 관찰하듯 접근하지 않을까. 숨은 그림찾기는 분명 이러한 '화면 전반에 시선을 두겠끔하는 효과'를 얻게 한다.

이러한 노력을 거듭하는 행위 자체를 고급스런 단어를 동원하여 '감상한다'고 하지 않을까. 오늘도 숨은그림찾기 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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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성 2021-12-03 06:40:19
매번 마음이 웅장해지는 작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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