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고흐의 우크라이나 갤러리
[문화산책] 고흐의 우크라이나 갤러리
  • 전기복 기자
  • 승인 2022.03.2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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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갤러리'에 잘 어울리는 명화는 무얼까?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작품 그 자체다"
노란 배경의 아이리스 화병, 생레미, 1890년 5월,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노란 배경의 아이리스 화병, 생레미, 1890년 5월,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내외방송=전기복 기자) 모여 자지러지게 이야기하고, 밥 먹고 벌써 12시야를 외치며 별 탈없이 진부하게 순환되는, 이 삶의 일상성이 큰 행복은 아닐지라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의상과 길거리 간판이며 온라인 플랫폼 로고까지 파랑과 노란 색채를 대비시킨 디자인이 우크라이나며 또한 일상성(평화)의 경건함을 지지하는 이런 때일수록 더 그렇게 느낀다. 평화는 개인적 일상성이 사회적, 국가 차원의 영역으로 확장된 모습이지 않을까.

하늘의 파란색과 황금빛 농지의 노란색을 형상화한 우크라이나 국기를 연상시키며 평화를 지지하는 표현물들 하나하나가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작품 그 자체다. 이 작품들이 나타나는 장소 하나하나를 총체적인 현장으로 일컬어 '우크라이나 갤러리'라 명명해 보자. 고흐의 그림 중에서 '우크라이나 갤러리'에 잘 어울리는 명화는 무얼까? 그래서 어떤 작품을 출품하여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일상성이 회복되기를 그리고 평화를 기원할까.

고흐와 '우크라이나 갤러리'라는 연결은 억지스럽고 참, 엉뚱한 상상이라는 생각이겠다. 하지만 언젠가 신문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맥도날드 매장이 진출한 나라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일명 '맥도날드 평화이론'이라는 것을 주장하지 않았든가.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범은 부인할 수 없는 맥도날드 진출국 간의 전쟁이고, 그래서 이 도발적인 이론보다는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기 색을 상징하는 파란과 노란색으로 표현되는 '우크라이나 갤러리가 문을 닫지 않는 이상 우크라이나는 승전하고 평화는 회복된다'는 생각이 더 강한 신뢰를 주지 않는가.

노랑과 파란색의 강한 보색 대비가 특징인 '우크라이나 갤러리'는 작품이 전시되는 장소적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서 작품임을 뜻한다. 여기에는 프롱크(pronk) 정물화는 있을 수 없다. 그 자체로 표상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의 영역에 발을 딛고 있음을 명확하게 선언함이니 말이다.

얼마 전 영국 여왕이 캐나다 총리를 접견하는 테이블 위에는 우크라이나 국기색 꽃이 놓였다. 그런가 하면 서울도서관 정면 '서울꿈새김판'에는 푸른 하늘 아래 노랗게 익은 밀밭 풍경을 그려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며, 그들의 평화를 기원하는 그림이 걸렸다. 프랑스 에펠탑,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로마 콜로세움, 독일 브란덴부르크 문 등 세계 각국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건물들에서는 파란색과 노란색의 불빛을 밝혀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어떤 이는 장난감 미니 탱크를 현금인출기 등에 줄지어 전시하여 전쟁 종식을 위해 함께 싸워달라고 호소하기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크라이나 갤러리'는 그림뿐만 아니라 꽃병을 놓는가 하면 설치미술이나 조명으로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등 이 모든 행위나 표현물들을 포괄하는 의미이다. 이들의 연대와 지지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믿음 속에 '우크라이나 갤러리'는 존재한다.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1808년 5월 3일의 학살, 1814년 작,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1808년 5월 3일의 학살, 1814년 작,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먼저 고흐는 생전에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학살'(1814)이나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같은 현실 참여적인 그림을 내놓은 적이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화가 공동체를 꿈꾸고 행동으로 옮기는가 하면, 아버지와 동생 테오보다는 공화주의적 사고와 그들의 편에 섰을 것이라는 그 자신의 이야기처럼 생각이 진보적인 면은 분명했다. 다음은 1884년 10월 무렵 동생과 갈등관계에 있는 상황을 프랑스 2월혁명(그해 11월 공화정 헌법 제정, 보통선거 실시됨) 당시 정부군과 혁명군이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상황을 비유해서 쓴 편지 내용 일부를 봐도 그렇다.

"만일 너와 내가 그때 살아 있었다면 너는 기조(군주정 당시 대신) 편, 나는 미슐레(프랑스 역사가) 편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우리 둘 다 우울한 기분으로 한결같은 입장을 지키며 서로 정면에서 대립하는 적으로, 이를테면 바리케이드를 경계로 너는 정부군 선두에, 나는 혁명군(노동자, 학생) 편에 섰을 거야"

이쯤에서, 고흐의 그림 중에서 '우크라이나 갤러리'에 잘 어울리는 명화는 무엇이며, 어떤 작품을 출품할까로 되돌아 가보자.

푸른 하늘과 노란 뽕나무가 장관인 '뽕나무'(1889.10), 수확기의 노란 밀밭과 파란 하늘의 '밀밭'(1889.6) ⸱ '프로방스의 추수'(1888.6) ⸱ '밀단이 있는 밀밭'(1888.6), 좀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보이는 노란 머리와 푸른 옷차림을 한 연인이 있는 '론강 위로 별이 빛나는 밤'(1888.9), 푸른색 화병에 꽂힌 노란꽃이 있는 '데이지와 아네모네 화병'(1887. 여름) 등이 '우크라이나 갤러리'에 잘 어울릴 그림일까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고뇌의 결과가 '밀밭 평원'(1890.7)과 '노란 배경의 아이리스 화병'(1890.5)이라면 어떤가.

밀밭 평원, 오베르쉬르우아즈, 1890년 7월, 스위스, 개인 소장
밀밭 평원, 오베르쉬르우아즈, 1890년 7월, 스위스, 개인 소장

그림을 보자. '밀밭 평원'의 탁 트인 대지와 하늘은 펄럭이는 우크라이나 국기처럼 생동감을 준다. 시원스럽다. 고흐가 생의 마지막 시기 딛고 그린 오베르 쉬르 우아즈 들판과 하늘이다. 곧 오뉴월 대지에는 노란 밀대로 가득할 것이다. 숨막힐 듯한 파란 하늘 아래 드넓은 평원을 보고 어머니께 편지로 밝힌 그의 소회는 이랬다.

"바다 같은 하늘 밑 언덕 저편까지 펼쳐진 넓은 평야와 무한한 밀밭에 완전히 빨려 들어가고 있어요. 연두빛 노란색, 어슴푸레한 보라색의 섬세한 색조로 된 땅은 경작되어 있고, 초록의 감자 싹이 규칙적으로 보여요. 이 모든 것이 흰색, 분홍색, 보라색, 푸른색 색조의 하늘 아래 부드럽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밀 생산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우크라이나 평원의 모습이 그랬다. 새싹이 움트고 자라 누런 밀대 위에 밀이 영글어 먹고 또 씨뿌리는 무사한 나날의 일상성이 원을 그리며 확장된 모습이 평화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보면. 어머니품 같은 생명을 움트게 하는 대지가 온전할 수 있도록 연대하고 지지를 보내는 그런 그림이야말로 ‘우크라이나 갤러리’의 본령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 '노란 배경의 아이리스 화병'은 또 어떤가. 고흐가 1890년 오월 생폴드모졸 요양원을 벗어나기 몇일 전에 그린 그림이다. 흐드러지게 핀 바이올렛 푸른색(보라색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붉은색 안료가 퇴색해 보라색이 파란색에 가깝게 변한 것이라함) 꽃과 배경의 두껍게 칠해진 노란색이 강한 대비를 이루며 생기 넘친다. 바닥에 쓰러진 한줄기가 대칭에 변화를 주는가 하면, 마치 전쟁의 상흔을 상징하듯 쓰러져있다.

전쟁이 하루 빨리 끝나고 평화로운 일상이 돌아왔다는……. '좋은 소식, 잘 전해주세요'라는 아이리스 꽃말이 귓가에 맴돈다. 이뿐인가 어느 나라 왕은 꿈에 나타난 천사가 준 방패에 아이리스 문장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방패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방패에도 아이리스 문양을 새기도록 했다. 이후 이 방패를 들고 전쟁에 임할 때마다 승전하여, 아이러스를 국화로 삼았다는 나라의 일화도 있잖는가. 그 문양의 힘이, 이 노란 배경에 그려진 '노란 배경의 아이리스 화병'에도 그러하기를. 하여 우리는 우크라이나 갤러리에 이 아이리스 화병을 놓는다.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1937년 작, 스페인,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1937년 작, 스페인,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고흐의 그림이든 어떤 미술작품이 당장 전쟁을 멈추게 하거나 평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할 것이다. 한달 가까이 전쟁의 참상을 목도하면서 느끼는 비애감과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는 나날이다. 이런 때일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평화를 기원하는 것. 그래서 고흐의 두 작품 '밀밭 평원'과 '노란 배경의 아이리스 화병'을 우크라이나 갤러리에 출품한다는 상상은 유효한 것이 된다. '우크라이나 갤러리', 그 연대와 지지의 힘을 믿는다.

같은 값이면 봄날!, 노랑과 파란색의 강한 보색 대비가 특징인 '우크라이나 갤러리'처럼 거실 분위기를 바꿔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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