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고흐의 캔버스에는 음악이 흐른다
[문화산책] 고흐의 캔버스에는 음악이 흐른다
  • 전기복 기자
  • 승인 2022.05.13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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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방송=전기복 기자) "나는 종종 엉망진창이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차분하고 순수한 조화와 음악이 있다"

고흐가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나선 시기, 동생에게 쓴 편지의 일부다. 이후 그는 아를의 여름 밤하늘을 보며, "나는 음악처럼, 그림을 통해 위안을 주는 얘기를 하고 싶다"라고 하기에 이른다. 그의 그라데이션이 어떤 음표와 조응하며,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이는지 귀 기울여 보자.

사실, 고흐의 그림을 두고 음악적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이르다. 속 깊은 미술사적 정담은 모를지라도 '음악이 주는 느낌마저도 색이나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확신한 화가에는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며 파울클레(1879~1940) 등이 있다.

칸딘스키는 '점, 선, 면, 색채로 이루어진 추상화나 음표의 조합인 악보도 기호와 문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미술의 원천재료나 음악의 원천재료는 같은 것'이라 했다. 그의 작품 '즉흥(시리즈)'(1909~1914), '구성8'(1923)이나 클레의 '세네치오'(1922)를 보라. 모두 20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따라서 고흐의 캔버스에서 발견할 음악적 선율이란 아직은 대지를 뚫고 나오지 않은 여린 싹처럼 쉬이 눈에 들지 않고, 또 어떤 잎사귀를 피울지 가늠하기 힘들다. 고흐의 말같이 음악과 미술의 연관성을 느끼고 그것을 "감동이 넘치는 연주처럼 감정과 조화로운 붓질"을 표현해 보려는 시도 정도라고 할까.

다음은 1888년 9월 아를에서 파리 테오에게 보낸 그의 편지글이다. "음악을 배우려는 헛된 시도를 했던 누에넌 시절과 지금 똑같은 상태에 있어, 심지어 그때조차도 나는 우리의 색채와 바그너의 음악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강하게 느끼고 있었단다"

그래서, 고흐의 그림에서 음악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로 바꿔서 접근해 보자. 고흐의 의도를 중심으로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 그림을 그릴 당시는 음악과 무관했으나 후대에 이르러 음악적 소재와 영감을 준 그림. 두 번째, 고흐 자신이 음악적 의도를 가지고 그린 그림. 세 번째, 오브제로 연주자와 악기가 등장하는 그림으로 대별해 보는 것이다.

별이 빛나는 밤 생레미, 1889년 6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별이 빛나는 밤 생레미, 1889년 6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첫 번째의 경우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돈 맥클린(1945)이 부른 '별이 빛나는 밤'이 아닌 '빈센트(Vincent)'라는 곡과 연관된 그림이다. 어린 시절 "스타리 스타리 나이트(Starry, starry night)"을 반복해서 입에 달고 다녔으나 그다음 가사뿐만 아니라 그 곡이 고흐의 전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우리는 별이 반짝이는 고흐의 그림을 볼 때면, 오래된 김치를 본 사람의 침샘처럼, 그의 이름과 같은 '빈센트'라는 팝송이 뇌리에서 솟구친다. 아마도 잠시나마 환청과도 같이 들려오는 리듬에 귀 기울이게 된다.

고흐의 많은 작품 중에서 별을 묘사한 그림은 총 4점인데 '외젠 보흐의 초상', '밤의 카페 테라스',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 '별이 빛나는 밤'이 그것이다. 앞선 세 작품은 새로운 풍광을 찾아온 아를 시기(1888)에 그려졌고, 나머지 '별이 빛나는 밤'은 생레미 시기(1889) 요양병원 실내에서 기억을 더듬어 그린 그림이다.

특히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은 1971년 '빈센트'가 발매되면서 이 곡 첫 소절에 나오는 'Starry, starry night'이 그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을 인용한 것이라는 사실에 더욱 유명해졌다. 곡 또한 고흐의 그림 덕분에 더 히트했다. 그의 노래 '빈 의자(Empty chairs)' 또한 고흐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는데, 고흐를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나 싶은 곡이다. 로리 리버만(그 유명한 로버타 플랙이 다시 불러 히트 시킨 노래)의 '그의 노래로 나를 부드럽게 죽이고 있어요(Ki11ing me softly with his song)'에서 '그의 노래(his song)'란 앞서 이야기한 돈 맥클린이 고흐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 부른 노래를 의미한다.

명화는 명곡을 낳고 그 명곡을 부른 가수는 또 다른 이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니, 생전 고흐가 그림을 통해서 이루고자 한 '삶을 위로하고 보듬는 예술', 그 자체를 실감할 수 있다. 실제 고흐가 그림을 그릴 당시는 음악적 미술에 대한 생각보다는 별과 밤 풍경을 묘사하는 데 관심을 집중했다. 당시 여동생 빌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렇다.

"이제 나는 꼭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려보려고 해. 내가 보기에는 밤은 종종 낮보다 훨씬 색상이 풍성해 보여…….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다면서 단순히 검푸른 하늘에 하얀 점들을 찍는다면 이는 밤을 충분히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거야"

"별이 반짝이는 하늘 아래 길거리를 따라 줄서있는 집들의 박공지붕들은 어두운 푸른색이고, 푸른 나무 하나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검정색은 하나도 없고 오직 아름다운 푸른색과 자주색, 초록색만으로 처리된 밤 그림을 보게 된다"

그림에 대한 세부적인 이야기는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이라 하지 않는다" 등을 참조하면 된다.

라 베르쇠즈(자장가) 아를, 1888년 12월, 네덜란드 오테를로 크뢸러 뮐러 미술관
라 베르쇠즈(자장가) 아를, 1888년 12월, 네덜란드 오테를로 크뢸러 뮐러 미술관

두 번째의 경우는, 고흐 자신이 음악적 의도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으니 쉽게 음악적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일까. 그렇지만도 않다. 그림의 제목에서 힌트를 찾아보자.

1888년 12월에 처음 그려진, 프랑스어로 자장가를 뜻하는 '라 베르쇠즈(La Berceuse)'로 이름 붙여진 그림이다.

그림에는 한 여인이 ‘고갱의 의자’처럼 생긴 의자에 양손을 앞으로 모은 채 두 줄의 끈을 쥐고 앉아있다. 모델은 우체부 룰랭의 아내인 오귀스틴이다. 이 끈의 용도가 아기가 잠든 요람을 흔들어주는 끈이라고 생각한다면 화제가 자장가로 쉽게 이해된다. 그림은 화려한 꽃문양이 있는 벽지를 배경으로 검정 외곽선이 뚜렷하게 그어진 평면적 구성을 하고 있다. 고흐는 ‘고독하고 불안한 영혼에 위로를 주는 자장가처럼 느껴지도록 색상과 배경을 그렸다’고 했다. 1889년 1월 22일 고갱에게 쓴 편지글을 보자.

"이 그림이 고기잡이배, 아이슬란드로 떠나는 원양어선 같은 배의 선실에 걸린다면 거기에서(위험한 바다를 헤쳐 나가는 동안) 자장가를 느낄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바그너의 음악이 그랬듯 슬픔에 상처를 입은 마음을 달래주는 예술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그림 '라 베르쇠즈(자장가)'는 옷의 색상이며 배경의 꽃 모양과 색깔 등을 달리하면서 1888년 12월부터 이듬해인 1889년 3월까지 동명으로 다섯 점의 그림이 그려졌고, 모은 손 중에서 오른손이 위에 있는 그림은 단 한 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유한 그림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림에서 자장가를 느낀다는 것만큼이나 독특하고 재미를 주는 이야기라는 생각에 언급해 본다.

피아노를 치는 마르그리트 가셰 오베르쉬르우아즈, 1890년 6월, 스위스 바젤 미술관<br>
피아노를 치는 마르그리트 가셰 오베르쉬르우아즈, 1890년 6월, 스위스 바젤 미술관

세 번째는, 오브제로 연주자와 악기가 등장하는 그림이다. 음악적 의도가 있음과 아예 음악적 의도 없이 그린 그림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분류다. 그래서 관람자의 상상력이 더 많이 허용되는 그림이다. 시각적인 면에서는 금방 음악적인 이미지를 느낄 수 있지만, 어떤 연주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림 '피아노 치는 마르그리트 가셰'(1890.7)를 보자. 그림 속 연주자인 마르그리트는 오베르에서 고흐를 치료하던 가셰 박사의 열아홉 살 딸이다.

그림은 세로가 가로의 두 배 길이인 세로 더블 스퀘어 캔버스에 그려졌다. 이 작품이 고흐의 그림 중 유일한 세로 더블 스퀘어 작품이다. 진한 보라색 피아노 앞에 올림머리를 한 마르그리트가 분홍색 띤 흰 드레스를 입고 양 손을 건반 위에 올려놓은 자세로 앉았다. 악보를 보는 듯 내려보는 눈동자며 건반을 누른 듯한 왼손과 높낮이가 다른 오른손이 연주에 열중한 자태를 잘 표현해 준다. 배경의 초록색 벽에 찍힌 오렌지색 점들은 오선지를 메운 악보처럼 선율을 타고 벽면 가득하다. 붉은색 융단에도 초록색 점이 대비를 이루면서 가락의 장단을 맞추는 듯하다. 가릴 곳 없이 붓질 또한 힘차게 임파스토기법이 뚜렷하게 보인다.

오베르 평원 오베르쉬르우아즈, 1890년 6〜7월,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 국립미술관
오베르 평원 오베르쉬르우아즈, 1890년 6〜7월,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 국립미술관
오베르 평원 드로잉 1890년 6월 중순 무렵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지에 드로잉 한 ‘오베르 평원’
오베르 평원 드로잉 1890년 6월 중순 무렵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지에 드로잉 한 ‘오베르 평원’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그림은 가로로 긴 화면의 오베르 들녘 그림과 대조해 보면 좋을 거야"라고 소개하며 편지지 위에 드로잉까지 해서 보냈다. 이어지는 이야기도 알듯 모를듯하다.

"서로를 끌어당기는 그림 – 자연의 단편적인 모습과 다른 하나 사이에 신비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있음을 사람들이 이해하기까지는 아직 멀었어. 만일 누군가 이를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지"

그런 배치를 상상해보면, 피아노의 선율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충만한 목가적 풍경을 노래하는 듯하다.

그는 언젠가 황혼녘에 양떼가 돌아오는 광경을 음악에 비유하며 "그것은 어제 들었던 교향곡의 피날레였다. 그날은 꿈처럼 지나갔고, 나는 하루 종일 그 가슴을 울리는 음악에 너무 몰두해 먹고 마시는 것조차 문자 그대로 잊어버렸다"고 읊조린 적이 있는데, 그러한 구도를 생각한 것일까.

마치,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지그프리트 목가(牧歌)'를 염두에 둔 듯. 바그너는 경제적 어려움에 동거 여 코지마와 스위스 시골 트립센으로 이사하게 되고, 그곳에서 살면서 '지그프리트 목가'를 작곡했는데, 원래는 ‘트립셴 목가’이다. 관현악곡인 이 곡은 제목처럼 서정적이고 평화로운 목가적 선율로 이뤄져 있다.

그렇다면 고흐는 바그너나 그의 '지그프리트 목가'를 알고 있었을까? 사실 테오가 여동생 빌레미나에게 쓴 1888년 3월 14일자 편지를 보면 고흐가 파리를 떠나 아를로 가기 전에 "형과 함께 바그너 콘서트를 즐겼다"고 한다. 또한 마리엘라 구쪼니도 그가 쓴 '빈센트가 사랑한 책'(2020)에서 고흐가 '바그너에 관한 책'을 읽었고, "그 책은 카미유 브누아의 ‘리하르트 바그너, 음악가, 시인, 철학자’라는 책"이다. 이뿐만 아니라 고흐는 많은 편지에서 바그너를 언급하고 있어 그를 잘 알고 있고 자신과 동시대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지그프리트 목가'를 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1869년 동거하던 코지마와 바그너 사이에 아들 지그프리트가 태어나자 1870년 8월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린다. 그해 성탄절 아침 바그너는 막 완성된 '지그프리트 목가'를 13명으로 구성된 관현악단이 자신의 집에서 연주했고, 이 소리에 잠을 깬 코지마에게 악보를 선물했다고 한다. 이때 바그너의 나이가 57세라고 하니, 37세 노총각 고흐가 '피아노 치는 마르그리트 가셰'를 그리는 마음은 어땠을까. 작곡가가 자신의 곡을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듯, 화가는 그림으로 그 마음을 다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피아노의 음반을 막 빠져나온 선율이 오렌지색 하트모양인 듯 벽면을 타고 흩날린다. 고흐의 "붓은 바이올린의 활인 양 자신의 손가락 사이에서 순전히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움직인 듯" 힘차고 유려한 느낌을 준다. 아마도 관현악인 '지그프리트 목가'를 피아노 독주곡으로 번안해 회화화할 수 있는 고흐의 미술세계를 이해하는 이만이 누릴 수 있는 곡이며 그림이다. 그래도 목가인지, 세레나데(serenade)인가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감상자 몫이다.

이 그림은 1934년 스위스 바젤미술관이 수집할 때까지 44년 동안 마르그리트의 침실에 걸려있었다. 고흐에 대한 그녀의 진정어린 존경과 사랑의 표현은 아닐까. 그래서 앨리슨 리치먼은 픽션이긴 하지만 고흐와 마르그리트의 사랑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 마지막 시기를 '반 고흐의 마지막 연인(원제:The Last Van Gogh)'이라는 소설로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거창한 주제로 시작해 고흐의 그림에서 음악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는 수준의 미약한 이야기를 했다.

고흐 사후 나타난 추상화의 점, 선, 면, 색채와 음표의 조합인 악보도 기호, 문자 등으로 구성돼 있다는 연관성을 확립, 발전시킨 음악적 미술. 20세기의 미술에서 느끼는 음악적 감흥보다 고흐 시기, 고흐의 "우리의 색채와 바그너의 음악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강하게 느낀다"는 마인더의 발로인 그림에서 더 음악적 감흥을 느낄 수 있었음은 왜일까. 아무튼 그의 말대로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미술에서 느껴 본 시간이었다.

다시 한번 더 그림을 본다. 흐르든 '지그프리트 목가'가 불현듯 나만의 '오베르의 목가'나 '마르그리트 세레나데'로 들려온다면 그것은 분명 고흐의 캔버스에서 흐르는 오케스트라일 것이다. 그림에서 듣는 음악은 상상이 아니라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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