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율산 리홍재 선생 
서예가 율산 리홍재 선생 
  • 배준철 기자
  • 승인 2022.06.0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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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는 우리네의 인생과 닮은 쉼 없는 창조적 혁신

(내외방송=배준철 기자) 예로부터 영웅은 난세에 출현한다고 했다. 광복과 6.25를 거쳐 급속도로 경제성장만 하던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최근 들어서야 ‘우리만의 것’을 되찾고 보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모호해져 가고만 있는 진짜 한국의 ‘얼’을 되살리고 있는 율산 리홍재 선생은 서예계의 풍운아 같다. 지난 1999년 대구에서 열린 봉산미술제 당시 커다란 붓을 장독 속의 먹물에 담갔다가 초대형화선지에 춤을 추듯 온몸으로 써내려가는, 이른바 ‘타묵 퍼포먼스’는 대한민국 서예계의 전설처럼 남아있다. 이어 안동 봉정사 초파일 야단법석에서의 타묵퍼포먼스는 우리 서예를 전통의 틀에 가두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접목함으로써 ‘창조적 서예’를 추구하는 율산 리홍재 선생, 이에 본지는 “서예도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의 새로운 사고를 들어본다.

보는 음악, 듣는 서예
“완성된 글씨만 보여주는 전시회는 그냥 관상용입니다. 서예는 정적이 아닌 동적 예술입니다. 붓이 움직이는 순간,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살아 있는 예술이어야 해요.” 선생은 인터뷰 내내 “갇힌 서예를 부수자”는 말이 나왔다. 붓이 마치 악보의 음표처럼 노래하고 춤을 추는 심오한 세계를 추구하는 리홍재 선생은 입버릇처럼 “서예는 음악과 같다”고 말한다. 선생은 작품의 소재인 글을 직접 쓰지는 않지만, 옛 선현들의 글을 자신만의 서체로 새롭게 표현해낸다. 전통을 존중하되 이를 자신만의 작업의 틀로 새롭게 변용하는 것이다. 음악에도 고저와 장단이 있듯, 서예에도 지속과 완급이 있다는 것이 선생의 생각이다. 

“서예는 음악이요, 춤이요, 스포츠입니다. 사람들은 서예가 붓으로 글을 쓰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글씨 안에는 음률과 리듬이 있고, 그 안에 인생철학이 포함돼 있어요. 우리는 흔히 활자가 죽었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악보를 갖고 연주하면 살아 움직이는 음악이 되듯, 글씨 또한 작품 속에 혼을 불어넣으면 살아 움직이는 예술이 됩니다.”

어린 율산, 서예계가 놀라다
리홍재 선생은 50여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추구하며 서예에 한결같은 열정을 쏟아 부었다. 지난 1982년에 서울미술제 초대작가로 활동한 선생은 해당 미술제에서 입선, 작품활동 초기부터 자신의 작품 10여점을 고가에 판매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허나 리홍재 선생의 작품이 처음부터 평단의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의 역동적이고 심오한 서예 작품을 보고 한 평자가 젊은 사람이 만들기 어려운 작품이라며 나이를 속인 것 아니냐면서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서예가 전통의 외형을 보존하는 예술이라는 틀에 박힌 사고는 리홍재 선생에게 일종의 황무지였다. 더 이상 깰 수 없을 것 같은 장벽 앞에서 선생은 잠시 붓을 놓기도 했다. 지리산에 붓과 벼루만 챙겨서 입산하는가 하면, 도난경보기를 만드는 회사에 잠시 취직하기도 했다. 하지만 붓을 놓자 담배를 끊은 것보다 더한 금단현상이 찾아왔다고 한다. 선생은 글씨를 쓰려는 충동을 못 이겨 석 달만에 다시 붓을 들었다. 

“서예에 색이 나오면 왜 안 되는 겁니까?” 
리홍재 선생에게 서예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일까. 독보적인 예술가들이 흔히 그러하듯 선생 역시 서예계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위해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지난 1996년에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국전심사 초대작가를 역임한 데 이어 지난 2000년과 2006년에 미술대전 서예부문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지냈다. 그는 이후 한국미술협회 이사, 대구서예대전 심사위원, 매일서예대전 초대작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정예작가협회 부회장, 국제서예가협회 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선생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일컬어 ‘색서작품(色書作品)’이라고 칭한다. 그의 작품 중에는 오방색을 이용하거나 여성의 나체를 그린 도발적인 작품도 있다. 그런데도 월드컵축구대회, 안동 국제탈출페스티벌, 대구 동성로축제 등 굵직굵직한 국내외 행사에서 갈채와 주목을 받았다. 리 선생의 신비전(新+vision)에서는 일반 서예작품과 복숭아, 포도, 앵두, 은행, 편백나무 등 각종 과일의 씨, 알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전시에서 선생은 서예계에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또한, 올해 초에는 2019 대구경북서예상을 수상하며 그간의 공헌을 인정받았다.

동청(東靑), 서백(西白), 남적(南赤), 북흑(北黑), 중황(中黃)으로 일컫는 ‘오방색’을 이용해 글에 색을 넣었다. ‘I LOVE YOU’, ‘SO HAPPY’ 등의 영어를 하트나 웃는 모습 등으로 형상화한 작품은 서단에 신선한 충격이 되었다. 선생의 작품은 해인사 성보박물관, 속리산 성불사, 고은사 대웅보전 주련, 계봉산 안수사, 용화사 일주문, 일괴 이명균 선생 유허비, 금강성장군 황보공 신도비 등 현판, 주련, 비석을 휘호했다.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
지난 5월 9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보신각에서는 밤 11시 반부터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임기 개시를 알리는 타종 행사가 열렸다. 평일, 늦은 밤임에도 꽤 많은 시민이 보신각 앞에 모여 새 정부의 출발을 기념했으며 이윽고 5월 10일 자정이 되자 공식적으로 임기 시작을 알리는 종이 33번 울렸다. 이는 새벽에 33번 종을 울려 도성 8문을 열었던 조선시대 ‘파루’의 전통을 따르는 것인데 타종에는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20명의 국민대표가 함께했다.

하지만 보신각 위에서 33번의 종을 치는 동안 대중의 시선은 보신각 앞 특별 무대에 쏠렸다. 바로 아래에서 리홍재 선생이 취임식 슬로건인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를 큰 붓으로 써 내려가는 타묵 퍼포먼스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모든 행사가 끝나고 그를 비추던 조명들도 꺼져갔지만, 리홍재 선생은 한동안 단상에서 내려올 수 없었다. 타묵 퍼포먼스를 처음 접했던 대중들이 그 퍼포먼스에 감동받아 흔히 말하는 ‘인증샷’을 지속적으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큰 붓을 활용해야 하는 퍼포먼스이기에 체력적으로 에너지 소비가 굉장히 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요청에 응하며 일일이 미소로 화답했다. 대중과 서예의 거리를 한 발 더 가깝게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실패를 즐기며 혁신하는 사람만이 인생과 예술 성공 
리홍재 선생은 후배들에게 항상 ‘실패를 즐기라’고 말한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환경에서 8남매 중 맏이로 자란 그는 공무원이 되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서예가의 길을 걸어왔다. 대학에서는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등 스무 살 무렵까지 서예와 무관한 삶을 살아왔지만, 지난 1979년에 죽헌 현해봉 선생을 만난 뒤로 서예가를 평생의 업으로 정했고 같은 해 대구 중구 덕산동에 율림서도원을 열어 후학을 양성했다. 

“서예를 하지 않았다면 음악가가 됐을 거예요. 서예를 하면서 음악을 하고 있는 셈이니 별반 다르지 않지만요. 제자들에게도 늘 스스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어떤 예술이든 옛것을 제 것으로 소화하지 않으면 평범한 재주꾼으로 남을 수밖에 없어요. 새로운 혁신을 만들려면 끝없는 도전이 필요한 법입니다.” 

 

선생은 ‘자아작고(自我作古: 옛일에 구애됨이 없이 모범이 될 만한 일을 자기부터 처음으로 만들어 냄)’, ‘자승자강’(自勝者强: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란 뜻)’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예술이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며, 고독한 외길 인생이자 항상 가장 앞선 자리를 추구하는 삶이라는 것을 선생 자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리홍재 선생은 ‘우현서도회’를 거쳐 36년의 땀과 추억이 있는 ‘율림서도원’ 시대를 마감하고 지난 2013년 10월, 대구 봉산문화거리에 위치한 120여평 규모의 서원 ‘도심명산장(道心名山藏)’이라는 이름을 걸고 그 만의 독창적인 예술혼을 펼칠 공간을 마련했다. 그에게 창작이란 안주함이나 지킴이 아닌 파중(破中)에서 오는 창의를 뜻한다. 그는 예술을 거듭 노래에 비유했다. 어쩌면 그의 삶 자체가 예술을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만의 서예란 마치 남의 노래를 부르면서도 내 감정으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남의 것만 그대로 따라 하면 창작은 영원히 나올 수 없어요. 새로운 것은 옛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혁신되어야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지요. 어제와 오늘, 내일이 다르지 않다면 5천 년이 지나도 삶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자신이 바라는 모습을 위해 혁신을 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어요.” 

타묵(打墨)이란 파격적인 예술행위를 통해 서예의 새로운 힘을 불어넣으며 ‘서단의 이단아’임을 자처했던 서예가 율산 리홍재 선생. 그가 대동방 서예 중심시대의 서막을 열었음을 느끼며 오늘날 창작의 고통을 땀과 눈물로 보상받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앞으로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음을 확신하며 본지와의 인터뷰 전문으로 그와의 짧은 만남을 갈무리 한다.

Q. 서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
어떤 계기가 있어 시작했다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천명으로 생각하고 글 쓰는 것에 미쳐서 살아왔다. 

Q. 타묵의 정의
많은 이들이 서예를 정적인 예술이라 칭한다. 난 그 예술을 동적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이를 타필비묵(打筆飛墨)이라 표현하는데 ‘붓을 치니 먹이 난다’는 뜻이다. 이를 줄인 말이 바로 ‘타묵’인데, 타묵은 진정 서예가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행위 예술임을 나타내는 퍼포먼스라 할 수 있겠다.

Q. 타묵의 역사
퍼포먼스를 시작한 건 90년대 초·중반부터이고 2000년대 들어서부터 여러 방송사를 포함한 미디어에 노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중들에게 조금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었다.

Q. K-타묵? 
해외에서도 어떻게 알았는지 타묵 퍼포먼스 초청이 여러 번 있어 왔다. 몽골에서 국제마라톤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했던 적도 있다. 이어 중국 일본 스위스 등에서도 수차례 초청돼 퍼포먼스를 한 경험이 있으며, 대체적으로 한국 예술에 감동받았다는 평을 들었다.

Q. 앞으로의 계획
현재 서예가 일반 대중과 약간의 거리가 있는 느낌이다. 이에 코리안 켈리그라피로써의 서예를 좀 더 드러낼 생각이고 그것이 나의 천명이라 여기고 있다.

Q. 내외TIMES 독자에게
이 세상에 종말이 올지라도 붓을 잡아라. 붓은 씀의 예술이다. 쓴다는 것은 감정이 있는 예술이라 여긴다. 고로 서예는 살아있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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