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고흐의 '고양이한테 그림 맡기기'
[문화산책] 고흐의 '고양이한테 그림 맡기기'
  • 전기복 기자
  • 승인 2022.06.2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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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그림 속의 고양이
▲ (고양이가 있는) 도비니의 정원, 오베르쉬르우아즈, 1890년 6월, 바젤 미술관
▲ (고양이가 있는) 도비니의 정원, 오베르쉬르우아즈, 1890년 6월, 바젤 미술관

(내외방송=전기복 기자) 고양이한테 그림을 맡기면 어떻게 될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놓는 것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이래저래 마음이 놓이지 않아 걱정됨은 매한가지다. 하지만 어엿한 한자리를 차지하는 모델로서의 고양이에게 맡겨진 그림은 우리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오늘은 고흐의 그림 속 고양이를 만나보고자 한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고흐의 그림 속에 묘사된 고양이를 보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결과가 고양이에 대한 고흐의 호불호적인 취향에서 비롯됐는지 아니면 고양이를 터부시한 시대적 배경의 영향이었는지 또한 궁금해진다.

일부 사람들은 고흐의 그림에서 고양이가 등장하는 그림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가 하면, 일부 미술가들은 극히 드물게 고양이 그림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고흐가 인간에게만 흥미를 느꼈던 것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 그릇을 쥔 손과 고양이 누에넌, 1885년, 반 고흐 미술관

그러나 일찍이 네덜란드 누에넌 시기, 농촌 들녘 여기저기를 오가며 새나 박쥐 심지어는 쥐까지 그린 그가 고양이를 그냥 지나쳤을까. 그럴 리 만무하다. 반 고흐 미술관이 소장하는 '그릇을 쥔 손과 고양이'(1885) 라는 데생 작품을 찾아본다. 뭉뚱그려 놓은 듯한 고양이는 기도하듯 잠든 듯한 모양새로 웅크린 자세다. 대상을 묘사한 선들이 고르지 못하고 불안한 느낌을 준다. 그의 초기작에서 나타나는 빈약한 데생 실력이 고스란히 고양이 그림에 투사돼 있다고 하면 고약할까.

이후 벨기에 안트베르펜, 프랑스 파리, 아를에 이르기까지 그의 그림에서 고양이의 존재를 찾아볼 수 있는 그림은 없었다. 왜일까? 고양이 그림의 희소성은 그가 동물 모델, 특히 고양이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고흐와 동시대의 화가라 할 수 있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전하는 일화를 생각해 보자.

한번은 르누아르가 매번 모델료가 없어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고흐에게 "모델료가 들지 않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그려 보게"라고 하자 고흐는 "고양이는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안는 거랍니다"라고 응수했다니, 말인즉슨 고양이는 애완일 뿐 모델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대적으로 19세기에 접어들면, 고양이는 교통수단의 발달로 유럽 내 이동은 물론 다른 여러 대륙으로 퍼져나갔고 넓어지는 영역만큼이나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아서, 애완(pet)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는 시기다. 그래서일까.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자신의 그림 속에 고양이를 즐겨 그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네의 '올랭피아' 속 검은 고양이(1863)나 '여자와 고양이'(1882), 베르트 모리조가 그린 '숙녀와 고양이'(1892), 르누아르의 '고양이를 안은 여인'(1868)이며 '고양이를 안고 있는 줄리 마네'(1887), 고갱의 '밤의 카페, 지누 부인'(1888)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나 '우리는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1897~1898)의 뒷모습인 고양이 등 많은 그림 속의 고양이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상주의의 활동 시기와 애완동물로서 고양이의 황금기는 겹친다”는 혹자의 이야기를 감안하면, 고흐의 그림에서 고양이의 등장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시대적 맥락의 영향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취향이나 인식에 기인한다.

▲ 도비니의 정원 오베르쉬르우아즈, 1890년 7월, 히로시마 미술관
▲ 도비니의 정원 오베르쉬르우아즈, 1890년 7월, 히로시마 미술관

고흐는 밀레의 '씨뿌리는 사람'을 기회 있을 때마다 모사하는 등 부지런한 농부를, 그리고 고뇌에 찬 모습을 그리기를 좋아했다. 고양이가 화나거나 졸고 웃는 듯한 모습은 봤으나 고뇌하는 표정의 고양이는 보지 못했다. 양지바른 창가에서 졸거나 어슬렁거리는 모습에선 게으름마져도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보면, 한마디로 고양이는 고흐 스타일의 모델이 아닐까.

다른 측면에서는 '상반되는 사람에게 끌린다'는 말이 있듯이, 고양이의 길들여지지 않는 비타협성과 독립성이라는 성질은 어떤 면에서 고흐의 고집스럽고 까칠함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닮아서 회피했다고 할까. 그 많은 자화상만으로 충분한데 굳이 자신을 닮은 고양이까지 그릴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고흐의 기독교적인 DNA에서 기인하는 바도 배제할 수 없다. 고흐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목사인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도 한때 목사를 꿈꾸다 좌절된 현실에선 보리나주 탄광촌에서 평신도 설교자의 길을 걷기도 했다. 성경을 탐독하고 번역하며 그 속에 빠져 살기도 했다.

어떤 이는 "고양이에 대해 구약성경에 단 한마디도 적혀있지 않은 점은 놀랍고, 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반신(半神) 바스테트의 지위까지 오르는 행운을 누린 고양이가 기독교를 형성한 이스라엘 민족 그리고 이집트에서의 혹독한 강제 노동을 했던 이스라엘인들의 입장에서는 인간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던 고양이가 좋았을 리 없다"는 논리를 편다.

이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악마의 분신이니 악마와 계약을 맺은 이교도 동물'로 인식되던 골 깊었던 역사를 생각하면 고흐 그림에서 고양이를 찾기 어려운 근거로 생각하는 것이 과하고 억지스러우나, 일말의 무의식적으로 받았을 수 있는 영향까지를 상상해 보는 것은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 주는 면이 있다.

고양이 전성시대에서도 고흐의 그림에서 고양이가 등장하는 작품이 극히 드물다. 찾아보고 검색해 봐도 많은 고흐의 그림 속에서 고양이가 묘사된 그림은 단 세 작품뿐이다(밀레 그림 등 모사 작품 제외). 세 작품이라고 하지만 제대로 된 유화작품은 '(고양이가 있는) 도비니의 정원'(1890) 한 작품밖에 없다. 나머지 두 작품은 이미 소개한 데생 '그릇을 쥔 손과 고양이'와 '목욕장의 정원'(1888)이다.

▲ 목욕장의 정원 아를, 1888년 8월, 반 고흐 미술관
▲ 목욕장의 정원 아를, 1888년 8월, 반 고흐 미술관

먼저 '목욕장의 정원'을 보면, 화면 중앙 가득하게 타원형의 정원이 자리하고 전경에는 길의 빈 공간을 물동이와 앉은 고양이를 배치해 시골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현실감과 친근감을 부여하고 있다. 원경에는 건물이 있고 그 위로 점으로 묘사된 하늘이 독특하다.

이 그림을 그린 그해 8월은 아를의 노란 집에서 고갱과 함께 할 기대감에 부푼 시기로 그의 방을 꾸미는 데 사용할 '해바라기' 연작을 그리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를 감안하고 정원 가득한 해바라기꽃을 바라보면 고양이의 존재도 또 다른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전경에 놓인 물동이는 손잡이가 세워져 있고, 빗금의 그림자는 마치 발 달린 물동이처럼 동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반면, 생명체인 고양이가 이젤 앞에 섰을 화가나 감상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물끄러미 앉은 모습이 더 정적이다. 이러한 모습은 아를로 선 듯 나서지 못했던 고갱의 소극적인 자태를 은연중 드러낸듯하다.

해바라기 그림으로 고갱의 방을 장식하고자 한 고흐의 마음이 부지불식간에 고양이를 목욕장의 정원에 그려 넣어 마치 노란 집을 방문한 고갱이 자신의 '해바라기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을 예견해본 것일까. 고흐의 시선과 관심은 온통 정원의 해바라기꽃으로 향해 있으나 고갱의 현현처럼 느껴지는 고양이의 고개는 정원의 꽃을 향하기보다는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리느냐'는 듯 화가를 바라봐 둘의 시선은 어긋날 뿐이다.

고흐는 언젠가 이 드로잉을 유화로 완성하고자 했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했고, 아를에서 고갱과의 화가공동체를 일구겠다는 꿈도 '귀 절단 사건'으로 파국을 맞게 된다. 그림 속 고양이를 고갱으로 상상하니, 두 화가가 그림에 대해 추구한 방향성이 달랐음을 예견한 그림으로 읽힌다.

▲ 1890년 7월 23일 동생 테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 동봉된 ‘도비니의 정원’ 스케치
▲ 1890년 7월 23일 동생 테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 동봉된 ‘도비니의 정원’ 스케치

마지막 한 작품은 '(고양이가 있는) 도비니의 정원'으로, 고흐는 1890년 7월 23일경 동생 테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 이 작품의 스케치를 동봉했다. 이 그림 좌측 하단에 묘사된 검은 고양이는 정원을 가로질러 우측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눈에 잘 띄지 않는데, 모티브가 같은 동명의 그림에서는 그려졌던 '고양이'를 지운 흔적이 있다.

전경은 초록과 핑크빛 풀밭, 중앙에는 흰 장미꽃이 핀 타원형의 꽃밭, 배경에는 벤치 하나와 의자 세 개 그리고 화가 도비니의 미망인 마리 소피 도비니가 노란 모자에 검은 옷을 입고 섰다. 푸르스름한 기와지붕의 집, 옅은 초록색 하늘. 왼쪽의 떨기나무 덤블과 하얗게 바랜 섶나무 가지들, 오른쪽 울타리와 흙담 위로 자란 보라색 잎 달린 개암나무…… 고흐 특유의 붓질로 그려졌다. 정원은 싱그런 색으로 풍성하나 검은 형체의 두 생명체는 멀리 떨어져 있는가 하면 고양이는 여인이 서 있는 방향과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고양이가 망자 도비니의 현현이라 해도 여인이나 고양이 모두 외롭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그림 속 고양이를 '세상에서 버림받은 채 캔버스를 마주하며 외로웠던 빈센트 반 고흐의 분신'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고흐가 인상주의가 태동하는 데 큰 영향을 준 화가로 평가받는 도비니의 풍경화를 좋아했고 존경하던 그의 집을 찾아 그림을 그렸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그림 속 의자 세 개는 도비니와 그의 미망인 그리고 정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고흐와의 만남을 의미하는 듯하다. 현재 정원에 발을 딛고 있는 실존은 도비니의 부인과 고흐임이 틀림없고 나머지는 죽은 도비니의 존재를 고양이로 표현했을까. 고양이뿐만 아니라 동물들은 현장을 배회하며 냄새로 영역을 표시하는 존재가 아닌가.

그림 우측 하단에 선명하게 기입된 '도비니 정원'이라는 글자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듯하고, 좌측의 "고양이와 시각적인 대조를 이룬다.

저녁 : 불침번 생레미, 1889년, 반 고흐 미술관
▲ 저녁 : 불침번 생레미, 1889년, 반 고흐 미술관

기타 고흐의 그림에서 남은 고양이의 존재는 밀레의 그림을 모사한 '저녁:불침번'(1889)에서 볼 수 있다. 농부 부부가 등불 아래 앉아서 아내는 옷을 깁고, 남편은 바구니를 만들고 있다. 아이는 잠들었고 벽난로 앞에 고양이가 앉아있다. 은은한 보라색과 바이올렛 색상뿐만 아니라 원화에 충실해 있는 고양이를 그렸겠지만,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고양이가 저녁의 평온함을 더하고 있다. 고흐가 남프랑스 생레미 외곽에 있는 생폴드모졸병원에서 요양할 때 밀레의 흑백 판화본을 자신의 색채로 ‘번역’하듯 유화로 변화시킨 작품이다.

이제까지 고흐의 그림 속에서 어엿하게 한자리를 차지하는 모델로서 고양이에게 맡겨진 그림들을 살펴봤다. 본인이 확인한 바로는 유화 '(고양이가 있는) 도비니의 정원' 단 한 점에서 고양이의 존재를 찾아볼 수 있었으니, 고양이한테 생선 맡기기만큼이나 고양이에게 그림을 맡길 확률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드로잉 두 작품과 밀레의 판화본을 모사한 작품은 제외했다. 그 희소성의 근원에는 시대적 맥락보다는 고흐의 개인적 취향이나 인식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정원이라는 관점도 좋으나 고흐 작품에서 고양이가 등장하는 단 한 점뿐인 그림이라는 사실로 ‘도비니의 정원’에 다가서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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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성 2022-07-27 15:24:36
고양이가 너무 귀엽군요 좋은글 또 읽고갑니다

오석원 2022-06-21 17:11:01
고흐에대한 깊은고찰과 서평 감명깊게 보고있습니다
앞으로의 연재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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