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는 선과 면, 색...'감성적 예지'는 선명해져
[편집자주] 직장인들의 퇴근시간에 맞춰 사실상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8일 오후부터 오는 12일까지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고, 저마다 친지들과 만나 회포를 풀거나 차례를 지내고 때로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때로는 코로나19에 감염돼 자가격리 중이거나 입원한 환자들도 있다. '내외방송'은 이에 갖가지 이유로 문화, 축제, 공연, 전시장을 찾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연휴 이전부터 정적인 시선이 머무는 전시회. 유명 작가의 전시회부터 신인작가의 개인전, 다수의 작가들이 모여 출품작을 내건 전시회 등 수많은 전시회를 찾아봤다. '추석연휴 기획특집'은 박세정 기자와 정지원 기자가 직접 발로 뛰며 취재했다.
(내외방송=정지원 기자) 시간이 지나면 선명했던 기억도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희미해진 기억을 떠올리면 마치 퍼즐처럼 군데군데 비어 있다.
머릿속 기억들은 물감이 퍼지듯, 또 부드러운 실크자락이 펼쳐지듯 그렇게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지난 7일 '내외방송'은 서울 종로구 갤러리내일에서 한창 열리고 있는 전시회 '기억, 시간 속에 젖다'를 찾아 지나간 시간이 만들어낸 진리를 느껴봤다.
우리 머릿속에는 새로운 기억들이 저장됐다가도 사라진다.
최윤정 작가는 기억의 소멸과 생성을 꽃에 비유했다.
기억이 꽃처럼 피고 지면서 기억의 한 줄기인 실크자락이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흩날리는 꽃잎들은 기억에 대한 감수성을 풍부하게 해준다.
분명 흰 꽃이지만 아른아른거리는 듯한 형상이다.
최 작가는 선과 면, 색의 형태를 뚜렷하게 구분짓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희미해지면서 더욱 선명해지는 신비로운 역설과 주어진 공간을 사라지다 남은 어렴풋한 것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는 최 작가의 바람이 묻어난다.
붉고, 푸른 강렬한 배경에 희미한 형상들이 보인다.
기억의 꽃일까 아니면 점점 희미해지지만 더욱 선명해지는 감수성일까.
시간 속에 형태조차 없어져버린 기억들이 뭉쳐져 하나의 덩어리가 됐다.
기억의 덩어리는 왜곡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이 좋든 안 좋든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나타날 뿐이다.
이것이 바로 최 작가가 말하고픈 '감성적 예지'가 아닐까?
격자무늬와 색, 그리고 그 안에 비치는 기억의 꽃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시간은 지나도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최 작가는 "선이 면 속에, 면이 색상 속에 스미고 잠기면 분방하고 거침없는 형상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흰 선으로 만들어진 격자무늬 속에 스며든 또 다른 무늬들은 단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머릿속에 칸칸이 자리잡은 우리의 기억들도 분명히 정해진 구역이 있겠지만, 그 속에서는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을 것이다.
이 자유분방한 기억들이 작품 속 넓게 펼쳐진 우산들을 타고 시간이 안내하는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는 것은 아닐까?
최 작가가 전하는 흘러간 시간과 가슴 속 그리움을 느끼고 싶다면 오는 14일까지 이곳에 방문하기를 바란다.
한편, 최윤정 작가는 상명대학교 한국화전공 박사를 수료했으며 쉐마미술관과 정부서울청사 등 총 30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시 공공미술프로젝트와 경인미술대전 등 심의위원으로서도 활동했으며 현재는 서초미술협회와 한국미술협회 등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