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사물'이 전하는 말, 그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문화산책] '사물'이 전하는 말, 그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4.05.24 10: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사물은 무슨 꿈을 꾸는가'
박소라 '시티펜스'. (사진=임동현 기자)
박소라 '시티펜스'. (사진=임동현 기자)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우리는 늘 '사물'을 사용한다. 사물이 없으면 인간은 온전한 삶을 누릴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사물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마치 공기가 우리와 너무나 밀접한 관계이기에 중요성을 바로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심지어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사물을 '무생물'로 규정하기도 했다. 무생물(無生物), 즉 생명이 없는 존재라고 명명한 거다. 생명이 없으니 생각도 없고 생각이 없으니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능력을 발휘하는 게 사물인 거다. 이는 전적으로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 위주로 세상을 보기에 나온 이야기다.

하지만 사물이 만약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면 어떨까? 집 책장에 꽃혀있는 책들, 볼펜통에 꽂힌 볼펜들이 서로 자기들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이 서로서로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걸 상상해 보는 건 어떨까? '넌 나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잖아. 바보'라고 핸드폰이 으스대고 있다고 상상한다면 또 어떨까?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의 전환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인간과 사물은 사실 위아래 관계가 아닌, 함께 세상을 만들고 개척하는 불가분의 관계, 같은 목적을 가진 존재가 아닐까?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전시가 최근 열리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사물은 무슨 꿈을 꾸는가>가 그것이다. 이 전시는 사물을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주체'이자 '현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존재'로 가정하면서 사물과 인간이 함께 세상을 만들어가는 방법과 과정을 총 15명(팀)의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 제안한다.

우주+림희영 'Song From Plastic'. (사진=임동현 기자)
우주+림희영 'Song From Plastic'. (사진=임동현 기자)

축음기가 있다. 이 축음기는 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최초의 소리 재생 장치인 '틴포일 실린더 축음기'다. 이 축음기에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만든 레코드가 올려져 있다. 이 레코드가 돌아가자 시인 윤동주의 '별 헤는 밤' 낭송이 들려온다. 축음기가 설치된 뒷면 벽에는 다양한 플라스틱 사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주+림희영(유병준, 임희영)의 <Song From Plastic>이다. 플라스틱에 소리를 입힌 것은 바로 먼 훗날 미래의 생명체가 발견할 수 있는 '플라스틱 화석'을 상상한 것으로 우리의 소비문화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물을 종이로 옮기고 다시 공간으로 가져오는 시도를 하는 김도영의 작품들과 아톰 피규어, 알람시계를 그라인더로 갈아버리는 영상을 통해 사물의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신기운의 <진실에 접근하기> 시리즈, 해조류 분말 가루로 만든 바이오플라스틱을 선보인 이장섭의 <보텍스>등의 작품을 지나면 관람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작품들을 연달아 만나게 된다.

관람객이 자유롭게 위치와 모양을 변경할 수 있도록 제작한 박소라의 <시티펜스>는 인간과 사물의 배치가 인간의 의도와 힘만이 아닌, 인간과 사물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구조물을 통해 보여주며 잭슨홍의 <러다이트 운동회>는 인공지능 등의 과학기술에 대한 공포를 공놀이로 형상화한 것으로 역시 관람객이 직접 공놀이에 참여하며 작품을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을지로 '기계 태양의 정원'. (사진=임동현 기자)
김을지로 '기계 태양의 정원'. (사진=임동현 기자)

그리고 전시는 인간과 사물의 개념을 바꾸는 작품들을 보여준다. 루시 맥레이는 <퓨처킨>을 통해 인간이 인간의 자궁이 아닌 실험실에서 설계되어 태어나는 미래를 보여주며 김을지로는 <기계 태양의 정원>을 통해 자연의 영역인 태양이 인공적인 자연환경이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이 입을 때 비로소 멋이 드러나는 '의류'를 '물명체'(물체+생명체)로 지칭하며 옷을 하나의 객체로 독립시키는 김한솔의 작품들도 인상깊다.

이제 전시의 제목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사물은 무슨 꿈을 꾸는가>. 사물은 분명 생명체처럼 존재하며 그렇기에 인간이 모르는 꿈을 꿀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작품들을 보게 되면 사물은 '꿈을 꾸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김한솔 '인접한 흉내주기 넘버 1'. (사진=임동현 기자)
김한솔 '인접한 흉내주기 넘버 1'. (사진=임동현 기자)

사물은 분명 인간에게 말을 걸고 있으며 인간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려고 하고 있다. 사물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 그것이 바로 사물이 꾸고 있는 꿈이 아닐까? 그리고 그 꿈을 가지고 사물은 계속 말을 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인간과 사물의 개념이 바뀌고 심지어 관계가 바뀌는 상황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작품 속 사물이 전하는 말에 한 번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인간과 사물은 공존하고 있으며 주종도, 상하 관계도 아닌 함께하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사물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될 것이다. 사물이 전하는 말, 그리고 사물을 향한 인간의 삐딱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전시다.

전시는 9월 18일까지 열린다.


오늘의 이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 : (주)내외뉴스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04690
  • 인터넷신문등록일자 : 2017년 09월 04일
  • 발행일자 : 2017년 09월 04일
  • 제호 : 내외방송
  • 내외뉴스 주간신문 등록 : 서울, 다 08044
  • 등록일 : 2008년 08월 12일
  • 발행·편집인 : 최수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3 (뉴스센터)
  • 대표전화 : 02-762-5114
  • 팩스 : 02-747-534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진
  • 내외방송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내외방송.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wtn.co.kr
인신위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