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우리는 늘 '사물'을 사용한다. 사물이 없으면 인간은 온전한 삶을 누릴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사물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마치 공기가 우리와 너무나 밀접한 관계이기에 중요성을 바로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심지어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사물을 '무생물'로 규정하기도 했다. 무생물(無生物), 즉 생명이 없는 존재라고 명명한 거다. 생명이 없으니 생각도 없고 생각이 없으니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능력을 발휘하는 게 사물인 거다. 이는 전적으로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 위주로 세상을 보기에 나온 이야기다.
하지만 사물이 만약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면 어떨까? 집 책장에 꽃혀있는 책들, 볼펜통에 꽂힌 볼펜들이 서로 자기들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이 서로서로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걸 상상해 보는 건 어떨까? '넌 나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잖아. 바보'라고 핸드폰이 으스대고 있다고 상상한다면 또 어떨까?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의 전환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인간과 사물은 사실 위아래 관계가 아닌, 함께 세상을 만들고 개척하는 불가분의 관계, 같은 목적을 가진 존재가 아닐까?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전시가 최근 열리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사물은 무슨 꿈을 꾸는가>가 그것이다. 이 전시는 사물을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주체'이자 '현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존재'로 가정하면서 사물과 인간이 함께 세상을 만들어가는 방법과 과정을 총 15명(팀)의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 제안한다.
축음기가 있다. 이 축음기는 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최초의 소리 재생 장치인 '틴포일 실린더 축음기'다. 이 축음기에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만든 레코드가 올려져 있다. 이 레코드가 돌아가자 시인 윤동주의 '별 헤는 밤' 낭송이 들려온다. 축음기가 설치된 뒷면 벽에는 다양한 플라스틱 사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주+림희영(유병준, 임희영)의 <Song From Plastic>이다. 플라스틱에 소리를 입힌 것은 바로 먼 훗날 미래의 생명체가 발견할 수 있는 '플라스틱 화석'을 상상한 것으로 우리의 소비문화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물을 종이로 옮기고 다시 공간으로 가져오는 시도를 하는 김도영의 작품들과 아톰 피규어, 알람시계를 그라인더로 갈아버리는 영상을 통해 사물의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신기운의 <진실에 접근하기> 시리즈, 해조류 분말 가루로 만든 바이오플라스틱을 선보인 이장섭의 <보텍스>등의 작품을 지나면 관람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작품들을 연달아 만나게 된다.
관람객이 자유롭게 위치와 모양을 변경할 수 있도록 제작한 박소라의 <시티펜스>는 인간과 사물의 배치가 인간의 의도와 힘만이 아닌, 인간과 사물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구조물을 통해 보여주며 잭슨홍의 <러다이트 운동회>는 인공지능 등의 과학기술에 대한 공포를 공놀이로 형상화한 것으로 역시 관람객이 직접 공놀이에 참여하며 작품을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전시는 인간과 사물의 개념을 바꾸는 작품들을 보여준다. 루시 맥레이는 <퓨처킨>을 통해 인간이 인간의 자궁이 아닌 실험실에서 설계되어 태어나는 미래를 보여주며 김을지로는 <기계 태양의 정원>을 통해 자연의 영역인 태양이 인공적인 자연환경이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이 입을 때 비로소 멋이 드러나는 '의류'를 '물명체'(물체+생명체)로 지칭하며 옷을 하나의 객체로 독립시키는 김한솔의 작품들도 인상깊다.
이제 전시의 제목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사물은 무슨 꿈을 꾸는가>. 사물은 분명 생명체처럼 존재하며 그렇기에 인간이 모르는 꿈을 꿀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작품들을 보게 되면 사물은 '꿈을 꾸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사물은 분명 인간에게 말을 걸고 있으며 인간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려고 하고 있다. 사물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 그것이 바로 사물이 꾸고 있는 꿈이 아닐까? 그리고 그 꿈을 가지고 사물은 계속 말을 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인간과 사물의 개념이 바뀌고 심지어 관계가 바뀌는 상황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작품 속 사물이 전하는 말에 한 번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인간과 사물은 공존하고 있으며 주종도, 상하 관계도 아닌 함께하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사물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될 것이다. 사물이 전하는 말, 그리고 사물을 향한 인간의 삐딱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전시다.
전시는 9월 18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