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에드바르 뭉크(1863~1944). 이 이름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그림, 그리고 단어가 있다. <절규>. 특유의 기괴한 표정과 흔들리는 듯한 배경이 인상적인 이 작품은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전쟁, 학살 등이 자행됐던 20세기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인식됐으며 가장 많이 복제됐고 그 때문에 뭉크의 이름은 몰라도 그림은 누구나 다 기억하는 작품이 됐다.
하지만 모든 예술가들이 그렇듯 뭉크도 대표작인 <절규>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예술가의 생애, 그리고 평가에서 한두편의 대표작은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이다.
지난달 22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전 세계 23곳의 소장처에서 온 140여 점의 뭉크의 그림을 한 자리에 모은 <에드바르 뭉크 : 비욘드 더 스크림>이 열리고 있다. 제목에 나와있는 '비욘드 더 스크림(Beyond the Scream)'은 '절규를 넘어'라는 뜻이다. 제목의 '절규'는 뭉크를 상징하는 대표작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그가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고민했던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 불안과 고독 등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는 강렬한 색감과 왜곡된 형태, 관행을 무시한 예술 기법으로 자신의 생각은 물론 자신이 처한 현실을 숨기지 않고 전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생의 프리즈' 프로젝트다. 이 작업은 사랑, 생명의 원천, 매력, 키스, 결합, 이별, 절망, 울음, 노년, 죽음을 주제로 한 생명의 순환을 바탕으로 하며 이 주제가 그의 작품의 기조가 됐다. 그의 회화와 판화에는 이처럼 자신이 겪는,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상황들이 들어있다. <절규>를 넘은, 그리고 인생에서 '절규'를 이끌어내는 상황을 넘는 뭉크의 생애를 어렴풋이나마 가슴에 담을 수 있는 전시다.
뭉크의 시작은 인물과 풍경이었다. 20세가 된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을 시작으로 물감의 투영성을 활용한 초상화 <이스타 칼슨>, 풍경 위에 인물을 겹쳐놓으며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 <그물을 고치는 남자> 등이 그 대표작이다.
전시는 어느덧 그가 추구했던 '생의 프리즈'가 진화되는 과정을 보여주게 된다. 사랑을 상징하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성을 잃게 되면서 '완전한 방황'을 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키스>, 상징주의의 첫 시작이 된 <뱀파이어 인어>,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 느끼는 실의와 슬픔, 우울감을 표현한 <생클루의 밤> 등을 지나면 우리에게 익숙한 뭉크의 <절규> 채색 판화본이 나온다.
하지만 뭉크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 이후부터 시작된다. <병든 아이>에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누이를 결핵으로 잃었고 13세에 결핵에 걸렸다가 살아남았던 뭉크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 놀란 눈을 한 사람들이 정면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여주는 <불안>, 남성의 목에 입을 맞추는 여성을 그린 <뱀파이어>, 여성의 모습과 그 사이를 맴도는 정자를 표현한 <마돈나> 등이 선보인다.
그는 이처럼 현실을 피하거나 현실과 싸운다는 개념보다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를 회화와 판화로 표현했다. 그가 묘사하는 풍경 역시 과거의 구조를 벗어나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무성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영화와 유사성을 보이는 풍경을 화폭에 담아냈다. 다양한 초상화와 목판화, 그리고 작품을 의도적으로 날씨에 노출시키는 '로스쿠어' 기법을 이용한 작품들을 지나가게 되면 어느새 전시의 끝이 보인다.
우리는 어느덧 그가 죽기 1년여 전에 완성한 <자화상>을 보게 된다. 맨 처음 <자화상> 속 미소년은 이제 머리가 벗겨지고 눈도 잘 보이지 않는 추한 얼굴의 80대 노인이 되고 말았다. 고독과 노화, 역시 뭉크는 이것을 숨기지 않는다. 오른쪽 눈의 혈관이 파열되면서 실명에 가까운 상태까지 갔던 그는 생의 마지막 몇 년 동안 '클로즈업 자화상' 연작을 그리면서 소멸되어가는 자신을 표현했다.
원판과 채색본 등 똑같은 그림의 서로 다른 형태들을 전시한 작품들이 많다보니 반복되는 그림들에 피곤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존재한다. 워낙에 방대한 뭉크의 작품들과 자료들을 이번 기회를 통해 모두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한 것이기는 하지만 똑같은 전시 형태가 반복해서 이어진다면 보는 사람들도 조금씩 집중력이 흩어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했어야하지 않는가라는 아쉬움을 느꼈다.
그래도 이번 전시는 뭉크의 생애를 작품을 통해 조망하는, 이를 통해 뭉크라는 인물이 왜 미술의 '혁명가'가 됐으며 미술사에서 그의 이름이 부각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는 전시다. 풋풋한 20대의 자화상으로 시작해 80대 노인의 자화상으로 막을 내리는 전시. 삶이 주는 수많은 감정 속에서 이를 기록하고 화폭에 그려냈던 뭉크의 평생을 바친 노력이 곳곳에 배어 있는 전시다.
전시는 오는 9월 19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