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오는 4일 개봉하는 영화 <딸에 대하여>는 제36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동료 교수의 부당한 해고에 반발하며 투쟁하지만 정작 생계 문제는 생각하지 않는 딸 '그린'(임세미 분)이 어느 날 집에 동성 연인 '레인'(하윤경 분)을 데려오면서 같이 살게 되고 이를 바라보는 엄마(오민애 분)는 혼란과 함께 딸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무연고 노인 제희(허진 분)를 성심성의껏 돌보는 요양보호사이기도 한 엄마. 갈등 속에서도 조금씩 이해를 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작게나마 희망을 안겨주는 이야기가 바로 영화 <딸에 대하여>다.
영화는 소설의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하면서도 영화 특유의 '쇼트'를 충분히 활용하며 원작과 또 다른 매력의 작품으로 새롭게 변신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첫 장편 영화를 선보인 이미랑 감독의 연출력이 주목된다. 또 엄마 역을 맡은 오민애 배우는 절제된 감정, 외로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표정 등을 실감나게 선보이며 호연을 펼쳤고 임세미 배우 역시 강단지지만 때로는 철없는 모습도 보여주는 딸의 캐릭터를 실감나게 연기했다. 이들이 지난달 라운딩 인터뷰를 통해 전한 영화 이야기를 이제 글로 풀어보려한다.
이미랑 감독 "소설의 섬세한 필력, 쇼트로 잘 전달하고 싶었다"
"필력이 좋은 작품이고 주제를 완벽하게 통찰한 소설이기에 제가 더 깊은 주제를 보여준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어요. 영화라는 것은 섬세하고 자기 통찰적인 언어를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에 시각과 청각, 쇼트와 쇼트라는 언어로 영화적인 움직임을 제대로 보여주고 관객이 체험할 수 있도록 잘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첫 장편 <딸에 대하여>를 찍으면서 이미랑 감독은 '섬세하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고 말한다. 좋은 원작이 있었기에 영화화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감독으로서 고민할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다. '감독은 쇼트로 말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그는 원작을 보며 머릿속으로 그려낸 쇼트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시급한 문제로 여기도 편집감독과 1년 가까이 편집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나온 장면 중 하나. 초반에 엄마가 텅 빈 집에 들어와 청소하고 혼자 식사하는 장면에서는 어두운 조명으로 외로움의 정서를 보여준다. 하지만 집에 그린이 들어오고 레인이 들어오면서 어두웠던 집에 조금씩 빛이 들어오고 마침내 당근 케이크를 먹는 장면에서 변화의 절정을 맞는다.
엄마의 캐릭터 묘사도 소설과 다른 점이 보인다. "원작은 엄마의 1인칭으로 본인의 마음이 섬세하게 표현돼요. 영화 속 엄마보다 더 뜨거운 사람일 수 있고 감정의 폭이 큰 사람이기도 하죠. 이 경우 영화에서는 나레이션을 많이 하는데 내면 묘사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저는 영화적 언어가 아니라고 느꼈어요. 말은 없지만 상대를 통해 반응하면서 엄마의 감정을 상상하는 과정을 보이려 했죠. 이 엄마를 오민애 배우님이 맡으시면서 생각지도 못한 리액션이 들어오고 캐릭터가 확대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엄마가 자기도 모르게 생기는 감정을 오롯이 느끼는데 그게 오민애 배우를 통해 가능해졌어요. 예기치 못했던 캐릭터의 다양한 면모가 나왔죠".
영화에서 엄마는 제희를 '과도할 정도로' 돌본다. 이로 인해 요양원장과 갈등을 빚기도 하며 가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재정 문제로 제희가 요양원에서 쫓겨나고 아무도 그를 돌보는 이가 없자 자신의 집으로 데려갈 결심까지 하게 된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 아마 이 궁금증을 가질 관객이 있을 것이다.
"엄마 입장에서는 남편과 사별하고 딸이 있지만 성소수자이기에 가족을 이룰 수 없다고 여기는데 제희가 사회적인 활동을 많이 했음에도 늙어서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요양원에서 짐짝 취급받는 걸 보면서 어느덧 '나도 그렇게 늙어가겠구나'라고 느낀 것 같아요. 한 마디로 제희를 자신의 미래로 본 거죠. 그렇기에 제희의 일이 남의 일이 아닌, 자기 자신이 겪는 일로 생각한 거에요".
이처럼 영화는 여성, 치매를 앓는 독거노인, 성소수자,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새로운 가족을 향해 가는 이야기로 표현된다. 사회적 약자로 이들을 표현하지만 영화를 보게 될 관객들도 이들 중 한 명일 수 있기에 영화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미랑 감독은 말한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이 보면 진입 장벽이 있을 수 있어요. 영화보는 이유 중 하나가 쉬고 싶어서인데 이 영화는 뭔가 답답해보일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보시고 나면 우리도 늙어가고, 부모을 돌봐야하고, 가족이 없을 수도 있고 우리도 어떻게 보면 비정규직이거든요. 소수자, 약자로 불리지만 이 중 어느 하나에 해당되지 않을 사람은 없다고 봐요. 자신의 모습을 비춰줄 다양한 캐릭터가 있어요. 이제 가족주의의 틀로만 우리 삶을 영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공동체로 확장되어가고 있다고 봐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았다고 봐요".
임세미 배우 "함께 만들고 채우는 독립영화, 작지만 엄청 큰 선물"
"엄마 같은 사람들이 못 하게 막고 있다고 생각은 안 해?" 성소수자로, 비정규직 시간강사로 살아가며 세상과 싸워가는 '그린'은 엄마에게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하고 있다'며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이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세미의 절기'를 통해 제로웨이스트, 비건의 삶을 공유하는 배우 임세미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계에 대해 무감각하고 때로는 철없는 모습도 보여주는 평범한 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쟤는 왜 저래?'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저 자신도 밖에서는 화려한 인물을 연기하지만 집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되는데 그거과 별다를 게 없다고 봤어요. 그린은 자신이 당할 수도 있다는 마음이 있기에 투쟁적이 된 거고 자신이 질타받을 일이 아니라고 여기기에 자신의 전세금을 털어서라도 옳은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봤어요. 의지하고 믿는 사람이 있기에 나는 잘 달려나간다고 생각하고 집중하는 사람이죠. 아마 엄마가 없다면 레인과 싸울 수도 있었을 거에요".
"제가 연기한 것인데도 '엄마가 가르쳤잖아'라는 대사를 보면 뭔가 울컥해요. 저 말을 듣는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어려울까 싶기도 하고 '너무 많은 걸 가르쳐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좋은 인간'이란 누구의 관점에서 판단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죠. 또 그 말을 던지는 저도 그렇게 살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고.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데 그런 점에서 정말 <딸에 대하여>는 대단한 영화죠".
<최악의 악>, <돌풍>, <원더풀 월드>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고 최근 단막극 <고물상 미란이>에서 호연을 보여주며 주목받고 있는 그지만 여전히 마음은 독립영화에 향해 있었다. 이는 곧 <딸에 대하여>가 많은 분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주연배우의 마음이기도 하다.
"독립영화와 상업 장르의 구분은 연극과 드라마 구분과 비슷한 점이 있어요. 드라마를 할 때 연극으로 충전하고 싶은 마음과 같은데 일종의 '채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짧은 시간에 결과를 만들어내야하기에 감독님과 소통하고 엄청난 집중력을 가지고 회의하며 이야기하는 과정을 같이 하잖아요. 드라마는 세팅이 다 된 상태에서 준비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독립영화는 만드는 과정을 같이 쌓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채우면서 같이 만드는 거죠. 제겐 작지만 엄청 큰 선물입니다. 소중하고 귀중하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오민애 배우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존재 될 것이란 희망"
그는 이제 영화 관객들에게 낯익은, 친숙한 얼굴이 됐다. 지난해 <윤시내가 사라졌다>로 주목받은 뒤 <돌풍>, <파일럿>, 그리고 한 주 전 개봉한 <한국이 싫어서> 등 다양한 작품에서 그는 각각의 새로운 캐릭터로 얼굴을 비추고 있다. <파일럿>의 코믹 연기로 주목받은 그는 <딸에 대하여>에서 드디어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며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저는 영화 속 엄마와 180도 다른 사람이에요. 에너지가 강하고 표현도 너무 솔직하거든요. 그린하고 싸울 때도 따끔하게 한 마디 하고 싶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엄마는 참는 걸 미덕으로 살아온 인물이잖아요. 온화하고 여성적이기보다는 싸우는 걸 잘못된 것이라 여기며 살아온거죠".
앞에서 이미랑 감독은 오민애 배우의 '생각지도 못한 리액션'을 칭찬했는데 이에 대한 그의 답은 이랬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무명 시절 많이 외롭기도 했고 실수도 하고 시행착오도 많았는데 그걸 버티고 살아오면서 제 안에 축적된 것을 표출하는 것이거든요. 저는 연기를 할 때 '연기'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느끼는 대로 표현하면 되거든요. 현장에서 상대 배우가 에너지를 잘 받고 잘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30년의 무명 생활을 통해 얻은 다양한 경험과 감정들이 그의 연기의 자양분이 된 것이다.
극단에 처음 들어오던 날, 선배들이 한 말이 있었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하는거야, 인간이". 사실 이 말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비꼬면서 한 말이었는데 그는 이 말이 훅 들어왔다고 말한다. "내가 누군지를 잘 알아야 연기를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철학적인 고민을 많이 했고 그게 저를 만들었어요. 배우는 결국 사람 이야기를 하는 작업이고 인간의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잖아요. '나는 아픔덩어리다', 사람들을 바라보면 '아픔이 있겠구나'을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젊은 친구들이 아파하고 많이 어려워하는데 힘내라는 말 한마디라도 하고 어깨 두드려주면 너무 좋아해요. 그게 너무 행복하죠. 이 맛이구나. 누군가에게 위안과 희망, 용기를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요".
'실제 내 모습을 배우라는 마스크로 가리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는 오민애 배우. 이름보다는 '어? 그 역할 한 배우였어?라는 반응이 더 재미있다는 그는 이제 막 전성기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최근 여성감독도 늘어나고 영진위 점수 때문에 남성 감독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독립영화계에서도 젊은 세대에서 엄마, 이모, 아줌마 등 중년들이 이끄는 것이 더 풍부하고 매력있다고 보고 있기에 기회가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전 운좋게 그 흐름을 타고났고 그 덕에 다양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었죠. 관객들이 점점 전형적인 남성 캐릭터들이 이끄는 영화에 실망하고 있는 것 같아요. 더 많은 중년 배우가 나와 더 많은 이야기가 채워졌으면, 그리고 상업적으로 확장됐으면 합니다.
"제 전성기는 이제 시작입니다. 스스로 너를 속이지 마. 넌 앞으로 더 할 수 있어, 이만큼 온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너를 믿는다면 만들어낼 수 있어, 많은 이들의 꿈이 되어줄 수 있어' 그것을 항상 마음에 심고 있습니다다. 관객들이 원한다면 다 해드릴 수 있어요. 한 사람이라도 더 보고 위안받을 수 있도록 어디든 다니며 GV(관객과의 대화)를 하려 합니다 너무 불안해하지말고 용기내고 씩씩하게 살아보자고 젊은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