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방송=임동현 기자) 25일 개봉한 영화 <해야 할 일>은 2016년 한 조선소를 배경으로 인사팀으로 발령받자마자 구조조정 지시를 받게 되는 4년차 대리 '강준희'(장성범 분)의 내적 갈등과 조선소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린 작품이다. 특히 이 영화는 노동자 중심으로 진행된 기존의 노동 관련 영화와는 달리 구조조정을 진행해야하는 회사와 인사팀의 상황을 전하면서 해고 대상자를 정하는 것이 '해야 할 일'이 되어버린 이들의 속사정을 그려낸다.
<해야 할 일>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 부산독립영화제 등에서 최우수작품상, 최우수연기상 등 주요 부문을 수상하며 올초부터 '독립영화의 기대작'으로 꼽혀 왔다. 장성범 배우를 위시한 배우들의 진심어린 연기가 이 영화의 백미이지만 무엇보다 영화를 만들어내고 이끌어 낸 박홍준 감독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박홍준 감독은 4년간 조선소 인사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영화에서처럼 그가 조선소에서 근무하던 2016년은 전 세계적으로 조선업이 불황을 겪던 시기였고 이로 인해 많은 회사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폐업을 했다. 그와 더불어 전 국민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하야'를 외치면서 이 사회를 바꾸겠다는 열망을 가졌던, 그 열망이 절정에 다다랐던 해였다.
"2015년에 입사를 하고 이제 일에 익숙해지려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회의감이 들고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사회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터지는 상황에서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던 차에 단편영화 작업을 하던 시기라서 일련의 경험들을 기자고 영화를 만들기로 했죠. <해야 할 일>이라는 영화의 제목은 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 방향을 잊지 않기 위한 가이드이기도 했습니다. '회사에서 내가 해야할 일'과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이 크게 부딪히는 이야기가 바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해야 할 일>의 주인공 준희는 처음에는 차분하게 자신의 일을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내적 갈등이 생기면서 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자신의 선배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선배와 친구 중 누군가를 반드시 잘라야한다는 갈등을 오롯이 감당해야하는 준희, 그리고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인사팀장(김도영 분), 그리고 반발도 해보지만 결국 회사의 뜻에 따라 말없이 자신의 책상을 정리하고 회사를 떠나는 이들의 모습이 관객들에게 묘한 슬픔을 안긴다.
"준희는 극 전체에 등장하지만 대사는 많지 않아요. 의견을 피력하기는 하지만 주로 듣고 있는 인물이죠. 인물의 감정 상태를 이야기하면서 '이런 인물이 이 상황에서 느낄 감정은 이럴 것 같다'는 피드백을 주면서 준희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혼자 생각하는 인물이고 관찰하는 느낌으로 가다가 감정들이 쌓이고 요동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속으로 참는 인물이라도 '이건 아니야'라며 감정을 드러낼 수 밖에 없게 되는 상황도 그려지죠. 장성범 배우는 캐스팅할 때부터 심지가 굳다는 느낌을 받았고 준희와 제일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사팀장은 어떻게 보면 회사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인위적으로 명단을 만드는 것이 옳지 않다는 걸 알고 있고 그에 대해 준희가 반발하는 것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야 회사에 힘이 생긴다'며 설득하잖아요. 그게 인사팀장의 진심이라고 봐요. 조직에 충성을 다하고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는 새로운 젊은 사람들이 필요하고 그래서 본부장의 명에 따를 수 밖에 없는, 그러면서 부딪히는 인물이죠".
이 영화의 특색은 특별한 '빌런'이 없다는 것이다. 기존 노동 영화에서 자주 보게 되는 비인간적인 회사의 태도, 고압적인 고위층, 노동자들의 처절한 싸움 등이 이 영화에는 없다.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이들도 따지고 보면 우리와 너무나 똑같은, 악인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인물들이고 이들의 심정 역시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기존의 작품들을 보면 해고자들이 회사와 싸우는 이야기고 극과 극으로 부딪히는데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작정하고 만들면 이야기가 세지죠. 하지만 상황이 그 사람을 일명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을 보게 되고 그것이 설득력있게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지면 결국 정말 악당은 무능한 경영진, 혹은 국가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그 방향성을 맞추기 위해 인사팀에 포커스를 맞추었고 그 부분을 관객 여러분들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영화제를 돌면서 박홍준 감독은 다양한 관객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을 때 첫 질문을 한 관객은 바로 거제 조선소에서 일했던 노동자였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올 것 같았다'는 그 관객의 말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던 기억을 그는 이야기했다.
"노동영화이기는 하지만 인사팀 직원이 아니어도, 조선소 노동자가 아니어도 직장 생활하시는 분들은 충분히 공감할 이야기라고 봐요. '노동'이라고 하면 아직도 많은 분들이 어떤 프레임에 갇힌 단어처럼 생각하고, 공연히 정치적 성향을 가리거나 논란의 소지로 여기기도 하는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게 노동이잖아요. 관객들이 편한 시선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들었고 무엇보다 재미없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영화는 대중예술이잖아요. 재미있어야죠. 대중들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영화제에 참여하면서 관객분들과 생각을 주고 받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고 그래서 영화에 빠진 것 같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서서히 바뀌게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큰 혁명도 누적된 것들이 터져서 나오는 것이잖아요. 조금씩 변화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이야기거리를 만들고 싶고 그 장을 만들어줄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보시고 많은 이야기 나누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한 질문이 있었다. 영화감독 박홍준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영화는 스탭들과 함께 하는 공동 작업이고 솔직히 돈을 끌어와야하는 작업이잖아요. 일단은 같이 하시는 분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 감독으로서 해야 할 일이고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감독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역할은... 좀 더 고민해야할 것 같네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