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아메리카나의 황혼

미국 우선주의와 패권주의 사이의 딜레마

2020-03-09     김택진 기자

(내외방송=김택진 기자)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수백년에 걸친 로마제국이 쇠망의 길을 걷게 된 것이 과거의 웅대함에서 비롯한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귀결이라고 말했다. 제정 초기에 정착됐던 평화에 대한 의지도 희박해지고, 도덕적인 타락과 사리 사욕의 추구가 만연해진다. 물론, 여기에는 제국 군대의 횡포와 야만족의 침입이라는 내외적 원인이 덧붙여지긴 하지만, 제국의 쇠망은 본질적으로 내적인 윤리의 쇠퇴를 동반한다.

21세기 미국은 고대 로마에 버금가는 초강력국가로 발돋움했다. 미국은 정치, 국방, 경제, 문화, 교육 등 전 방위에서 여타 국가들을 압도한다. 일례로, 미국의 GDP는 전 세계 GDP의 25%에 달하며, 국방예산은 2위~15위 국가들의 모든 국방예산을 합한 예산과 비슷한 규모다. 지구상 모든 대륙과 해양에 미국의 영향력과 통제력이 미치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트럼프 집권 이후 생긴 일련의 정치현상에서 미국의 쇠퇴를 진단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와 배금주의, 동맹에 대한 배신, 고립주의로의 회귀 등은 제국의 쇠퇴를 예시하는 대표사례로 제시된다. 특히 2019년 10월 시리아와 터키 접경지역에서의 철수(“우리는 오일 때문에 여기에 왔다”)는 단순한 전략적 판단 착오가 아니라 미국에 따른 세계질서가 쇠퇴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많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즉 1945년 이후 70여년을 지배해온 미국에 의한 세계평화, 그리고 1989년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지속돼온 미국 독주체제의 세계질서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 것일까?

 

 

그라운드 제로chinese dream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이벤트처럼 일어났다. 공산권인 동부유럽이 연쇄적으로 몰락하는 방식으로 현실 사회주의가 해체되고 냉전이 종식되자 미국이 최종 승자가 된 것처럼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5년부터 미국은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정치문제에 깊숙이 개입해왔고, 특히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로는 전 세계를 지배하는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가 됐다. 군사, 경제, 금융, 기술, IT, 문화, 언어가 모두 미국을 향하고 있었다.

이 같은 현상에 주목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같은 정치학자는 헤겔의 역사이론을 빌어 세계사적 관점에서 ‘역사는 끝났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후쿠야마는 현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궁극적이고도 역사적으로 최종적인 정치체제로 보았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냉전기간 자유민주주의체제는 파시즘과 공산주의체제로부터 많은 투쟁을 거치면서 승리를 거머쥔 만큼 더는 자유민주주의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이념과 철학체계가 없다고 봤으므로 역사가 종말에 도달했다고 인식했다. 최종 승리자로 그가 머릿속에 떠올린 정치체제는 미국이었다. 이후 걸프전쟁과 같은 오일전쟁이 벌어졌지만, 후쿠야마는 그러한 사건들을 역사 종말 이후에 발생한 부차적인 사건으로 치부했다. 이로써 진정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체제, 즉 미국에 따른 평화적인 세계질서가 열리는 듯했다.

후쿠야마는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사실상 영원한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했지만,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한복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테러의 참사는 ‘역사가 끝났다’는 선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해체주의 사상가 자크 데리다는 세계금융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의 붕괴를 ‘신이 파괴한 바벨탑’ 혹은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신의 심판’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충격과 공포

9·11테러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미국의 부시 정권은 북한·이라크·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해 자국민 보호와 세계평화에 이바지한다는 대외명분을 내세워 동맹국인 영국·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2003년 3월 20일 오전 5시 30분 바그다드 남동부 등에 미사일 폭격을 가함으로써 전쟁을 개시했다. 작전명은 ‘이라크의 자유(Freedom of Iraq)’였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 중에서도 바그다드 등 주요 도시에 대한 대규모 공습작전을 ‘충격과 공포(Shock & Awe)’로 명명했다. ‘충격과 공포’는 압도적인 화력을 집중해 이라크군을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어 이라크군의 전쟁 의지를 순식간에 무력화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라크 전쟁을 통해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 이라크 전쟁에서는 1991년 걸프전 때와 비교할 수 없는 가공할 위력의 첨단 무기들이 동원됐고, 토마호크(Tomahawk) 미사일 등 정밀성과 성능이 크게 개선된 순항미사일과 정밀유도폭탄, 특정 시설과 장비만 무력화시키는 특수폭탄 등이 주력무기로 활용됐다. 또,‘전자폭탄(HPMs)’, ‘공중폭발 초대형 폭탄(모압 MOAB)’, ‘합동직 격탄(JDAM)‘ 등 신형 무기들을 선보였다. 스마트 폭탄 끝에 달린 카메라가 죽음의 궤도를 보여주는 이번 전쟁은 마치 비디오 게임처럼 생중계됐다. 

 

반미주의와 전쟁무용론

미국 사회 내부에서는 전쟁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됐음에도 결국 얻은 게 없다는 전쟁무용론이 고개를 들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대량살상무기 때문이 아니라 이라크의 원유확보에 있다는 비난이 일어났고, 민간지역에 대한 오폭 등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늘어나면서 비난의 강도는 더욱 거세졌다. 한 달여에 걸친 공격으로 후세인 정권이 붕괴하고, 미국과 영국의 점령군이 이라크에 들어섰지만, 테러는 계속됐다.

한편, 전쟁 후 대량살상무기(WMD)가 발견되지 않아 전쟁의 정당성이 흔들리는 가운데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가 애초에 조작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 이라크 내 종파갈등과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미국의 이라크 재건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태에 빠진 채 테러에 의한 군인과 민간인의 사상자만 늘어갔다.

지난 수십년간 국제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미국인들의 불만은 커졌다. 미국이 개입한 곳마다 오히려 반전여론과 반미주의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선의로 세계를 돕고 있지만, 돌아오는 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졌고, 이제 더 국익 없는 행동에 나서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보수 회귀와 극우 돌풍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면서 딜레마는 커지고 있었다. 그것은 한편으로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로서의 ‘강한 미국’이라는 지위를 유지하고 싶은 욕망과 다른 한편으로 국제무대에서 도덕적 리더의 역할보다는 국익을 우선시하고, 분쟁지역에서 발을 빼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2000년대 초 IT 버블의 붕괴, 9·11테러, 이라크·아프카니스탄 전쟁, 2007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보수화 정책으로 회귀하거나 극우세력이 돌풍을 일으켰다. 오바마 정부 또한 대외정책에서는 보수화의 길을 따랐고, 이라크·아프카니스탄 등 중동에서도 전쟁을 끝내거나 군대를 철수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영국은 탈유럽과 브렉시트를 선언하고 초읽기에 들어갔다.

세계금융위기에 따른 경제적 위축으로 전 세계적으로 보수화를 넘어 극우의 물결이 세계를 휩쓸었다. 유럽에서는 반유로 화(anti-Euro)와 반(反)이민정서를 등에 업고 극우정당들이 잇따라 선거에서 득세하고 있다. 인종 증오를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프랑스의 국민연합(RN)을 비롯해 이탈리아의 동맹당, 독일의 독일을위한대안(AfD), 그리스의 황금새벽당 등이 선거에서 크게 약진해 행정부와 의회를 장악해가고 있으며, 북유럽과 동유럽에서도 반이민 포퓰리즘 정서를 앞세운 극우파와 그 동맹들이 맹렬하게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다.

스트롱맨의 부상

극우파가 득세하면서 나타난 또 하나의 현상 중 하나는 스트롱맨의 부상이다. 미국의 트럼프,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시진핑, 일본의 아베,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터키의 에르도안,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시리아의 아사드, 인도의 모디 총리 등 극우세력을 지지기반으로 하거나 인종차별적 포퓰리즘과 쇼비니즘을 앞세운 정치 지도자들이 유행처럼 등장한 것이다.

스트롱맨의 등장이라는 세계사적인 흐름에 따라 국제질서는 약육강식의 생태계로 재편돼가고 있고, 자국 이익주의가 극대화됨에 따라 국제사회의 반목과 대립도 더욱 격화되고 있다. 그 최전선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2018년 6월 18일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무한독주로 팍스 아메리카나가 몰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서 무역문제로 회원국들과 갈등을 유발하고 북한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것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상들을 모욕하고, 불량국가를 찬양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행위는 미국의 예외주의에 종언을 고하고, 그동안 미국을 차별화해온 이상적인 가치들에 등을 돌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주의와 미국 우선주의

트럼프 정권의 등장은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파격만큼이나 미국 정치사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내각인사들과 소통하기보다는 즉흥적인 트윗 정치를 즐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양당체제하에서 오랫동안 구축해온 관행들을 한순간에 무력화시켰다. 외교 무대에서 그는 조정자 역할은 커녕 천박한 장사꾼 마인드를 숨기지 않았다. 너무도 솔직한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에 파견된 미군에 대해서도 “우리는 오일 때문에 여기에 왔다”고 스스럼없이 얘기한다. 그런 연유로 트럼프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하드파워, 즉 힘에 따른 국제질서를 추구해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전 세계 분쟁지역의 정치에 개입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개입에 앞서 국익을 손에 놓고 저울질한다. 대의명분에 앞서 손익계산부터 한다. 외교정책에 있어 미국의 국익이 최우선시된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계산기를 먼저 두들기며 별 이익이 없으면 슬그머니 발을 뺀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트럼프 정권이 새로 창조한 독특한 미국의 풍경일까? 그렇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격적이고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이것을 오직 트럼프 정권만의 특징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9·11 이후 나타난 미국의 한 경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며, 사실 여기에도 유서 깊은 전통이 있다. 확실한 것은 21세기들어 미국의 헤게모니가 서서히 몰락하고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균열되고 있는 징후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탈(脫)동맹

2019년 10월 9일 터키의 시리아 접경지역 폭격 및 진군은 미국에 따른 세계질서가 약화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수년간 이어진 시리아 내 IS와의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쿠르드족은 시리아 탈환의 일등공신이었고, 내심 미국으로부터 독립 승인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터키의 압박을 못 이긴 미군이 시리아 북부 접경지역에서 갑작스런 철수결정을 내려버리자 시리아 내 쿠르드족은 사면초가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미군이 철수를 시작한 지 3일만에 쿠르드족 거주지에 대한 터키군의 폭격이 시작됐다.

쓸모를 다한 동맹 쿠르드족을 헌신짝처럼 내다버린 미국의 토사구팽 사건은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미국 의 결정은 동맹에 대한 명백한 배신으로 인식됐으며,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사건을 통해 미국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국제 정의를 부르짖던 미국은 이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배신을 일삼을 수 있는 일개 국가로 전락했다. 한국, 일본, 독일 등 전통적인 동맹국 들을 향한 미국 정부의 터무니없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은 동맹의 연결고리를 약화시킬 것으로 보이며, 결국 동맹국들은 미군 감축과 철수에 대비해 자체 방위력을 제고하려는 개발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며, 그로 인한 국제분쟁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딜레마: 고립이냐 개입이냐

패권국가 미국의 외교정책은 고립주의(isolationism)와 개입주의(interventionism)가 하나의 딜레마를 이루고 있다. 한편으로는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전 세계 분쟁지역에 적극적인 개입을 하려는 경향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나라와도 동맹을 맺지 않고 국제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오래된 외교방침이 있다.

고립주의는 미합중국 건국 초기 유럽국가의 국제분쟁에 정치적으로 휘말리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의 성격이 강했다. 고립주의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의 ‘고별연설’에서부터 잘 드러나 있고, 1823년에는 먼로(James Monroe) 대통령의 ‘먼로 교서’로 구체화해 미국 외교의 기본원칙이 됐다. 유럽국가에 대한 고립주의는 미국 외교의 전통으로 확립돼 20세기 이후 강한 국가가 된 후에도 지속됐다. 그러나 미국은 고립주의적 외교를 추진하던 시대에도 인접국가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대해서는 적극적 외교를 전개했고, 아시아국가의 정치문제에도 깊이 관여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국가의 반열에 오르면서는 이러한 딜레마가 더욱 극대화됐다. 사실 현대사를 들여다볼 때 고립이나 개입이냐의 결정은 미국 사회가 당면한 필요와 국익에 따라서 이뤄졌다. 고립주의에는 개입을 회피한다는 의미의 ‘소극주의’와 동맹이나 기타 국제적 구속을 피해 행동의 자유를 보호하는 ‘단독주의’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한편으로 고립주의의 전통에 기초해 국제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회피하는 소극적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유럽국가의 세력을 배제하고 미국의 세력 확대를 도모한다는 적극적 측면의 세력팽창 논리도 있다. UN 안보리 회의가 단적으로 보여주듯, 오늘날 미국의 고립주의는 주로 ‘단독주의’를 의미하는 것 같다.

 

 

차이니즈 인베이젼

트럼프 정부가 표방하는 고립주의 또한 ‘소극주의’라기 보다는 ‘단독주의’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것은 독불장군식 세계경찰로서의 역할과 배금주의적 고립주의 외교를 적당히 섞어놓은 형태다. 그런데 2010년대 접어들면서 패권국가 미국에 하나의 큰 변수가 생겼다. 그것은 중국몽(中國夢)으로 대변되는 중국의 급격한 부상이다. 

2019년 10월 기준, 국가별 명목 GDP(국내총생산) 순위에서 미국은 21.4조 달러로 세계 1위, 중국은 14.1조 달러로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GDP가 거의 미국의 70%에 육박하는 모습이다. 미국은 신흥 강대국의 부상이 있을 때마다 자국의 GDP 대비 40%선에서 강력한 견제와 통제가 들어가곤 했다. 과거 미국은 독일과 일본의 성장을 그렇게 견제해냈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세계금융위기의 틈바구니에서 손 쓸 틈도 없이 성장해버린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중국의 급성장으로 인해 패권국가 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미국의 초조함이 잘 반영된 이슈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연 2%, 중국을 연 6%로 가정하면 양국의 GDP는 2030년쯤 역전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국이 경제적으로 미국을 추월한다고 해서 곧바로 패권국이 되는 건 아니다. 미국은 1870년을 전후해 GDP로는 영국을 추월했지만, 실제로 패권 의 위치에 올라서는 데는 그 이후로도 40년이 더 걸렸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보복 등의 전방위 압박을 가하지만, 실제 효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미국과 중국의 산업이 복잡하게 엮여있기 때문에 관세도 결국 양날의 검이 되고 만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우려하고 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벌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기술한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이름을 딴 것으로, 신흥 강대국이 세력을 키우면 기존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해 압박함으로써 결국 양국간 충돌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현재 한반도를 비롯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일대는 미중의 지정학적 이익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지역이다. 즉,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의 주요 무대로 단기적인 군사 충돌 가능성도 있다.

 

도전받는 팍스 아메리카나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위기는 자초한 위기다. 탈동맹으로 인한 고립주의와 중국의 부상으로 패권을 위협받고 있는 미국은 9·11 이후 야심 차게 실행에 나선 테러와의 전쟁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 테러와의 전쟁 선포 이후 오늘날 알카에다와 IS(이슬람 국가), 탈레반 등 테러 조직원들의 수는 더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군사력과 경제력은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막강하다. 실업률도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2000년 대 이후 셰일가스 확보에서 얻은 에너지 강국으로서의 자신감도 일정 부분 작용하는 듯하다. 다만, 셰일 오일의 경제성이란 것이 급변하는 외부환경에 의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난 70여년간 미국을 떠받들고 있었던 것이 단지 하드파워만은 아니었다. 미국의 막강한 힘은 압도적인 군사력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 경제와 문화 각 분야에 걸친 총체적인 동의의 힘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소프트파워의 확산이 세계 각처의 반미주의 현상에도 미국의 영향력이 보존돼 온 가장 큰 이유였다.

로마든, 영국이든 과거 세계를 지배했던 체제들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오랫동안 선량한 제국이었고, 강압적인 힘이 아닌 소프트파워와 존경을 통해 지지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패권국가에게는 군사력과 경제력, 제도와 문화를 뛰어넘어 특별한 윤리가 요구된다. 결국, 헤게모니도 투쟁의 영역이 아니라 인정의 영역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할 것 같았던 로마의 통치(팍스 로마나, Pax Romana)도 견고하기 이를 데 없던 19세기 영국의 통치(팍스 브리태니카, Pax Britannica)도 때가 되니 막을 내렸다. 팍스 아메리카나도 언젠가는 막을 내릴 것이다. 다만, 그것이 인류사에서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