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반기 든 美 국방에 격노…에스퍼, ‘군 투입할 만큼 심각한 상황 아냐’

기독교인 지지층 결집 노리고 깜짝 교회 방문 vs ‘성경을 흔들지 말고 제발 좀 읽으라’ 비난

2020-06-04     한병호 기자
트럼프

(내외방송=한병호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폭동진압법’ 제동을 건 에스퍼 미 국방장관의 언급에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동원’이라는 자신의 의지에 맞섰기 때문이다. 미 백악관은 “필요하다면 폭동진압법을 사용할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배경이다. 일각에선 에스퍼 장관의 ‘경질’ 가능성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군 동원은 마지막 수단이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뜻을 밝힌 에스퍼 국방장관은 군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드는 발언을 했다. 이날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것으로 전해졌는데 항명이나 다름없는 국방장관의 행보에 미 언론에서는 경질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브리핑을 자청한 에스퍼 장관은 이번 사태에 대해 "끔찍한 범죄"라면서 “인종주의는 미국에 실재하고, 우리는 이를 인정하고 대응하고 뿌리 뽑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해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결이 다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어 “병력을 동원하는 선택지는 마지막 수단으로 가장 시급하고 심각한 상황에서만 사용돼야 한다”며, “나는 (군 동원을 위한) 폭동진압법 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날 브리핑은 CNN방송 등을 통해 생중계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틀 전 주지사들이 주방위군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지 않으면 군을 동원해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경고한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에스퍼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충성파’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 발언이다.

트럼프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교회 방문 이벤트’에서 거리를 두는 발언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평화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기독교인 지지층의 결집을 노리고 세인트 존스 교회를 찾아 성경을 들어 올리는 이벤트를 벌인 바 있다. 이때 에스퍼 장관 등 핵심 참모들과 카메라 앞에 섰다가 ‘성경을 흔들지 말고 제발 좀 읽으라’는 비난을 샀다.

최근 사석에서 에스퍼 장관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에스퍼 장관의 이날 발언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CNN방송이 보도했다. 백악관 핵심 참모들도 에스퍼 장관이 장악력이 약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확실히 편 들지 않고 있다는 불만을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CNN은 전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필요하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폭동진압법을 사용할 것”이라며, 에스퍼 장관의 발언에 다시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에스퍼 장관 신뢰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즉답하지 않은 채 “에스퍼 장관은 여전히 장관”이라며, “대통령이 신뢰를 잃으면 여러분이 제일 먼저 알게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경질 가능성에 문을 열어둔 언급으로 읽혔다.

미 언론에서는 경질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고 해도 오늘 발언으로 낙마 시점이 빨라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 전역이 위기 상황인데다 대선을 앞두고 경질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에스퍼 장관의 이날 발언으로 미국의 시위 국면이 ‘대통령 대 국방장관’의 충돌로 비화하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종차별과 공권력 남용에 반대하는 시위가 9일째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심야 약탈과 폭력 사건도 이어져 일부 지역에는 통금령이 내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