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잊으랴 어찌우리 그날을'...6·25의 참상 아직 가시지 않은 72년 전 기억

국가보훈처, 제72주년 6·25전쟁일 행사를 25일 오전 10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거행

2022-06-25     김승섭 기자
25일

(내외방송=김승섭 기자)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지긋지긋하고 수많은 사상자를 남긴 '한반도 전쟁'이 터졌다. 72년 전 오늘의 일이다.

남과 북은 서로 동포라며, 이산가족 상봉 등을 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 등 군사정부가 집권했을 당시만하더라도 북한의 간첩 내려보내기, 김신조 사건(박정희 목따러 왔수다) 같이 하루가 편할날이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의 문을 열었다. '대북햇볕정책'. 비와 바람, 햇볕이 싸웠다. 서로 내기를 하며 누가 지나가는 나그네의 코트를 벗길 수 있냐고 했더니, 비를 관장하는 신이 폭우를 퍼부었다.

실패, 다음 바람을 관장하는 신이 거센 바람으로 코트를 날려버릴 뻔 했지만 나그네는 코트를 더욱 움켜잡았다.

햇빛을 관장하는 신이 있어서 따뜻한 햇살을 비춰주자 나그네는 코트를 벗고 울창한 숲 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략이다. 이어서 바통을 이어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햇볕이 아닌 아예 품어버렸다. 

동북아허브 구상을 밝히며 '대(對)북 포용정책'을 썼고, 처음으로 걸어서 38선을 넘어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6·25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냉각됐던 한반도 정세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대북유화정책'을 펼치며 녹는 듯했다. 

하지만 북한은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멈추지 않았고, 보수정권인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어디로 튈지 상상이 가지 않는 상황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중이고, 한반도는 냉랭한 가운데 자칫 72년 전의 상황이 재발한다면 3차 대전양상으로 바뀔지 모르는 모습이다.

이미 우리 군은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고 있다고 했고, 이제 핵탄두를 소형화하는 단계만 남았다.

재래식 무기라고는 하지만 북이 보유한 방사포는 사거리가 300km다. 파주 인근에서 발사하면 부산과 해남 땅끝을 제외한 대한민국에 안전지대라는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되기까지 약 3년간 진행된 한국전쟁으로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던 한국군들은 13만 7899명 가량 전사했고,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참전한 유엔군 역시 3만 7902명이나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지만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유족들에게는 하루가 1년 같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제72주년 6·25전쟁일 행사를 25일 오전 10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거행했다. 

'지켜낸 자유, 지켜갈 평화'를 주제로 열리는 행사에는 국내·외 참전용사, 정부 주요 인사, 군 주요직위자, 시민, 학생 등 약 1500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여는 공연, 22개 유엔참전국 국기 입장, 국민의례, 기념공연, 정부포상, 기념사, 기념공연Ⅱ, 6·25의 노래 제창 등 순으로 50분간 진행됐다.

국민의례의 국기에 대한 경례 맹세문은 류재식 6·25참전유공자, 6·25참전유공자의 손녀 박승리 대위, 3대째 백골부대에서 복무한 병역 명문가 후손 김인섭 씨가 낭독했다.

전반부 기념공연에서는 참전용사의 헌신과 전쟁의 아픔, 당시 시대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낸 진중가요로 '지켜낸 자유'를 조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