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텅 빈 공간에서도 물질 상호작용 가능하다..."세계 최초"
유전율 제어해 에너지 효율 높고 발열 없는 메모리 구현 가능 강유전체 박막 개발해 0차원 공허 만들어
(내외방송=정지원 과학전문 기자) 무(無)의 공간에서 물질의 상호작용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 세계 최초로 개발돼 앞으로 새로운 방식의 메모리 소재가 개발될 수 있을 전망이다.
UNIST는 19일 '내외방송'에 보낸 자료에서 "오윤석 물리학과 교수팀이 김태헌 울산대학교 물리학과 교수팀과 공동 연구를 통해 '0차원 공허'와 '물질' 사이의 상호작용이 물질의 유전율 크기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또, 이 상호작용을 제어해 유전율이 각기 다른 다중 상태(시연이 진행되면서 상태의 변화를 표현)로 제어되는 새로운 메모리 기술도 개발됐다.
유전율은 전기장의 영향을 받아 분극(원래의 전류와 반대 방향의 전위차가 생기는 것)이 일어난 정도를 뜻하는 물리량이다.
텅 비어 있는 공간(0차원 공허)에서 물질 사이의 상호작용을 제어해 유전율을 다중 상태로 바꾼 독특한 아이디어로 주목받고 있다.
전기가 안 통하는 물질도 전기장에 두면 물질 내부에 무질서하게 놓여있던 전기쌍극자(양전하와 음전하가 어느 거리만큼 떨어져서 마주보고 있는 것)가 정렬된다.
오윤석 교수는 "유전율은 어떤 물질도 존재하지 않는 진공에서도 정의할 수 있는 물리량"이라며 "별빛이 진공에 가까운 우주 공간을 여행해 지구까지 도달할 수 있는 이유도 유전율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새로운 강유전체(외부의 전기장이 없어도 스스로 분극을 할 수 있는 물질) 박막(얇은 막)을 개발해 0차원 공허를 만들었다.
강유전체는 외부 전기장에 의해 분극 방향이 바뀔 수 있다.
오 교수팀에서 개발한 새로운 웨이퍼(어떤 물질의 단결정 기둥을 얇게 썬 원판) 소재인 '바륨지르코늄 산화물 단결정' 위에 김 교수팀의 '티탄산바륨' 박막을 증착해 만들어졌다.
바륨지르코늄 산화물의 격자상수(똑같은 형태와 구조의 분자가 모여있는 결정에 가로, 세로, 높이가 같은 원자 간격)는 기존 웨이퍼들보다 압도적으로 큰데, 이는 티탄산바륨 박막에 0차원 공허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0차원 공허와 주변 원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박막 소재의 유전율 크기를 바꾼다.
변화하는 유전율을 메모리 정보에 사용하면 장점이 많아진다.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고 발열이 없는 메모리 소자 구현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또, 1과 0만 사용하는 이진법 메모리보다 다양한 조합이 가능해 '다진법 메모리' 구현도 가능해진다.
오 교수는 "이 연구에서 직접 개발한 소재 기술 덕분에 0차원 공허가 주변 원자 분극에 미치는 영향을 통제하고 체계적으로 제어해 새로운 유전율 메모리 소재를 구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활용하면 전통적인 반도체 소재와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의 메모리 소재 개발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 결과는 응집물질 물리학 분야 세계 저널인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에 지난 7일 공개됐다(논문명: Reversibly controlled ternary polar states and ferroelectric bias promoted by boosting squrar-tensile-str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