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를 가다]사람의 인생을 닮은 식물...42조각으로 봄을 나눈다면?
오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인 갤러리에서 열려 식물과 사람의 인생은 흡사해 42조각으로 나눈 유채꽃밭의 봄
(내외방송=정지원 기자)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제주의 4월.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은 음악처럼 다가가 유채꽃이 저절로 춤을 추게 만든다.
유채꽃은 흔들흔들 춤사위에 향긋한 매력을 더해 관객에게 인사를 건넨다.
식물이 춤을 추고 인사를 한다는 것이 마치 '사람' 같다.
지난 8일 '내외방송'은 서울 종로구 통인 갤러리에서 한창 열리고 있는 전시회인 '풀의 춤'을 방문해 식물과 사람의 삶에서 공통점을 찾아봤다.
드넓은 유채꽃밭이 42개로 나뉘어 있다.
허보리 작가는 이날 '내외방송'과 인터뷰에서 "유채꽃밭 전체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조각내서 따로 볼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이 작품이 시작됐다고 알려줬다.
이어 숫자 42를 선택한 이유로 "4월은 내 자신이 태어난 달이기도 하고, 생명이 가장 활발하게 돋아날 때"라며 "자화상 개념으로 제 나이 만큼 조각을 냈다"고 설명해줬다.
이 작품은 오직 이곳에서만 완성체로 만나볼 수 있다.
허 작가는 "식물과 사람의 인생이 흡사하다고 생각해 그림을 그렸다"고 말해줬다.
초봄에 막 돋아난 새싹은 시간이 흘러 무성한 풀로 성장한다.
하지만, 아름다웠던 자태는 또 다시 시간이 흘러 바래지고 앙상해져 긴 잠에 빠진다.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펴면 이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한다.
우리 사람도 태어나고 자라나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 주기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갓 태어나 파릇파릇한 모습과 원하는 분야에서 성공한 가장 매력적인 모습, 그리고 실패했을 때 느껴지는 우울함과 쓸쓸함이 마치 사람의 인생을 닮았다.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때는 '40대'라고 생각한다는 허 작가.
얼굴 대신 커다란 꽃다발로 표현된 이 사람은 허 작가의 남편이다.
허 작가는 "사람들은 가장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는 불안함도 함께 공존한다"고 설명해줬다.
이어 "꽃 선물을 받아 꽃병에 꽂아 놓은 꽃은 일주일 정도 지나면 흐드러지게 만개하지만, 언제 시들어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함께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허 작가는 꽃병에 꽂힌 꽃을 볼 때마다 남편 생각이 난다고 한다.
어느 날 펼쳐 본 손바닥에서는 손금과 나뭇잎맥이 하나가 돼 있었다.
서로 비슷한 삶을 살아 온 사람과 식물은 이들이 뻗을 수 있는 가장 넓은 교감 경로를 통해 하나가 되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활활 타오르던 불꽃도 입김과 바람으로 금방 꺼져버리기 쉽상이다.
잔열과 연기는 기세를 펼쳤던 불꽃의 여운을 남기지만, 그 마저도 금방 사라진다.
그렇게 뜨거웠던 불꽃이었지만 몸집이 수그러들면서 그 흔적은 말끔하게 지워져 허무하다.
허 작가는 "헛된 인생이지만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자는 바니타스 개념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설명해줬다.
이어 "깨지기 쉬운 유리잔이나 금방 사라지는 연기처럼 17세기에 유행했던 바니타스 정물화가 상징하는 허무함을 표현했다"고 알려줬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 또 생일마다 늘어나는 촛불을 축복과 함께 꺼버렸을 때 피어나는 연기가 허 작가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람의 영혼이 육체에서 떠나고, 육체는 불과 함께 종말을 맞이한다.
뒤이어 피어오르는 연기의 형체가 사라졌을 때 그제서야 한 사람이 떠났다는 것을 실감한다.
식물을 통해 전하고 싶은 허 작가의 이야기를 오는 27일까지 이곳에서 느껴보기 바란다.
한편, 허보리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해 미술의 초석을 다졌다.
이후 'Melody of Earth(2021년)'과 'Love my Hero(2021년)' 등 7여회 개인전을 열고, 9여회 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