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지나간 '과거-현재-미래', 그리고 우리의 '상상'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미술관 기획전 'SeMA 앤솔러지 : 열 개의 주문'

2023-08-07     임동현 기자
구기정

(서울=내외방송) 과거-현재-미래는 늘 연결돼 있다. 과거를 통해 우리는 현재를 구상하고 그 현재는 미래를 만드는 하나의 원동력이 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이렇게 연결돼 있고 소통하고 있다. 우리가 인위적으로 이 관계를 깨지 않는 한 이들의 소통은 지속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하나로 묶는 작업을 수시로 진행하게 된다.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미술관에서 지난 3일부터 열리고 있는 <SeMA 앤솔러지 : 열 개의 주문>은 북서울미술관의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전시다. 이 전시는 10년을 돌아보는 전시라기보다는 개관 후 10년이 지난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과거와 미래를 상상하는 '상상'의 전시다. 그리고 그 상상이 앞으로의 미술관에서 현실로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미술 작가 9명과 시인 한 명, 도합 10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 전시는 회화, 드로잉, 조각, 사진, 영상, 사운드, 텍스트, 설치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로 이뤄져 있다. 인공 생태계의 자연과 디지털 기술로 구현된 자연을 얇은 상자 안에 응축시킨 구기정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는 깊은 곳>으로 시작하는 전시는 <베를린, 캔디, 히잡을 쓴 여자>라는 제목으로 전시된 전병구의 회화들로 연결이 된다. 

박이소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흰 벽을 비추는 밝은 조명들을 볼 수 있다. 바로 박이소의 2002년 작 <당신의 밝은 미래>다. 나, 그리고 우리의 '밝지 않은 현실'을 지나치게 밝은 조명을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준 작품으로 이 작품은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20여년이 지난 지금, 이 작품은 무엇으로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을까? 여전히 밝지 않은 현실? 혹은 밝혀야 하는 미래? 아니면 20여년 전 빛을 비추었던 시절의 기억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빛을 비추고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빛을 비춘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비록 막연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야하는 나그네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앞에 펼쳐진 여러가지 사물들과 벽에 걸린 그림들. 바로 박경률의 <만남의 광장>이다. 회화와 조각, 사물들이 흐트러진, 혹은 적재적소에 놓여진(이것은 어디까지나 보는 사람들의 생각이 우선이다)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관람객들은 그 사이를 거닐며 새로운 경험과 생각을 하게 된다. 

박경률

물론 이미 만들어놓은 작품이고 전시가 돼 있기에 우리가 함부로 옮기거나 손을 대기는 어렵다. (지나갈 때 발 조심은 필수다. 깨지면 안 되니까) 우리는 거닐면서 '왜 이걸 여기에 놨지?', '다른 곳으로 옮기면 안 될까?' 심지어는 '이런, 왜 이렇게 어질러져 있어?'(이 생각도 충분히 할 만하다!) 등의 생각을 할 뿐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이런 생각이 바로 예술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상상'이다. 하나의 작품, 하나의 현실의 시작은 바로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하는 '상상'에서 나온다.

끝으로 북서울미술관의 과거와 미래의 접점을 볼 수 있는 두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기슬기의 <현재전시>는 북서울미술관이 지난 10년간 전시한 포스터들을 모아서 설치한 작품이다. 하지만 작가는 포스터에 있는 텍스트들을 모두 제거하고 이미지만 남긴 채 포스터들을 설치했다.

텍스트, 즉 포스터가 전하는 전시에 대한 정보가 떨어져나간 순간 이미지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됐고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선을 보이게 된다. 과거가 현재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는 도구가 된 셈이다.

기슬기

권혜원의 <초록색 자기로 된 건축물>은 '미술관'을 배경으로 한 단편 SF영화다. 가상의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면서 과거를 탐색하는 동안 기록과 기억, 픽션이 섞이고 진실과 허구가 뒤섞인다.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 것 같지만 그 뒤섞임 속에도 분명 통하는 부분이 있다. 뒤섞임만으로 끝난다면 이 작품은 '혼돈'만 주고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분명 그 뒤섞임속에도 과거와 미래의 소통이 분명 존재한다고.

<SeMA 앤솔러지 : 열 개의 주문>은 북서울미술관의 1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이기도 하지만 그 10년간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그리고 10년 전의 상상과 현재의 상상이 앞으로 어떻게 이뤄질 지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게 하는 전시다. 상상을 통해 보여주는 작가의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 그리고 그 제안 속에서 이루어질 관람객들의 상상이 무엇일지가 궁금해지는 전시이기도 하다.

권혜원

다만 '쓸데없는(?) 걱정'이 하나 있다. 북서울미술관은 주택지, 공원과 밀접해 있고 무료 전시로 진행돼 가족들, 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전시가 많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 미술관에 '상상을 요하는', 시쳇말로 '난해한' 작품들이 들어선 것이 자칫 시민들과 미술관의 문턱을 오히려 더 높이는 결과를 만드는 건 아닐 지 걱정이 된다. 괜시리 드는 우려이기는 하다.

전시는 10월 25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