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진의 공상일기] 내가 찾은 옥상들

2024-01-15     전수진
배우

유독 옥상에서만 시원한 기분이 든다. 한국에서의 초록색 페인트가 이곳저곳에 널려 있는 걸 위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나의 첫 옥상은 미술학원 5층, 회색 페인트가 다 떨어져가는 곳이었다. 아마도 반복적으로 다니는 곳일 것이다. 

한 귀퉁이에서 낮선 오빠가 그림을 그린 뒤 담배를 핀다. 그리고 한 20분 뒤쯤 그 오빠를 따라서 다른 언니가 왼켠 구석에서 담배를 피고 조금 '찐따'같은 학생을 씹는다. 

나는 고양이를 보았다. 첫사랑에게 전화를 하면서. 조그마한 해우소 같은 곳. 

원룸에 한참 살던 적이 있었다. 원룸에서 빨래를 널 공간이 없어서 옥상에다가 탈탈 털어말리곤 했다. 바람에 훅하니 사라지기도하고 비가 갑자기 오면 저 빨래를 어떻게 걷어야하나. 비를 흠뻑 맞은 젖은 옷들을 보며 한참을 바라보아야 했다. 

혹자에게는 파티의 공간일지도 모른다. 여름에는 파라솔을 둘러놓고 나무들을 조성해서 바비큐를 구워먹기도 한다. 

어떤 호텔은 넓은 수영장으로 조성하기도 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유쾌한 사교 공간으로서 말이다. 
옥상이 조금 더 다르게 비춰질 다른 대안은 없을까?  만약, 그런 옥상들이 뭔가 역사적인 기능을 하는 곳이 된다면? 

그렇다면, 어떨까? 버려진 다리를 새로 조성한 연트럴파크처럼. 버려진 집의 윗층을 바꾸는 것이다. 

어떤 전시를 본 적이 있다. 건물 사진을 찍은 뒤, 그 건물의 연도 수를 적어 넣었던 작가 요시고는 건물의 표정을 정리된 화면으로 보여준다. 건물의 연도 수의 상징성과 시대성을 담아 조성하기란. 

단, 복잡하지는 않되 깔끔하게. 일정 부분 역사를 간략히 보여주는 플랫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전의 감성이 다 사라지지는 않길 바라며(단편적인 견해입니다.) 

겨울의 추운 옥상을 올라가봐야겠다.

전수진

배우 12년차. 드라마 <학교 2013>, <상속자들> 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평소에 공상하는 것을 즐기며 작은 것 하나도 사소하게 지나치지 않는다. 

일기를 쓰면서 작다란 칼럼을 적기 시작했다. 배우의 시각으로 본 한국의 다양한 주제가 신선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