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잊지 못할 여름방학의 기억' 망치려는 어른들에게 경각심 주고 싶었다"
영화 '그 여름날의 거짓말' 손현록 감독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고등학교 1학년 '다영'(박서윤 분)은 사귄 지 '28일 만에' 다른 여자가 생긴 남친 '병훈'(최민재 분)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다. 이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다영은 한순간 무모한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선택은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17세 학생이 감당하기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 그리고 '보호'라는 명목으로 사생활까지 캐물으며 '낙인'을 찍으려하는 어른의 모습. 17세 소녀의 아름답지만 힘겨운 여름방학의 기억이 영화 <그 여름날의 거짓말>을 통해 공개된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서울독립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춘천영화제 등에 초청되어 비평가들과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 영화가 28일 극장에서 개봉된다. 개봉을 앞둔 시점에서 내외방송은 손현록 감독을 만나 이 영화를 소재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여름날의 거짓말>이 28일 관객들에게 선을 보였다. 어떤 마음인지?
영화제 때는 단편영화제도 종종 갔었고 장편을 만든 후에도 다녀와서 긴장되지 않았는데 '극장 개봉'이라는 새로운 길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관객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볼 줄만 알았지 영화가 어떤 식으로 개봉이 되고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가야하는지 등을 처음 시도하면서 공부가 많이 됐고 영화 시장에 대한 고민도 생기는 것 같다. 설레고 기대도 되고 걱정되기도 하다.
이 영화 이전에도 단편영화 <갈 곳 없는>, <졍서, 졍서> 등이 모두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주목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또 감독님이 생각하는 '청소년'은 어떤 존재인지?
우리나라 어른들은 '공부하는 아이', '공부 안하는 아이' 식으로 아이들을 쉽게 판단하고 분류한다. 영화 속 다영도 겉으로 보면 공부도 잘하고 숙제도 잘하는, 평범하지만 당돌한 학생인데 여름방학 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도 어른들은 별로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분법에서 벗어나 청소년들의 안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일과 마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17세 고등학생 다영과 병훈, 그리고 과외선생 지석(유의태 분) 등 각 캐릭터의 성격 묘사가 재미있었다. 인물을 만들어간 과정이 궁금하다
캐릭터를 만들 때 그 사람이 어떤 것을 하고 싶은가를 고민하는 것 같다. 다영은 모범생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춤을 추고 싶고 아이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고 지석은 결혼을 앞두고 있고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인물의 욕망을 통해서 그 인물의 주변도 이루어지고 그 욕망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려하고 있다.
영화 속 사건의 시작은 여름방학 동안 일어난 일들을 쓰는 다영의 '방학숙제'다. 다른 친구들은 하지 않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던 방학숙제를 하면서 사단이 벌어지는데 다영은 왜 방학숙제를 했을까?
마침 영화제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 번 다영을 연기한 박서윤 배우에게 물어봤는데 서윤이가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기억에 남는 방학이기에 병훈과의 기억을 품고 싶고 사라지지 않게 하고픈 마음에서 적었을 것 같다'고 답했다.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그만큼 다영이 병훈을 잊지 못했고 그 좋은 기억들로 이 방학을 끝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 방학숙제로 인해 담임선생에게 엄청난 추궁을 받는다
사실 다영은 즐거운 기억을 적었던 것 같은데 담임이 걸고 넘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고등학생이 연애도 할 수 있고 놀러갈 수도 있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을 '계곡에 같이 갔냐? 술 마셨냐?' 이런 식으로 시시콜콜 물으니 말이다. 담임은 '보호 차원'이라고 하지만 제 생각엔 아닌 것 같다. 담임의 시선을 문제삼고 싶었고 영화를 보면서 담임과 비슷한 시선으로 보는 관객들도 있을 것 같아 경각심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담임이 상담실에서 추궁을 하는 장면은 배경이 상담실이라기보다는 경찰서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돈가스집에서 저녁을 사주면서 분위기가 달라지는 듯 했지만 역시나 추궁은 계속되더라
담임을 '속을 모르는 사람'으로 표현하려했다. 다른 이들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면서 그 사람의 기분이 이해가 되는 사람들이라면 담임은 일괄되게 다영에게 계속 묻기만 한다. 그만큼 이 사람은 속을 모르는 사람이고 그게 이 사회의 어른들이라고 봤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함정일 수도 있고 도움의 손길일 수도 있는 '미지의 사람'을 보여주려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중에 담임이 집까지 태워준다고 할 때 다영이 거절한 것이 다행이라고 본다. 차에 타면 또 다른 끔찍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도록 담임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초반에 병훈에게 28일 만에 이별을 통보받은 후 다영이 지석의 집으로 찾아와 지석을 유혹하고 키스까지 한다. 이것 역시 큰 사건의 발단이 되는데
다영이 병훈에 대한 복수심으로 저지른 일일수도 있지만 지석에 대한 동경이 있었을 것 같고 지석도 다영이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니 귀여워했던 것 같다. 아마도 어린 나이에 가질 수 있는 로망이 병훈에 대한 복수심과 함께 표출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을 주는 장면을 꼽으라면 병훈이 지석의 아내에게 '다영이 지석과 잤다'는 걸을 알린 뒤 다영, 병훈, 지석, 지석의 아내가 한 자리에 앉는 '사자대면' 씬이다. 이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영화의 후반부로 넘어가는 장면이자 영화에서 가장 중요했던 장면이었다. 캐릭터를 각자 명확한 자신들의 입장이 있었고 이로 인해 나름대로 화가 난 입장이라 긴장감이 형성된 것 같다. 지석이 자신이 녹음한 다영의 목소리를 이들에게 들려주는데 그 때 다영이 어떤 반응을 할 지 정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핸드폰을 뺏는 소동 등을 생각했는데 결국 다영은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한다. 자기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기 혐오가 드러나는 순간, 그러면서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뉘우치는 순간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고보니 다영도 병훈도 어른들에게 반항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담임이 심하게 추궁해도 불만을 표출하지 않고 계속 답하고 강하게 나설 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태세를 전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방금 전 사자대면 장면도 그렇고
일단 '선생'이라는 부분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저도 학창 시절에 선생님들께 많이 맞았고(웃음) 대학에 와서도 선생과 제자 사이의 두꺼운 벽을 느껴왔다. 제자들과 서로 교류하고 영향을 줄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하는데 여전히 우리에게 선생은 '무서운 사람',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고 통제하는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또 제가 보기에는 소위 '비행청소년'이라고 해도 정말 성격이 나빠서 반항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인데 자기 자신도 잘못된 방법으로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고 있고 죄책감도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태세를 전환하기도 한다. 물론 비겁해보이기도 하고 자기 말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모습도 보여지기는 하지만 이 역시 '미성숙'의 한 모습으로 보고 있다.
영화를 보면 관객들이 다영의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니면 다 거짓말인지, 혹은 '어디까지가 참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를 서로 이야기할 것 같다. 영화 제목에서도 약간의 뉘앙스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했는데(웃음)
우리가 본 것들이 진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영이 입장에서는 안다고 해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고 진짜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다영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진실과 거짓 여부를 떠나 다영의 여름방학 이야기를 관객들이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다른 영화에 비해 책상이나 테이블에서 인물들이 마주보는 '대면' 장면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잘 보신 것 같다. 각자의 입장이 있는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뭔가를 먹으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 지 궁금했고 그렇게 기획을 했던 것 같다. 일례로 병훈이 기석의 아내에게 '다영과 기석이 잤다'고 알리는 장면에서는 다영과 병훈, 기석의 아내가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다영, 기석이 다영의 어머니에게 다영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리는 장면에서는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를 한다. 서로 겹쳐 보이게 하려 했다. 아까 말한 돈가스집 장면도, 첫 장면에서 둘이 음료를 먹는 것도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장소 선택이 정말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니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과 슬픈 이별의 감정이 생생히 전달됐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바다 배경이 없었는데 마침 지원사업이 되고 하면서 바다를 배경으로 해볼까 생각했고, 이 영화를 '파도치는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두 청소년의 이야기로 가닥을 잡았다. 영화를 보면 '물'이 많이 나온다. 잔잔한 바다, 파도치는 바다가 나오고 계곡에서 사랑을 나누는 순간이 있고 이들이 묵는 펜션에도 작은 연못이 있다. 바다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듯이 벗어나려고 해도 더 깊이 들어가는 사랑을 바다와 함께 표현하고 싶었다.
두 사람이 이별하는 장면을 찍었던 곳은 원래 파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곳이었다. 더 밑에 내려가서 찍으려했는데 촬영할 때 태풍이 오면서 원래 점찍었던 곳이 잠겼고 파도가 높이 쳤다. 촬영 재개 여부를 결정하면서 안전하게 위에 올라가서 하자고 했는데 그 날씨가 정말 신의 한 수가 됐다. 원래는 병훈이 바다수영을 하는 장면을 넣어 허우적거리는 이미지를 그리려했는데 높이 치는 파도를 배경으로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이미 이 아이들은 파도 속에 들어가있다고 봤다. 그렇게 지금의 장면이 나왔다.
다영에게 병훈, 병훈에게 다영은 어떤 존재일까?
이 영화가 사랑 이야기라고 하지만 사랑은 끝났다는 생각, 이별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라고 본다. 이별을 해 본적이 없는 아이들이 이별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기에 헤맬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다영에게 병훈은 사랑을 처음 느끼게 한 사람, 잊을 수 없는 사람이고 어떻게 잊을 지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병훈이 밉기도 하지만 이야기 잘 들어주고 날 이렇게까지 위해준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병훈은 때론 비겁하고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름 순정적이다. 솔직하게 헤어지자고 말한 것도 바로 다른 사람을 사귀는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 것이다. 병훈은 다영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다. 영화에서는 헤어진 것으로 나오지만 우연이라도 다시 만나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이대로 헤어지기는 너무나 아쉽다.
영화 속 인물에 대한 관객들의 호불호가 엇갈릴 것 같다
저도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호불호를 체감했다. 놀라면서도 재미있었다. 크게 담임선생 같은, 어른의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과 아이들의 시선에 동참해서 마음으로 같이 경험하는 사람들로 나뉘는데 둘 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반응들이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다만 주인공들을 너무 신랄하게 비난하지는 말아주셨으면 좋겠다(웃음).
박서윤과 최민재, 두 주인공의 캐스팅이 정말 좋았다
작은 영화이기에 새로운 얼굴들과 하는 게 좋겠다고 보고 전체적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박서윤 배우를 보고 정말 '다영이가 왔다'고 느꼈다. 리딩을 하는데 영화에서 보이는 그대로 리딩을 했다. 정말 다영이가 온 거다(웃음).
최민재 배우는 연기 경험이 많이 없어서 걱정이 많았다. 이 영화는 연기가 정말 중요한데 주변에서는 '경험있는 배우를 써보라', '잘 생긴 이미지의 배우가 낫지 않나'등의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최민재 배우를 믿게 됐는데 맨 첫 장면의 이별 장면이 첫날 첫 촬영이었다. 이 장면에서 연기를 너무 잘해줘서 끝까지 함께 하기로 했다.
어느 순간부터 배우들이 나보다 캐릭터를 잘 안다는 느낌이 들어서 배우들에게 느끼는 대로, 마음대로 해보라고 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시나리오가 있고 정해진 것이 있다보니 벗어나지를 못하는데 본인이 느끼는 기분에 맞춰 말을 해도 되고, 시나리오상 화가 나는 장면이라도 화가 안 나면 화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그렇게 하다보니 새롭게 나온 장면이 정말 많았다. 캐릭터들이 다 배어 있었다. 저예산인데다 짧은 시간에 몰아서 찍어야했기에 2주간 울산에서 숙박을 하면서 연속으로 찍다보니 더 몰입이 된 것 같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분에 초청됐고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상을 수상했다. 세계의 평론가들에게 인정을 받았는데
사실 영화제에 갈 줄도 몰랐는데 초청 소식을 듣고 놀라고 기뻤다. 제가 태어난 부산에서 초청을 받은 것이 기뻤고 수상은 더더욱 생각하지 않았는데 호명을 받는 순간 얼얼했던 기억이 난다.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감사했다. 평론가 선생님들께서 좋은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인물들을 애정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는 말을 들어 감사했고 관객들은 크리스토퍼 놀란, 알프레드 히치콕 등 거장들과 비교를 해주시도 해서(웃음) 기뻤다.
러닝 타임이 2시간 18분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길다고 생각될 수 있을텐데
제가 보고픈 영화가 진정 어떤 것인가를 고민하며 쓴 시나리오였기에 2시간 안으로 편집하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지금의 시간을 고집했고 영화제에서 인정받는 걸 보면서 이 영화만큼은 끝까지 내가 보고픈 영화로 남겨두고 싶었다. 저는 짧은 여름방학이었지만 여름이 더 길었으면 하는 다영의 느낌을 전하고 싶었고 이들이 경험한 여름방학이 정말 평생 잊지 못할 순간임을 보여주려 했다. 느린 순간들도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만약 지루함을 느꼈다면 그 역시 다영이의 긴 여름방학을 느끼게 된 거다(웃음).
영화를 보실 관객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이 영화에는 사실 숨겨놓은 것들이 많다. 관객들이 숨겨진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시면 좋겠고 아마 몇 번 더 관람하면 숨어있는 내용을 많이 보실 수 있을 것이다(웃음). 뜨거웠던 여름을 기억하고 여름방학을 회상하는 시기, 여름이 끝나는 시점에 관객 여러분들께 이 영화가 다가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