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직하면서도 마음 따뜻했던, 마지막까지 붓 놓지 않았던 나의 남편 이희중"

'이희중 5주기 추모전' 연 권정옥 이희중갤러리 대표

2024-10-20     임동현 기자
권정옥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지난 10일부터 1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이희중 5주기 추모전 <이희중 0426 : 무한을 향한 시선>이 열렸다. 이 전시는 무속신앙, 민담, 불교 등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 회화로 재해석하며 새로운 개념의 풍속화를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표현한 석운 이희중(1956~2019)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으로 '전통의 현대화'를 추구한 이희중 작가의 작품 100여 점이 선을 보였다.

추상과 실재를 넘나들고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과 우주를 표현하며 새로운 공간의 해석을 제기한 이희중 작가는 항상 붓을 놓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인 화가였으며 살아있는 미술 교육을 추구했던 교육자이기도 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희중 작가의 신비하고도 재미있는 작품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전시작들은 이제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이희중갤러리에서 계속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누구보다 정성껏 준비한 이가 있다. 바로 이희중 작가의 아내이자 이희중갤러리 대표를 맡고 있는 권정옥 대표다. 권정옥 대표가 전하는 이희중 작가, 그리고 그의 작품 세계를 통해 글로나마 이희중 작가를 만나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푸른

먼저 이번 전시를 치른 소감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기는 했지만 이번에 제가 처음으로 주최를 하는 전시라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전시장에) 나와야한다는 책임감이 상당히 컸어요. 그래도 많은 관람객들이 오셨고 '좋았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주시는 것을 보면서 제가 5년 동안 너무 작품들을 꼭꼭 숨기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림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하고 아깝지만, 내놓기가 왠지 싫었고 다른 사람에게 그림이 나가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컸기에 그림을 내놓는다는 게 꺼려지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정말 좋아해주시고 좋다고 말씀해주시니 그동안의 슬펐던 마음들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화랑에서건 아니면 제가 직접 하건 작품을 계속 전시하려합니다.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이희중 작가'는 어떤 분이셨는지?

독불장군이에요(웃음). 그 누구와도 타협할 줄 모르는 분이었어요. 자기가 원하는 것, 자기가 목표로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갔죠. 그 누구에게도 아부를 한 적이 없고 살아 생전 작품(활동)만 한 사람이에요. 하루도 작업을 쉬는 날이 없었죠. 추석이나 설날에도 작업실로 제가 데려다줬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자유분방한 분이었고 아이들에게도 참 잘해줬는데 유독 저에게는 아주 엄한 사람이었어요. 마치 넘을 수 없는 담과 같았죠. 

그분을 보면 마치 담장으로 탁 막히는 느낌이었어요. 그림을 위해 대한민국의 모든 사찰을 돌며 사진을 찍고 하는데 저와 같이 가도 저는 운전만 했죠. 게다가 밖에서 자는 것을 싫어해서 한밤중인데도 꼭 집에 가자고 해서 굉장히 피곤했던 기억도 나고 감기 몸살로 몸이 안 좋은데 '지금 꼭 가야한다'며 운전을 해달라고 해서 냉전을 겪은 적도 있었습니다(웃음). 무엇인가를 계속 추구하는 사람이었기에 제가 이를 맞춰줘야하는 사람이어야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 이대로 가면 안 된다. 나에게 빚이 있다. 다 갖고가라"라고 말한 적도 있죠(웃음). 

이희중

참 세속적인 질문이지만 결국 하게 됩니다. 그 힘든데도 어떻게 작가님과 계속 사셨는지(웃음)

맞아요. 힘들었죠. 고비도 참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분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 그림을 위해서 사는 사람인데 내가 이해를 안 해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람이다. 내가 계속 이해하고 다 넘어가자'라는 마음으로 넘겼죠. '내가 요구하는 것은 없다. 당신이 하자고 하면 기다려 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살려고 했다면 불만이 쌓이고 서로가 안 좋아졌을텐데 그림을 위한 것이라는 좋은 생각이 느껴지니 이해가 되는 거죠.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돌아가시기까지 오점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정말 참고 살기를 잘했구나'라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웃음). 

반면에 자녀들에게는 굉장히 자상한 아빠였다고 아까 말씀하셨는데요

엄청 자상했죠. 아이들을 격의없이 대했어요. 정말 자유분방하게 키웠죠.  부모와 자식간에 벽이 없이 생활하는 걸 보고 좀 놀랬어요. 아이들을 혼내는 건 제 역할이었습니다. 남편이 혼낼 일이 있으면 '쟤 좀 혼내줘. 내 말은 안듣는데 네 말은 잘 듣잖아'라고 저한테 넘기고(웃음) 악역을 맡긴 셈이죠. 저희 딸이 독일에 있었을 때 태어나 외국에서 살았었고 생활하기에도 힘든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아이들을 엄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 딸에게 '악마'라는 소리까지 들었을 정도니까요(웃음). 

대표님께서 이희중 작가의 작품을 보시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볼 때마다 이 사람은 어떤 상상을 하고 살까 뭘 항상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는 한 번 물어봤는데 마침 남편이 TV를 보고 계셨어요. "당신 저거 본 거잖아"라고 하니까 자기는 TV 프로그램의 내용을 보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에 나오는 색깔, 디자인을 본다는 거에요. 굉장히 예민하신 분이셨어요. 길을 가다가 표지판의 색깔이나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화를 내셨죠. 자기가 힘들다는 거에요. 

그리고 그림을 그리면 꼭 저에게 물어봐요. 그림이 어떤지. 제가 전문가도 아닌데 이상한 곳이 있는지 물어보시곤 했죠. 특별한 대답을 하지 않는데도 물어보시더라고요. 항상 이 분의 머릿 속에는 그림이 자리잡고 있다고 느끼게 되죠. 

푸른지도_2019_캔버스에유채_2019

지금 만약 이희중 작가님이 여기 계시다면 한 번 여쭙고 싶네요. 작가님이 꿈꾸고 있는 세상, 꿈꾸고 있는 우주는 어떤 곳인지

어떻게 우주라는 그림이 나오나 물어봤더니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서 에너지가 보인데요. 그 에너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저에게 가끔 이야기를 하세요. 그분이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복잡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하셨죠. 캔버스 안에 여러가지가 다 들어가있는데 그게 어쩌면 따로일수도 있지만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말씀을 하세요.

너무 복잡하게 그리니까 산만하니 한 부분만 따서 그려도 충분한데 왜 이렇게 많은 걸 넣느냐하니 자기는 캔버스가 무엇인가로 꽉 채워져야한다는 거에요. 나이가 정말 많이 들어 자기가 정말 붓을 겨우 들 정도로 힘이 없어지면 그 때 일부분만으로 그리겠다고 하셨죠. 그 때는 아직 멀었다 하시면서. 단순화를 시도한다고 해도 결국은 그 무엇인가가 또 들어가게 되요. 채우지 않으면 성에 안찼던 거죠. 

역시나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 작품에도 묻어나는 듯 합니다. 미술계와 마찰은 없었는지 모르겠네요

많이 부딪혔죠. 정말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그림도 잘 그리고 잘 팔리니까 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교수로 재직했을 때도 항상 직격탄을 날리던 분이셨어요.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숨김없이 바로바로 이야기하니 태클을 건 사람들도 있었고. 그래서 좋은 작품들이 많이 알려지지 못했어요. 미술계 사람들하고 어울려야하는데 그럴 시간에 그림을 더 그리겠다고 했던 분이죠.

친구들이 골프 세트를 준 적이 있는데 아예 만지지도 않았어요. 친구들 입장에서는 미술계 인사들과 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것인데 본인은 그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게 낫다고, 하루 종일 그림 그리고 밥 먹고 산책해야하는데 왜 내가 그렇게 해야하냐라고 하신거죠. 

그런데 <첩첩산중> 같은 작품을 보면 상당히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신 것 같아요. 마음고생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림 그릴 때는 정말 즐거워하면서 그렸어요. 왜 그림을 그릴 때는 아픈 것도 모른다고 하셨잖아요. 고통도 그렇게 막는 거에요. 완전히 빠지니까. 그분은 항상 작업할 때 클래식 음악을 크게 틀어놔요. 제가 들어와도 모를 정도에요. 아마 그림을 그릴 때는 아무 소리도 듣고 싶어하지 않은 것 같아요. 

첩첩산중_1995~2007_579x87

본인이 생각하는 이희중 작가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굉장히 듬직하고 믿음직스런 분이었어요. 한결같다는 것이 그 분의 강점이었어요. 자존심도 굉장히 세고. 어떤 상황에도, 그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고 항상 바른 말을 하셨죠. 윗사람들의 잘못을 끝까지 이야기했어요. 

그러면서도 학생들, 약자들에게는 정말 잘해주셨어요. 정이 상당히 많아요. 그분은 학생들을 가르치기보다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작업을) 보여줬어요. 수업도 학교 안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까지 가서 전시회를 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진행했죠. 이게 수업이다. 살아있는 수업이라고 하신 거죠. 하지만 학교와 교수들은 그걸 싫어했죠. 그래서 학교 생활도 힘들게 하셨어요.  

많은 작품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딱 하나 소개하고픈 작품이 있다면?

돌아가시기 직전에 그린 '무제'라는 그림이 있는데 다른 그림들과 달리 배경 색깔이 바뀌었어요. 아픈 중에서도 그렸던 그림인데 여전히 이렇게 복잡하게 그리신 걸 보면 아마 본인이 아직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유작_무제_2019_캔버스에

예술의전당에서 첫 전시를 하셨습니다. '5주기'라는 중요한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이번 전시를 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네요

남편이 돌아가시고 한 3년 동안은 작품을 보지도 못했고 만지지도 못했어요. 볼 때마다 울컥한 느낌이 들어서 보지도 만지지도 못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품이 빛을 봐야하고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지고 알려지고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주는 것이 맞다고 본 거죠. 이 그림을 세상에 보낼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느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전시를 내가 해야한다는 마음으로 4주기 무렵에 전시를 결심하게 됐지요. 

전시 장소부터 먼저 예약을 하고 전시 준비를 시작했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하다보니 안 좋은 일도 있었고 스트레스도 상당히 많이 받았어요. 다행히 제자이신 다발킴 작가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큰 도움을 주셨지만 불안한 마음은 늘 가지고 있었죠. 딱 10일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날짜를 잡았는데 정말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오셨고 좋은 평가도 많이 받으니까 이제사 전시 기간이 짧다는 게 아쉽더라고요. 얼마나 어렵게 준비한건데 싶더군요.

그래도 용인 이희중갤러리에서는 지금도 상설전시를 하고 있으니 11월, 12월에도 계속 전시는 이어집니다. 용인에 오셔서 작품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희중 작가의 작품을 보실 분들에게 하고픈 말씀이 있다면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할까 많이 아는 사람들은 친근감과 더불어 다시는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아쉬움을 느끼실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작품을 보실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희중 작가의 작품은 동양적인 면도 있지만 서양적인 면도 있거든요. 동양과 서양의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작품들을 보시면서 동양과 서양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써주시고 마음의 위안을 얻으시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