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젊음과 연륜이 만나 표현된 사계, 열정으로 다가오다
서울시무용단 '국수호·김재덕의 사계'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젊음과 연륜의 만남'. 지난달 31일부터 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선보인 서울시무용단의 신작 <국수호·김재덕의 사계>를 한 마디로 요약한 말이다. 서사구조의 작품으로 한국창작무용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한국무용의 대가'로 평가받은 국수호 무용가와 움직임 중심의 표현을 추구하면서 해외에서 한국 현대무용의 힘을 알리고 있는 김재덕 안무가가 손을 잡고 만든 이 작품은 전통과 현대, 세대의 차이를 넘어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을 어우르며 '사계'를 표현한다. 이 작품은 엄연히 '더블빌'(두 안무가의 공연을 각각 선보이는 공연)이 아닌 협업 작품이다.
<국수호·김재덕의 사계>는 동양철학의 근본 원리인 '무형에서 유형', '양에서 음'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원리를 바탕으로 '사계의 시간은 자연이자 인간의 몸'이라는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다. 봄과 여름은 김재덕의 안무로, 가을과 겨울은 국수호의 안무로 진행되면서 계절의 순환 속에서 시간의 영원성과 반복되는 순환의 의미를 표현한다.
시작은 정적으로 표현된다. 세상이 멈춘 듯한 모습, 그 속에서 표현되는 미세한 움직임이 묘사된다. 김재덕이 표현하는 봄과 여름은 '극양'을 향해 달려가는 도약과 강렬함으로 점철된다. 여기서 '극양'은 바로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 하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가장 무덥고 뜨거운, 그렇기에 곡식과 자연 만물이 그 무더위를 견디며 익어가는 시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극양으로 가는 길, 뜨거움 속에서 열매를 맺기 위해 도약하고 그 속에서 작지만 거대한 탄생의 소리가 표현된다.
그리고 국수호가 표현하는 가을과 겨울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고 새로운 씨앗을 품는 정경이 펼쳐진다. 가을의 정령과 함께 풍성함을 노래하면서 인물들은 삶의 즐거움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 가을이 지나면 매서운 추위가 기다리고 있고 인간은 그 추위에 맞서야한다. 그 추위를 견뎌야 새로운 해를 맞이할 수 있고 새로 다가올 따뜻한 봄을 맞이할 수 있다. 부채춤을 비롯한 한국무용을 바탕으로 한 무용수들의 움직임, 그리고 마지막은 새로운 해와 새로운 봄을 기대하게 하는 즐거운 춤의 향연이 펼쳐지게 된다.
<국수호·김재덕의 사계>는 전통과 현대의 협업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가야금과 대금, 바이올린 등 국악과 클래식 악기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빠른 템포의 일렉트로닉 음악에 국악기의 라이브 연주를 더해 신명을 더한다. 이로 인해 한국무용은 더욱 다이나믹한 모습으로 다가오게 되며 현대무용은 강하면서도 한층 부드러워진 모습으로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간다.
무엇보다 이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영상 등 곁가지를 쳐내고 오로지 무용수들의 몸짓에만 집중하게 한 무대 구성에 있다. 무대 자체는 큰 화려함은 없지만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의상이 무용이라는 장르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화려함을 극대화한다. 중간에 잠시 지루함을 느낄 소지도 분명 있을 수 있지만 신명을 더한 일렉트로닉 음악과 점점 열정을 되찾아가는 무용수들의 춤을 보면 어느새 그 장면에 빠져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전통과 현대는 사실 멀리 있지도 않다. 그리고 완전 반대도 아니고 합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이 둘이 조화를 이루면 서로의 단점이 장점으로 승화되고 이로 인해 새롭고 참신한 춤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렇기에 이들을 이제 분리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리타분한' 일이자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시간을 넘어, 연령을 넘어 새롭게 다가온 무대. 그러면서 국수호와 김재덕이라는 이름은 더욱 빛나게 됐다. 앞으로의 시도가 더 주목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