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가족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참 비슷하다"
영화 '한 채' 정범, 허장 감독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오는 20일 개봉하는 영화 <한 채>는 안정적인 삶을 꿈꾸며 '가짜 가정'이 된 두 가족이 서로를 통해 '진짜 집을 지어가는 이야기'다. 집을 얻기 위해 지적 장애를 겪고 있는 딸 '고은'(이수정 분)과 아버지 '문호'(임후성 분), 그리고 가짜 남편이 되어야하는 '도경'(이도진 분)이 한 집에서 진짜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처음에는 차가웠지만 차차 따뜻함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략과 압축의 미학, '뒷모습'으로 대표되는 따뜻한 시선을 통해 그려낸다.
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민평론가상상, 25회 가치봄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으면서 영화제 관객들의 호평을 한몸에 받았던 <한 채>가 이제 일반 관객을 찾는 순간, 영화를 만든 정범, 허장 두 감독과 <한 채>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 <한 채>가 20일 개봉한다. 개봉을 앞둔 소감은?
정범 감독(이하 정) : 꿈만 같은 일이 이루어져 기쁘고 설렌다. 언론시사회 때 '꿈인가 생시인가'하며 긴장을 너무 많이 했다.(웃음). 영화제에서 상영한 것과 극장 개봉은 또 다른 문제라 느낌이 다르다. 일반 관객분들을 만난다니, 꿈만 같은 일이 이루어졌다.
허장 감독(이하 허) : 그 동안 영화제에 직접 오시는 씨네필만 만나다가 시사회 이후 다양한 관객을 만나게 되니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관객분들의 다양한 시선이 앞으로 작품 활동하는데 담금질이 되고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 기대된다.
두 분이 공동작업으로 영화를 만드셨는데 어떻게 같이 작업을 하게 되셨는지
정 : 대학원 동기다. 학교 다니면서 발표도 같이한 사이였다. 학과 자체가 장편영화 제작이라 졸업을 하려면 장편영화를 각자 혹은 같이 찍어야하는데 허장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려했고 저는 극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허 감독이 다큐 제작에 어려움이 생겨 마무리를 짓지 못하면서 공동 연출을 하게 됐다.
허 : 기획하려던 영화가 대학원생에게는 다소 무리수라는 느낌이 들어서 마침 같이 지냈던 정범 감독과 공동 연출을 하기로 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서로 모니터해주면서 가졌던 좋은 인상들이 영향을 끼쳤고 사회적 이슈를 다루겠다는 점에서 통했던 것 같다.
영화에서 '도경' 역을 맡은 이도진 배우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통잠>의 감독이고 '문호' 역의 임후성 배우는 연극연출가이자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배우들의 등장이 눈길을 끄는데
정 : 이도진 배우는 저희 동기고 <통잠> 역시 이도진 배우가 졸업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이도진 배우가 <한 채>에 배우로 참여하고 싶다고 했고 제가 <통잠>의 촬영감독을 맡았다. 스탭들도 스케줄을 조정하며 두 영화를 서로 같이 작업했다. 일종의 품앗이를 한 거다(웃음).
임후성 배우님은 연출가지만 연극에서 연기를 하셨던 분이고 제 연출 스승이시기도 하다. 제가 배우님 극단에 있으면서 조연출로 함께 연극을 올리기도 했는데 영화 연출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시나리오를 쓰다가 캐스팅을 하기로 하고 허 감독님과 연극을 보러갔다. 시나리오를 보시고 고민하시더니 '해 보시겠다'고 해서 허 감독님과 만나게 됐고 출연을 하시게 됐다.
영화에서 문호가 지적 장애를 겪는 딸 '고은'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부성애'라고 보기에는 다소 냉정해보이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특히 마지막 선택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시는지
허 : 두 부녀가 살아가야하는 세상에서 이들이 어떻게 사회화되고 생존해야하는지, 일반 사람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사회화가 되어가는 과정을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에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사회화 과정을 보여주는데 <한 채>도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정 : 부성애라는 것을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과연 딸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을 부성애라고 할 수 있을까?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같이 있는 것이 딸에게 정말 좋은 것일까? 어쩌면 자녀가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 부성애가 아닌가 생각된다.
허 : 고은이 문호와 같이 산다면 더 폐쇄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임후성 배우님은 '딸을 놓아준다'고 했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더 나은 세상의 구조를 만들어주는 선택을 했다고 본다.
영화에서 고은과 도경이 사진관에서 가짜 웨딩사진을 찍고 이를 문호가 못마땅하게 지켜보는 장면이 나온다. 어떤 마음으로 장면을 찍었는지 궁금하다
정 : 저희가 항상 고민한 것이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지 였다. 굳이 동사무소에서 혼인신고서 쓰고 하는 것을 직접 보여주기보다는 어차피 결혼을 하면 사진을 찍게 되니 사진 찍는 시퀀스로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만든 장면이다. 그리고 딸이 무표정으로 찍으면 억지로 찍은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그래서 리허설을 통해서 만들어낸 장면이 문호가 "이고은, 아빠 봐"하면서 돼지코를 만드는 장면이다.
허 : 돼지코는 문호, 그리고 임후성 선생님이 고은을 즐겁게 만들려는, 고은에게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사랑의 사인이다. 그 돼지코와 문호의 눈빛에서 딸에 대한 애틋함을 나타냈다.
영화에서 보면 '뒷모습'을 찍은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문호의 등이 중심이 되고 세 사람이 등산을 하면서 아파트를 바라보는 뒷모습이 나오며 문호와 도경이 각각 고은의 등을 밀어주는 장면도 나온다
정 : 어릴 때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 기억이 더 많다. 그 등을 본다는 것 자체가 가족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봤고 등을 밀어주는 것도 가족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봤다. 등을 밀어달라는 것이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누군가에게 몸을 맡긴다는 것이기에 가족만 할 수 있는 것으로 봤다.
세 사람이 산을 오르는 것 역시 세 사람이 가족이 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봤다. 산을 오르는 것이 힘들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의지해야 올라갈 수 있지 않나. 함께 산을 오르는 것이 가족이 되어가는 첫 과정으로 봤고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에서도 마침 그 산에서 정말로 아파트가 보여서 장면이 더 살아났다.
영화를 보면 대사를 상당히 압축했다는 느낌이 든다
허 : 서사를 설명하는 방식과 이를 압축하고 생략하는 방식, 이 두 가지 선택지를 항상 열어두고 작업했는데 항상 최종 선택은 압축과 생략이었다. 저는 이 영화를 피부로 느끼시기를 바랬고 이들의 쓸쓸함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택을 그렇게 해왔다.
정 : 영화를 편집하고 영화제의 관객 반응을 보면서 우리가 깨달은 것이 있다. 영화에서 생략과 압축을 활용할 때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캐릭터의 선택이 가져오는 의외성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을 계속 해주면 캐릭터가 어떤 선택을 할지 예상이 가능해지는데 관객과 줄다리기를 하는 것 같은 입장에서 마지막 선택을 보여주면 의외성을 발견하게 되고 그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민평론가상을 받았는데 그분들의 글을 읽어보면 각자 정이 가는 인물, 인상깊어하는 인물이 다르다. 그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점이다.
'식구(食口)'라는 단어가 어울리게 식사를 하는 장면도 종종 나오고 문호와 도경의 누나가 각각 도경에게 '밥 먹고 가'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식사'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허 : 의식주라는 것이 생존의 가장 기초인데 이들에게는 서로를 통해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포인트다. 주는 <한 채>라는 제목에서 보여지듯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이를 식사를 통해 보여줄 수 있다고 봤다. 또 도경의 누나가 '밥 먹고 가'라는 대사를 한 것은 누나 역을 맡은 지성은 배우가 "동생이라면 먼저 '밥 먹었냐'고 물어볼 것 같다"고 해서 나온 대사다.
저희가 영화를 만들면서 기본적인 시나리오 구성을 했지만 20회에 달하는 리허설을 통해서 배우들이 그 속에 들어가고 자신들의 언어로 바꾸고 자신의 성향으로 바꾸면서 계속 변화를 거듭했다. 연기가 아닌 대화를 찍는 것을 원했기에 대사를 점점 지워가기 시작했고 촬영 들어갈 때는 상황에 대한 '키워드'만 주며 배우들이 연기에 임하게 했다. 하지만 졸업작품을 제출하려면 시나리오도 같이 제출을 해야하기에 나중에 영화를 보면서 최종 시나리오를 만들었다(웃음).
먹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고은이 도경에게 '치킨 먹고 싶다'고 하는 장면. 정말 부부 같았다(웃음)
정 : 일단 이수정 배우가 치킨을 좋아하고(웃음) 부녀가 같이 살 때는 치킨이 특별한 음식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문호도 치킨을 사들고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고 이를 본 고은이 "치킨이 두 마리네"라고 말하는데 두 남자가 공통으로 고은이를 생각하는 지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설정한 것이다.
공동 작업을 하면서 혹시 의견이 부딪힌 점은 없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했는지
정 : 성별도 다르고 살아온 과정도 다르기에 의견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 역시 가족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비슷하다. 영화 내용과 너무나 닮아 있다. 영화를 만들겠다고 모여서 의기투합하고 하나하나 이야기하면서 의견이 안맞으면 다투기도 하고 다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하고 그 과정들이 영화 내용과 다르지 않다.
허 : 세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어떻게 의견을 조율하고 합의했는가, 이 과정의 총합이 바로 <한 채>다. 남남이 만나 영화 한 편을 만들자고 한 것인데 말하지 않아도 남몰래 뒤꿈치 들고 걷는 마음으로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서로 그 마음을 읽을 수 잇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다른 과정은 문제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 채>라는 영화 제목에 담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허 : '하우스'가 아닌 '홈(home)'으로 다가가기를 바라는 의미로 자주 설명드리는데 여기에 가장 잘 맞는 우리말은 '보금자리'다. 사람이 살아가야하고 살아야만 하는 보금자리의 의미가 담겨 있다.
정 : 꼭 '한 채'여야만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한 채=가족'이다. 한 공간 안에서 같이 살면서 성장하고 독립하면 다시 한 채에서 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 이건 '한 채'여야 느껴지는 지점이다.
언론시사회에서 '아직도 지어지고 있는 영화'라는 말을 하셨는데 그렇다면 <한 채>의 완성은 어떤 모습일까?
허 : 한 채는 '집 한 채'라는 의미도 있지만 이불도 '한 채'라는 단위를 쓴다. 한 채 안에 인간적인 구성 요소가 채워져야한다. 삶에서 채워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지어져가는 과정이라고 느껴지고 그 말이 나온 것 같다.
정 : 저는 지구도 '한 채'라고 본다. 인간으로서의 삶이 다할 때까지 지어지는 것이고 완성 여부는 내가 죽어서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음악감독님한테 엔딩곡으로 '우주로 보냈으면 좋겠다'라는 부탁을 했고(웃음), 우주적인 느낌으로 변주되는 음악을 만들어 냈다. 이 음악 제목도 '가는 길'이다. 삶이 다할 때까지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자는 의미다.
끝으로 관객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허 : 제가 영화를 만들면서 세 배우에게 희망한 것은 서로 연결된 끈을 놓지 않는 것이었다. 그게 영화를 보신 분들의 삶 속에서 여전히 유용했으면 좋겠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향유하는 관점인 만큼 영화보기가 좀 더 많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 : 제게 영화는 '시대의 기록'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시대를 담아낸다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영화를 만들면서 성장해간다는 것을 느꼈다. 제가 하고픈 영화를 계속 하고픈 마음이 크고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다.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한 채'를 잘 지어나가길 바라고 가족에 대한 소중함, 존재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