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50여년에 걸친 작가의 실험과 자문자답, 그 흔적을 찾아서

국립현대미술관 '이강소: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

2024-11-24     임동현 기자
이강소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한국의 실험미술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이강소. 설치, 조각, 회화, 비디, 이벤트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세계의 실험을 했던 그의 작품들이 11월 우리에게 다가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강소: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다.

제목인 <풍래수면시>는 중국 송나라의 성리학자 소옹의 시 '청야음(淸夜吟)'에서 따온 것으로 '바람이 물을 스칠 때'라는 뜻이면서 새로운 세계와 마주치면서 깨달음을 얻은 의식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회화와 조각, 설치, 판화, 영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세계에 대한 서로 다른 인지 방식을 질문하고 지각에 관한 개념적인 실험을 지속해 온 작가의 예술세계를 함축한다"고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장르는 물론 구상과 비구상, 추상 등도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는 7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두 가지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 첫 번째는 '창작자이자 세상을 만나는 주체로서 작가 자신의 인식에 대한 회의', 두 번째는 '작가와 관람객이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의문'이다. 전시는 바로 이 두 질문에 포인트를 맞춰 그 답을 찾기 위한 이강소의 여정을 따라간다. 

이강소

70년대 중반, 이강소는 스스로 창작자로서의 작가의 역할과 한계를 질문한다. 자신의 누드를 소재로 그는 붓질을 할 수록 자신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가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자신의 몸에 묻은 물감을 지워내면서 회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자신을 지우는 일, 작가를 지우는 일이 곧 창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것은 결국 작가가 자신의 의도를 배제하거나 대상의 존재를 의심하며 표현하는 추상, 구상 회화로 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는 80년대 초반에는 기존 실험미술과 설치 작업을 벗어나 평면을 탐구하며 평면성과 회화성을 탐구한다. 그의 회화적 재현은 단순하게 어떤 풍경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존재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고 있다. 이 당시 그는 오리, 사슴 등을 즐겨 그렸는데 이 역시 오리나 사슴을 재현한 것을 넘어 자신이 탐구한 것을 오리와 사슴에 대입시킨다. 여기서 그는 이제 '작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될 듯 하다. 그리고 그 고민을 숨김없이 자신의 작품에 반영한다. 

이강소

그리고 두 번째 질문 '대상에 대한 의문'이다. 그의 작품 <꿩>은 정물화용 꿩의 박제에 발자국을 찍었다. 꿩의 발자국을 남기면서 작가는 존재와 부재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 꿩은 사라졌지만 발자국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것을 존재라고 해야하나, 부재라고 해야하나? 우리는 꿩의 발자국을 어떤 식으로 봐야할까? 존재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 눈 앞에 꿩은 사라졌다. 이 의문들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강소는 바라보는 대상을 의심하면서, 이미지와 실재의 관계를 고민했다. 1971년에 만든 그의 설치 작품 제목은 <근대 미술에 대하여 결별을 고함>이었다. 새로운 전위미술을 시도하려는 흐름에 이강소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에 자신을 맡겼다. 그렇게 사유의 흔적을 남기며 이강소의 작품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강소

50년이 넘는 방대한 시간에 비해 작품 수가 다소 적은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할 수 있지만 이강소의 의미는 작품 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 하나하나에 배어든 그의 질문과 답을 찾을 때 가치가 있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그는 다시 살리는 의미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것의 마지막 흔적을 남기는 데 주력한다. 미술관에 재현된 <소멸-화랑 내 선술집>(1973)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실재에서 가상으로 변해가는 시점에서 그는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탐구해갔던 것이다. 

다양성을 띤 한국 미술의 시작점을 엿볼 수 있는 이 전시는 내년 4월 13일까지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