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회화의 미래'를 보여준 작가, 현대미술사는 그를 놓쳤다

신성희 개인전 '꾸띠아주, 누아주'

2025-02-12     임동현 기자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우리에게 회화는 1차원적인 의미, 즉 붓에 물감을 묻혀 캔버스에 그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과거 미술 시간에 그렸던 정물화와 풍경화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조금 확대하면 우리가 한국 현대회화의 양대 축으로 여기고 있는 단색화와 민중미술을 연상할 수 있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평면의 캔버스를 입체로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회화를 '붓으로 그리는 행위'를 넘어 '극사실적인 묘사'로 만들려는 시도가 진행됐다. 그것은 '회화의 미래'에 대한 예견이었고 그 예견은 미디어 아트, 설치 미술 등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 중이다.

지난 5일부터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신성희의 개인전 <꾸띠아주, 누아주>는 단색화와 민중미술, 이 두 가지만으로 한국 현대회화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미술관에 와서' 봐야하는 전시다. 신성희(1948~2009)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평면의 캔버스에 입체적인 공간을 구축하며 회화를 붓으로 그리는 장르가 아닌 '입체적인 표현이 가능한' 장르로 업그레이드시킨 작가다. 그의 작품을 직접 본다면 한국 현대미술사가 왜 신성희의 시도를 담아내지 않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가 제외되면서 한국 현대회화는 단색화와 민중미술의 이분법으로 결론났던 것이다.

신성희는 80년대 한국 미술계에서 찾아볼 수 없던 화려한 색채에 '종이 뜯어붙이기'와 '뚫린 공간'이 특징인 자신만의 작업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그의 작품 세계에서 주목되는 것은 10년 주기로 자신의 작업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세상이 변하고 시선이 변하는 순간이라면 굳이 자신의 이전 작업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변화에 발맞춰야한다는 작가의 생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마대 위에 마대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마대 회화'(1974~1982), 과감한 색으로 채색한 판지를 찢어 화면을 만들어 낸 '콜라주'(1983~1992), 색칠한 캔버스를 일정한 크기의 띠로 재단하고 그것을 바느질이나 재봉틀로 박음질해 이어낸 '꾸띠아주'(1993~1997), 캔버스에 가위로 잘라낸 색띠를 엮어 틀이나 지지대에 묶으며 평면에서 입체를 표현하는 '누아주'(1997~2009)로 나뉜다. 특히 전시회의 제목인 <꾸띠아주, 누아주>는 회화를 2차원을 넘어 3차원으로 표현한, 평면으로 인식되던 장르에 입체감을 주며 회화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던 신성희의 도전에 대한 헌사를 담아낸 제목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의 회화에 대한 생각은 1971년 작인 <공심(空心)> 3부작에 어렴풋이 담겨 있다. 창문 아래 베게를 베고 누워있는 여성을 그린 1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회화 그 자체다. 이후 몸을 일으키는 여성의 모습은 1부와 달리 뒷모습이 흐릿하고 창문은 찌그러져 있다. 그리고 마지막 3부, 완전히 종잇장처럼 구겨진 창문(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과 베게, 그리고 작가의 사인만이 남아있다.

실상을 그렸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허상인 세계, 정형화된 물체도 얼마든지 입체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설 수 있다는 것, 삐딱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역시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그 느낌이 지금의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느낌을 가진다.

<연속성의 마무리>는 캔버스에 아크릴릭과 오일을 이용해 입체적인 느낌을 주고 여기에 스테인 글라스 조명을 넣어 색의 입체감도 살렸다. 뿐만 아니라 천장에 매달아 걸면서 작품의 앞뒷면을 모두 볼 수 있게 했다. 서로 다른 앞과 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회화'가 존재했던가? 스테인 글라스 때문인지는 몰라도 성스러운 느낌까지 갖게 한다.

평면에서 입체를 실험한 그의 시도는 마치 한 편의 미디어 아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곧 영상이 주가 된 현 시대에도 충분히 통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나의 영상으로 표현해도 손색이 없는 추상회화. 그렇게 그는 회화의 미래를 스스로 표현하고 회화가 미래에 할 역할을 이야기한 것 같다. 정형화가 아니라 엮음과 꼬임을 겪으면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의 사실상 유작이라고 할 수 있는 <회화로부터>는 색띠들을 직접 만들어 표현한 입체적인 회화다. 그 띠들 사이에는 그림을 그리는 페인팅 붓이 있다. 그의 작품 곳곳에도 페인팅 붓을 볼 수 있다. 그는 마지막까지 '회화 작가'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전시는 단색화, 민중미술로만 한국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보아야하는 전시다. 새로운 시도로 회화의 미래를 만든 작가가 존재했다는 것만 알아도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성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 다양성을 함부로 없앤 존재가 누구였는지 궁금할 정도다.

덧붙여 이 전시는 기사의 사진이나 이미지로 확인하기보다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입체'로 표현된 그의 생각을 '평면'에 불과한 사진과 이미지로 알아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확인하는 순간 '우리의 새로운 미술사'가 정립이 된다. 한국 현대미술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미래를 예견한 이가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전시는 3월 16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