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전시가 작품이 되고, 기록이 되고, 세상이 되다
김성환 개인전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어떤 특정한 물건을 벌여 놓고 일반 사람들에게 참고가 되도록 보이는 모임'. 이 의미를 지닌 단어는 바로 '전시회'다. 그렇다면 전시는 '어떤 특정한 물건을 일반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전시회장을 찾으면 우리는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게 되고 그 작품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작품의 의미, 그리고 이 작품들을 만들어 낸 작가의 생각을 유추하게 된다.
한편으로 전시회는 '다른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전하고 그 작품들을 아우르며 '자신의 세상'을 창조한다. 그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떠한 이야기가 나오는 지를 우리는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물론 보자마자 바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표현한 세상을 바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무엇보다 현상을 스스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생각을 하게 된다. 전시회 자체가 곧 전시작, 작가의 대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말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성환 작가의 개인전 제목은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Ua a‘o ‘ia ‘o ia e ia)>다. 이 말의 의미는 '그가 그에게 배웠다. 배웠다. 그에 의해 가르침을'으로 하와이어와 한국어 표음을 병치한 말이라고 한다. 작가는 일제 시대 하와이로 이주했던 우리 민족의 흔적들을 일일이 찾아내고 그 흔적들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이 전시를 보면 작가가 어떤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하나하나의 흔적을 보여주려는 '전시 기획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렇다. 이 전시는 '전시를 전시하는 전시회', 전시회가 하나의 대형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902년부터 하와이로 이주한 한국인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뙤약볕과 백인들의 핍박을 견디며 중노동을 해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 고생하는 이주민들을 현지인들은 '성실한 노동자'로 여기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하와이에서 '이민 1세대'로 생활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을 필두로 지난해 개봉한 영화 <하와이 연가> 등에서 하와이 이민자들의 고생과 애환이 전해지기는 했지만 역사 교과서 등 공적인 자료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보지 못했기에 우리의 기억 속에 들어오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다.
김성환 작가는 이 점에 착안해 박물관 등을 돌아다니며 자료들을 구했고 사진과 책, 기록 등을 전시하며 초기 이민자들의 서사를 보여준다. 작가가 2017년부터 시도하고 있는 프로젝트 <표해록>은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들의 서사를 경계, 전통, 기록, 소유와 유통 등 여러 논제로 확장한다. 그의 시도를 통해 우리는 그간 알지 못했던 이민자들의 삶을 만나고 알게 된다. 작가의 경험이 '앎의 사건'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 작가는 시간과 시간을 같이 놓고 그들의 연관성과 만남을 추구한다. <게이조의 여름 나날-1937의 기록>에서 작가는 1935~1937년 사이에 경성(게이조)을 여행한 스웨덴 민족지학자 스텐 베리만의 기행문과 2007년의 서울을 여행하는 작가 미카 반 데 보르트의 시선을 함께 보여준다.
2007년의 서울에서 1930년대의 경성이 얼핏 보이기도 하지만 시간의 차이로 인한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중앙청은 사라졌고 '조선호텔'은 '웨스틴 조선 서울'로 바뀌었다. 그리고 베리만과 보르트 모두 이 세상에 없다. 30년대와 2007년, 그리고 두 사람이 모두 세상에 없는 2025년,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는 시대의 끈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것은 사라지고, 어떤 것은 낡아서 형태가 변하며, 심지어 어떤 것은 잿더미로 변하기도 한다. 사물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변하게 되어 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우리는 점점 '기록'을 소중히 하게 된다. 변하기 전, 변해가는 과정, 그리고 변하고 난 뒤를 알기 위해.기록은 단순한 기억의 나열을 넘어선다. 우리가 몰랐던 것을 알게 하고 앎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하나의 전시이자 하나의 작품, 하나의 기록이자 하나의 세상. 김성환의 전시는 그래서 특별하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전한다. "전시는 일방적인 발표의 장이 아니라, 상대의 눈을 보며 대화를 하는 곳이다".
전시는 3월 30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