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나무 인문학(3)-참나무, 쓸모의 역사

2025-02-24     전기복 기자
서울

(내외방송=전기복 기자) 오래전 <신갈나무 투쟁기>라는 책이 나왔다. 참나무류 신갈나무의 관점에서 일대기를 서술해 출간되자마자 화제를 모은 책이다. 2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 참나무의 ‘쓸모’라니 다분히 인간 중심의 사고뭉치가 한여름 아스팔트 위 열기처럼 확 하니 숨 막히게 와닿는다. 

그럴 것이 춘추전국 시대 목수 장석이라는 사람이 노거수 상수리나무를 일러 “그것은 쓸데없는 나무다. (중략) 쓸 만한 곳이 없어서 그처럼 오래 살고 있는 것이야.”라고 한 ‘쓸데없는’에서 착안한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참나무의 ‘쓸모와 그 역사’에 대해서 고민해 보면서 우리 주위의 참나무를 둘러보고자 한다.

참나무라고 부르는 나무는 특정나무를 일컫는 이름이 아니다. 참나무는 식물학적으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앞서 나온 신갈나무나 상수리나무뿐만 아니라 굴참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등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통칭하여 참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꿀밤나무’라고 불러야 귀에 감긴다. 

참나무 종류에 속하는 나무들의 자세한 식물학적 구별 점들은 생략하더라도 그 이름을 통해서나마 각 각의 특징을 먼저 알아보자.

상수리나무는 도토리 맛이 으뜸이라, 임금 수라상에 올리는 도토리묵은 이나무에서 나는 도토리를 항상(常) 사용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나무껍질에 코르크가 발달하고 골이 깊게 파인 나무라는 뜻으로 골 참나무, 골 참나무 하던 것이 굴참나무인가 하면, 옛날 짚신 바닥에 나뭇잎을 깔고 다녔다고 신깔나무 신갈나무란다. 

또한 참나무 종류 중 잎이 제일 크고 널찍하여 떡이나 음식을 싸는 용도로 사용한 떡갈나무, 가을 단풍이 가장 이쁘고, 늦게까지 잎을 달고 있어 가을 참나무 갈참나무, 잎과 열매가 제일 작아 졸병 참나무 졸참나무라 구분되고 불린단다. 우리네 조상들이 나무를 잘 관찰하고 그 특징을 드러내는 작명법은 유쾌하고 무릎을 치게 한다.

신림동

어렸을 때 자연을 놀이터 삼아 떨어진 꿀밤을 바지 주머니 가득 담고 팽이 삼아 돌려도 보고 공기놀이도, 자른 단면에 칼로 새겨 도장을 만드는가 하면 동떨어져 앉은 친구 머리를 맞히는 짓궂은 장난도 재미났다.

‘쓸데없이 놀고 있다.’는 어르신들의 참견은 그저 장난기가 과하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그런 것일 뿐이었다. 아이들의 눈에는,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자연의 모든 것은 ‘쓸모’와 동의어였다. 어린 시절 참나무 아니 그 일부인 도토리는 놀이 도구로, 놀다 허기진 배를 채워준 도토리묵이라는 간식이자 별미였다. 모든 게 쓸모였다.

그런데 ‘쓸모가 없어서 그토록 오래 사는 상수리나무’라니. 「장자」 ‘인간세’편을 보자. 목수 장석이 어느 날 노거수 상수리나무를 지나면서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치자 그의 제자가 그 까닭을 묻는다. 그는 제자에게 “그것은 쓸데없는 나무다. 그것으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을 만들면 빨리 썩어 버리고, 그릇을 만들면 바로 깨어져 버리고, 문짝을 만들면 나무진이 흘러내리고, 기둥을 만들면 곧 좀이 먹는다. 재목이 될 만한 나무가 아니다. 쓸 만한 곳이 없어서 그처럼 오래 살고 있는 것”이란다. 

물론 여기서 장자는, 목수 장석의 꿈속에 나타난 상수리나무의 입을 통해서 “돌배 · 배 · 귤 · 유자나 과일이 열리는 나무나 풋과일 따위는 열매가 익으면 따게 되고, 딸 시에는 욕을 당하게 된다. 큰 가지는 꺾어지고 작은 가지는 휘어진다.

손기정

이들은 자기의 능력으로 자기의 삶을 괴롭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타고난 목숨대로 끝까지 살지 못하고 중간에 일찍 죽어 버리는 것이다. 세속에서 스스로 얻어맞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어떤 물건이든지 이와 같지 않은 것이란 없다. 나는 쓸 곳이 없기를 바라 온 지가 오래 되었다.”며 ‘쓸모없음의 큰 쓸모’(無用之用)라는 하고자 하는 본뜻을 밝히지만.

목수라는 입장에서 그 쓸모와 쓸모없음만을 생각한 한계일까. 그 분별심의 어리석음일까. 범부도 참나무 열매인 도토리로 쑨 묵이 구황양식으로 긴요했던 용도를 알고 있다. 나아가 참나무는 산자락에서 들을 내려보고 섰다가 들녘에 풍년이 들면 열매를 조금 맺고 흉년이 들면 열매를 많이 맺는 미덕도 가졌다고 하지 않던가.

먹는 쓸모가 아니더라도, 아테네 사람들은 모든 상수리나무는 제우스신에게 봉헌된 것으로 여겼는데 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 신의 어머니 레이아가 참나무를 요람으로 사용해서 제우스를 키운 것에 기인한단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철종 때 문신 이교면의 아버지가 아들의 첫돌(1737년 2월 5일)을 맞이한 기념으로 심은 나무, 일명 ‘충주 덕련리 상수리나무’가 현존하고 있다. 

먼 걸음에 동행과 심신의 피로를 덜어주는 지팡이라는 쓸모는 또 어떤가.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는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굴참나무가 있다. ‘고려 강감찬 장군이 이곳을 지나다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놓은 것이 자랐다’는 전설이 깃든 나무다. 

범선을 만드는 쓸모에 전쟁의 원인이 됐다면 과장일까. 영국이 참나무를 비롯해 북미대륙의 자원을 엄격하게 통제하자 이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면서 독립전쟁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대략 범선 한 척에 나무 2000그루 정도가 소요된다니, 당시 세계 곳곳을 식민지로 누렸던 영국의 해군력을 상상해 보면 헛된 주장만은 아닌 듯하다.

그뿐일까.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수상자에게 꽃다발을 대신해서 독일 총통 히틀러가 직접 참나무 화분을 수여했다. 마라톤에서 우승한 대한의 건아 손기정 선수는 시상대에서 그 화분의 나무로 가슴을 가렸다. 

한때 월계수로 알려졌던 나무는 대왕참나무(Pin Oak)로 손기정 선수가 출전 당시 재학 중이던 양정고등보통학교 터(현 손기정체육공원)에 심겨서 현재까지 잘 성장하고 있다. 지구촌 한류며 각종 ‘K’ 열풍처럼 우뚝 솟은 국격마냥 웅장한 모습으로 가슴 뭉클해지는 장면을 연출하고 섰다.

올림픽

참나무 종류의 나무들은 구황양식이나 아이들의 장난감에서, 요람이며 기념 식수로, 지팡이로, 범선과 목재로, 환희의 꽃다발 대용으로, 그 쓸모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지 수만큼이나 많았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다는 신갈나무, 조선시대 소나무 육성책이 그리고 6.25전쟁이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황폐해진 산에 소나무를 많이 심었다. 그러나 햇빛을 좋아하는 소나무숲 아래에서 어린 소나무가 자라기가 어렵다 보니, 이 틈을 타고 참나무류가 자라기 시작하면서 더 적은 햇빛으로도 더 잘 자라서 소나무보다 키가 커지면 소나무가 밀려난다. 

천이 과정상 침엽수인 소나무 다음이 활엽수인 참나무류이다. 신갈나무가 투쟁에서 승리하고 우점종이 된다. 「신갈나무 투쟁기」 이야기다. 신갈나무의 탄생, 성장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나무의 일대기를 소설 형식으로 쓴 책의 주인공으로까지 쓰임새의 영역이 확대됐다. 

빈센트 반 고흐의 <참나무(Oak Tree)> 라는 그림 모델과 같이 문학작품의 모델이자 세상의 주체로서 인정받는 위치가 됐다고나 할까.

최근 산림청 자료를 보면 상수리나무는 나무 한 그루당 연간 이산화탄소 흡입량이 가장 우수한 수종일 뿐만 아니라 코르크로 형성된 나무껍질은 내화성을 가지고 있어 내화수림대를 조성한 산불확산 차단에도 그 쓰임이 크다고 하니 요즘과 같은 이상고온현상 등 기후변화에 그 효용이 높은 수종이라 하겠다. 아니 이제는 ‘쓸모와 쓸모없음’을 넘어서서 나무며 숲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야 하겠다. 나무와 숲이 살아야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에 놓인 시대 아닌가. 

그리하여, 숲과 사람의 숨소리가 “닮고 담는다” 그리고 “나무와 사람은 같은 숨을 서로 나누어 쓰고 있기 때문이다”는 그런 생태 지향적인 가치를 「굴참나무 기슭」에서 발견한 시인의 시각이 ‘쓸모의 미래유산’처럼 다가왔다. 

참나무와

나무가 한 그루의 기슭이라는 걸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무수한 파문이, 파문 밖으로 번져
때때로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물꼬를 트듯 새 가지를 내고
한여름이면 무성한 이파리들 위에
호수 하나 펼쳐놓고 있다는 것도
가끔 물방울들이 넘치는 것도 알고 있다

숲이 출렁여도 호수는 쏟아지지 않았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
숲의 주소가 해발로 시작하고
호수의 주소가 산 1번지로 시작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뿌리를 적신 어린 호수가
굴참나무 물관부를 따라 우듬지에 이를 때
나무는 찰박이는 기슭이 된다
굴참나무는 죽어서도 이 파문을 놓지 않아
가을이 되면 풀숲도 나무 밑도
몇 가마의 파문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본다
톡톡, 어린 파문을 떨구는
풍성한 숲은 번식의 법칙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누군들 저의 파문을 내어놓고 싶겠는가
그저, 꾹꾹 눌러 놓은 용수철 같은 파문을
아무도 모르게 내년
또 후년으로 나를 뿐이다

깊은 숨소리가 숲의 소리와 닮은 것도
닮는다는 것이 담는다는 것과 이음동의어인 것도
나무와 사람은 같은 숨을 서로
나누어 쓰고 있기 때문이다

           - 굴참나무 기슭, 
             시집 「벚꽃 지느러미」중에서, 김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