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즐거워야 문화콘텐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게 문화콘텐츠다"
안창현 콘텐츠문화학회 회장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TV와 영화, OTT와 유튜브, 다양한 책과 음악과 춤, K-POP까지 우리는 수많은 문화를 접하고 이것을 향유하고 즐긴다. 이들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가 바로 '문화콘텐츠'이고 문화콘텐츠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학생들도 많아지고 있다.
문화콘텐츠는 정말 광범위한 개념이다. 이와 더불어 문화산업과의 연관성, AI와의 동행 등을 생각하면 그 범위는 더 넓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관심있는 분야,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파고들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 문화콘텐츠의 묘미다. 그를 통해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은 지역, 나아가 국가 문화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문화콘텐츠'를 주목해야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 문화콘텐츠를 연구하고 함께 논의하고 있는 콘텐츠문화학회의 안창현 회장을 내외방송이 만났다. 안창현 회장과 콘텐츠문화학회 회원들은 최근 문화콘텐츠 연구자들의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콘텐츠학> 개정판을 발간했다. 지난 1월 회장에 취임한 안창현 회장은 학회를 '열린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가 전하는 문화콘텐츠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콘텐츠문화학회 회장 취임을 축하드리고 <새로운 문화콘텐츠학> 개정판 발간 역시 축하드린다
감사하다. 부족한 게 많은데 신임 회장을 맡게 되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전임 회장님들이 코로나 시기 어려움을 잘 넘기고 학회를 발전시켰는데 이를 잘 계승하고 성장시키는 역할을 해야한다. 연결고리 역할을 잘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감이 있다.
콘텐츠문화학회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학교 간 장벽, 연구 영역의 장벽을 넘어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교류하는 열린 공간, 열린 플랫폼이라고 보면 된다. 각 학교별로 문화콘텐츠 학과가 생겨났는데 학교에 따라 배우는 커리큘럼이 다르고 동일한 스토리텔링이라고 해도 이해와 정의가 조금씩 달랐던 부분이 있었다. 새로운 학문으로서의 보편성을 만들기 위해 학교의 장벽, 연구 영역의 장벽을 넘자는 목표에 의기투합한 분들이 포럼을 열었고 이 포럼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새로운 문화콘텐츠학> 소개를 부탁드린다
기자님도 아시겠지만 문화콘텐츠라는 것이 굉장히 범위가 넓고 정의내리기도 굉장히 까다롭다. 새로운 융복합학이기 때문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학문인데 이런 학문의 체계를 잡아서 '문화콘텐츠 학문이란 무엇인가'라는 공통 분모를 만들기 위해 학회 구성원들이 참여해 만든 책이다.
일단 초보자들을 위해 '문화콘텐츠'의 의미를 설명하자면 '미디어에 담긴 내용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이라는 미디어에 담긴 다양한 내용들, 영화라는 미디어 안에 있는 다양한 장르들 등이 문화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역사 콘텐츠, 음악 콘텐츠, 무용 콘텐츠 등으로 문화콘텐츠를 마치 수식어처럼 사용하는데 이 책은 이 문화콘텐츠를 크게 문화적인 영역, 콘텐츠적인 영역과 이들의 결합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산업적인 영역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기존 문화콘텐츠 책들이 연극, 애니메이션, 웹툰 등의 장르로 접근을 했다면 이 책은 문화콘텐츠 학문에서 고민해야 할 주제 영역을 중심으로 저술했다. 문화 원형이란 무엇인가, 창작 소재로서의 의미를 설명하고 스토리텔링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글로벌콘텐츠와 로컬콘텐츠의 성격, 이런 식으로 다양한 문화콘텐츠학의 주제 영역을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했다. 콘텐츠 학문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틀을 기반으로 책을 구성했기에 이 책을 따라가다보면 콘텐츠 학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말씀하신대로 문화콘텐츠가 굉장히 범위가 넓기 때문에 '어떻게 접근해야할지'가 문제인 것 같다.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광범위하고 융복합적이기에 연구를 할 때도 장르에 특성화한 접근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영상, 편집, 촬영 등 자신의 전문적인 영역을 기반으로 연구하는 분들이 있고 보편적인 재미를 추구하면서 '재미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영역을 기반으로 할 수도 있다. 콘텐츠의 역사성은 문화 원형과 연결이 되고 IT 산업 같은 경우는 저작권법 등과 관련이 있기에 법률적 영역으로도 연구할 수 있으며 산업이기에 마케팅 영역으로 접근할 수 있다. 하나하나가 전문 영역이기에 특수한 전문성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콘텐츠학이다.
지금 혹시 학회나 문화콘텐츠학 연구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콘텐츠가 있다면?
'새로운 한류'라고 해야하나? OTT 중심으로 글로벌 플랫폼이 열리면서 문화를 전파하는 능력 범위가 확장됐다. BTS나 블랙핑크 등의 음악도 그렇고 우리나라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고 한강 작가의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다양한 영역들이 다양한 지점을 통해 세계인들과 함께 교류하고 주목받는 점에 저희들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 현상들을 연구하면서 앞으로 더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지금 그야말로 'K-컬쳐'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주목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K-컬쳐'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잠깐, '지배'라는 말은 정말 좋지 않은 말이다. 세계인들이 한국의 콘텐츠를 즐긴다라고 봐야한다. 어떤 나라도 특정 나라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입하지 않는다. 다양한 자국의 문화 안에서 특정 시기에 큰 인기를 얻은 것이다. 다만 인기가 장기간 계속되면 이들이 그 나라 문화의 일부분으로 흡수된다.
지금 K-POP과 한국영화도 과거 미국 헐리우드 영화와 팝송 등의 영향을 받고 등장한 것이다.
전 세계에서 한국의 콘텐츠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은 제 개인적으로는 소통의 보편성과 한국적인 특수성을 가진 내용 등이 적절하게 어울려 먹기 편하고 받아들이기 편안한 형태가 되었다고 본다. 음식의 예를 들면 태국 현지에서 먹는 태국 음식과 한국에서 현지화를 시킨 태국 음식의 맛이 다른데 K-컬쳐 역시 다양한 나라의 입맛에 맞게 가공되었다고 본다. 그들의 입맛에 맞고 즐길 수 있고 트렌드를 앞서고 있기에 사랑받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앞으로 K-컬쳐의 인기가 지속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인기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지금 K-컬쳐가 씨앗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에 한국문화의 씨앗이 떨어졌기에 변형된 형태로 세계인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고 차후 우리의 빛나는 문화나 콘텐츠가 있다면 이전보다 더 쉽게,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일시적으로 가라앉는다고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불길을 당길 수 있는 가능성이 클 것이라 본다.
지역 특유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글로컬콘텐츠'의 발전 방안도 필요하다고 보는데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면 한국이 '로컬'이다.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른 한국의 로컬 문화가 낯설어보이지만 재미있다고 해외에서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로컬'이라고 하면 지방을 생각한다. '글로컬'이라는 것은 다 상대적인 개념같다. 지역의 다양한 문화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지도록 성장시키는 것은 모든 지자체가 열심히 준비하는 것 같다. 저희는 좋은 아이디어와 방향성을 제시하고 지자체와 협력해 공동학술대회를 여는 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금 우리 경제가 비관적인 예측으로 가득한데 '문화콘텐츠가 희망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문화산업적 측면에서 창의성에 기반하는 문화콘텐츠 산업은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다. 다만 문화와 산업이라는 두 영역이 함께 어우러져야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 문화콘텐츠를 경제적 가치만으로 자꾸 판단하는 순간 상투적이고 생명력을 갉아먹는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다. 특히 교육 영역에서 '문화적 훈련'을 더 많이 시켜야 산업 현장에서 다양한 변주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OTT, 유튜브 등을 통해 시장이 글로벌 차원으로 넓혀지고 있기에 산업적 측면은 더 확장될 것이라 예측을 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 차원에서 생각하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도 생기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매우 상식적으로 여겨지는 표현이 글로벌 문화에서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삼촌 월남에서 싸운 사람이야"라는 말이 콘텐츠에서 나온다면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지만 베트남 사람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창작의 차원에서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검토하고 작품을 만들어야한다는 것이 글로벌 시장에 직면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방금 "교육 영역에서 '문화적 훈련'을 더 많이 해야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문화적 훈련'이 무엇인지?
콘텐츠는 갑자기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훌륭한 작품들, 고전이라고 불리는 콘텐츠들을 많이 훈련하는 과정에서 현대인의 취향과 감각에 맞는 변주가 일어나는거지 그냥 완전히,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상상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문화 교육을 풍성하게 받아야 웹툰이든 영화든 소설이든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세기를 리드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정부의 정책 마련과 지원이 필요해보이는데 문화 예산이 자꾸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한류에 대해 해외 학자들은 한국 정부의 지원 덕택이라고 보고 있는데 국내 학자들은 정부가 '되는 것'만 지원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팔길이 원칙(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과 '정치적 입장에 따른 검열 금지'가 보편화되면서 문화콘텐츠가 성장했고 팔길이 원칙은 정말 한국 사회에서 기본이 됐다.
박근혜 정부도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기는 했지만 국가 사정이 어려웠고 콘텐츠 영역 정책이 부재했다. 문재인 정부는 문화의 보편성과 국민 다수의 문화 향유 확대로 주목받았지만 글로벌 진출과 관련해서는 국가의 비전이 없었다. 윤석열 정부는 말하기조차 어려운 시점이다. 정책 자체가 없다. 차기 정부에서는 콘텐츠 영역에서 체계적인 조직을 다시 정비할 필요가 있고 예산을 확대해야한다. 이 두 가지가 된다면 콘텐츠 산업은 다시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맞이할 것이다. 코로나 때 워낙 타격이 컸기에 정부가 다시 보호 육성할 필요가 있다.
올해 콘텐츠문화학회의 비전을 이야기하자면?
비전이라기보다는 앞에서 말한대로 전임 회장님들과 임원진들의 성과를 잘 계승하는 것이 첫번째 목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콘텐츠문화학회는 열린 플랫폼 같은 공간이기에 다양한 연구 영역에 있는 분들이 편하게 모이고 교류하는 수평적 공간, 열린 공간으로 더 키우고 싶고 열심히 하지만 너무 딱딱하지 않은, 따뜻한 학문의 고향 같은 공간으로 자리잡도록 애쓸 생각이다.
회장으로서 목표가 있다면 코로나 팬데믹도 이제 끝났으니 글로벌 학문 영역으로 연결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가깝게는 중국, 일본과 콘텐츠 문화 교류하면서 학회도 글로벌하게 성장시키고 싶다.
학술대회 때마다 후속세대들이 다양한 연구와 발표를 하고 있는데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정말 참신한 내용의 연구들이 많다고 느끼지만 아직은 학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마다 연구 방법이 각자 다르고 그것이 후속세대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학회를 통해 교류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학회가 운영됐으면 한다. 저희 학회의 가장 큰 장점은 탈권위적이라는 것이다. 토론자와 발표자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서로 최대한 존중하고 있다.
앞으로 문화콘텐츠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이라 보는지?
최근에 AI(인공지능)를 보면서 콘텐츠도 AI와 함께 가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생성형 AI가 이제 소설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단순한 텍스트가 아닌 작품을 생산하는 단계까지 왔다. 이 기술의 발전을 콘텐츠 영역에서도 적극 수용하고 함께 가야한다고 본다. 다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획과 방향성인데 이는 인간의 영역이다. 이 역할을 문화콘텐츠 연구자들이 해야할 것이다.
인간의 사회에서는 언제나 문제가 있다. 갈등도 있고 다툼도 있는데 이를 화해시키고 치유하는 것이 콘텐츠다. 환경, 여성, 소수자, 노인 등을 콘텐츠에서 더 주목해야하고 이것은 미래에도 계속 일관성있게 추진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즐거워야 문화콘텐츠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게 문화콘텐츠다.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일에 콘텐츠문화학회가 앞장서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