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국내 최장수 상업화랑 '갤러리현대' 55년, 역사는 계속된다

갤러리현대 특별전 '55주년 :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

2025-04-15     임동현 기자
이승택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1970년 4월 4일 오전 10시, 서울 인사동에 '현대화랑'이 들어섰다. 현대화랑은 창작에만 몰두하는 전업 작가들의 전시를 개최하며 그들의 작업 세계를 대중과 국내외 컬렉터, 기업과 세계 유수 기관으로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됐다. 초대 회장인 박명자 회장이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천경자 등 거장들을 소개하면서 한국 미술의 역사가 대중들에게 전해졌고 이것을 그의 아들인 도형태 부회장이 잇고 있다. 그렇게 현대화랑은 '갤러리현대'라는 이름으로 55년의 역사를 이어갔고 '국내 최장수 상업화랑'이라는 역사를 만들게 됐다. 

갤러리현대는 개관 55주년을 맞아 55년의 역사를 모아놓은 특별전 <55주년 :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를 지난 8일부터 열었다. 당초 현대화랑의 창립일인 4일에 개막할 예정이었으나 갤러리 인근에 있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선고가 잡히면서 개막이 연기가 됐다. 전시는 갤러리현대 본관(현대화랑)과 신관(갤러리현대)에서 열리며 본관에서는 갤러리현대를 통해 '국민화가'가 된 거장들의 작품들이, 신관에서는 갤러리현대가 새롭게 발굴한 실험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선을 보인다.

이중섭

본관에서는 박수근, 이중섭, 천경자, 유영국, 도상봉, 장욱진, 김환기 등 한국미술을 빛낸 작가들의 회화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동양화가 대세를 이루던 1970년대에 박명자 회장은 서양화의 비중을 높이기 시작하면서 회화 작가들의 개인전, 회고전 등을 열며 인연을 맺었다. 한국 서양화의 1세대 작가 도상봉, '한국적 인상주의'를 구축한 오지호, '국민 화가'로 올라선 박수근과 한국적 모더니즘을 확립한 장욱진,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었던 권옥연과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등이 모두 갤러리현대를 통해 알려지고 갤러리현대와 지금까지 인연을 잇고 있는 작가들이다. 

전시작들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작품들과 비교해볼 때 다소 소박해보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도상봉의 라일락, 천경자 특유의 감성이 돋보이는 초상화, 이중섭이 표현한 가족과 박수근 특유의 인물 묘사 등 익숙한 부분들이 존재하기에 편한 마음으로 회화를 감상하면서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도상봉

하지만 여기서 전시가 끝난다면 뭔가 아쉬움이 들 것이다. '그냥 작가들 작품 나열하는 전시로 끝나는 것 아니야?'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신관으로 자리를 옮기면 회화와 다른, 한국 실험미술의 역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관에는 2대 화랑주인 도형태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갤러리 프로그램에 관여하면서 시작된 '한국 실험미술 작가 다시보기' 프로젝트를 대표하는 작가들과 도 부회장이 뉴욕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파리 유학 시기에 인연을 맺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실험미술의 선구자인 곽인식과 곽덕준의 대표작들과 백남준이 만들었던 로봇 <프랑켄슈타인>, 파스텔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김명희의 그림과 '마대 회화'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든 신성희, 이승택 작가의 '비조각 연작', 그리고 한국실험미술의 거장인 이건용과 이강소가 있다. 

곽덕준

무엇보다 '한국 미니멀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로 알려진 박현기의 1981년 작 <도심을 지나며>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81년 3월 진행된 도심 횡단 프로젝트 작업을 사진과 영상을 통해 보여주면서 퍼포먼스의 스케일을 느끼게 해주는데 80년대에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이것을 실제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는지를 흥미있게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하나, 성능경 작가의 신작을 만난다는 점도 반갑다. 70년대 대표작 <수축과 팽창>의 원본 필름, 80년대 대표작 <현장>과 더불어 2023년 100인과 함께 진행한 <신문 읽기 : 100인의 퍼포먼스>는 독특한 방법으로 역사를 증언하는 성능경 작가의 예술적인 관점이 엿보인다. 그는 지난해 12월 3일,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언'이 일어난 직후 그 계엄 선언을 보도한 신문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어냈다. 기사들은 모두 지워져 있고 계엄을 선포하는 권력자의 사진 역시 눈이 지워져 있다. 남은 것은 이미지 뿐이다. 

그는 그렇게 12월 3일의 '신문 읽기'를 표현했다. 모두 지워야할 정도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그는 생각한 듯 하다. 그리고 성능경 작가의 신작을 통해 전시는 '55년을 회고하는 전시'에서 '55년의 역사를 이어가는 전시'로 새롭게 변신한다. 

성능경

거장들이 '옛날에 작품 활동했던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숨쉬고 있고, 느끼고 있고, 현실을 비판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느낀다면, 그리고 그 역할을 국내 최장수 상업화랑이 하고 있다고 하면, 우리는 또 다른 역사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전시는 특별하다. 역사는 '과거'가 아닌 '연결'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는 5월 22일부터 시작되는 2부가 궁금해진다. 2부 전시는 현대화랑이 70년대 후반부터 적극적으로 개인전을 열기 시작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작가들,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완전한 추상 양식의 회화 작가들의 대표작들로 구성된다. 본관에서는 현대화랑에서 갤러리현대로 확장되어간 20세기 후반까지의 여정을, 신관에서는 역사를 지금도 쓰고 있는 현대미술가들의 근작과 신작이 선보인다고 한다. '역사 쓰기'는 진행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음 전시를 보고픈 마음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