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최근 AI 시대를 맞아 'AI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AI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몇몇 영화제에서 'AI 섹션'이 선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AI 영화를 집중 소개하면서 AI 섹션을 따로 만들었고 2030 청년영화제는 AI 영화와 미래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기도 했다.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지만 현 시대에서 AI 영화는 이제 하나의 흐름으로 인정받고 있고 그렇기에 호불호를 떠나 하나의 장르로 인정하는 분위기도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 단편영화 <화이트 노이즈>로 세계적인 단편 영화제인 밀라노인디필름페스티벌과 베를린 단편 영화 어워즈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은 조정웅 감독. 처음으로, 단독으로 만든 AI 영화로 그는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의 자리에 올라섰다. AI 영화의 흐름과 미래가 궁금해진 1월의 어느 날, 내외방송은 조정웅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우선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화이트 노이즈>를 만든 조정웅이고 미디어아트 기획파트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했는데 백남준 선생님의 작업을 논문으로 쓰면서 미디어아트와 예술의 결합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마침 알파고의 등장을 보며 충격을 받았고 최근에 챗GPT가 나오면서 앞으로 AI가 어떻게 발전할까 궁금했고 이를 어떻게 예술 활동에 활용할까 고민하면서 근무 시간에 짬짬이 시험삼아 뮤직비디오 같은 짧은 영상을 만들어보다가 다른 형태로 만들 수 있겠다, AI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만든 게 제 첫 영화인 <화이트 노이즈>입니다.
그런데 그 첫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했습니다
베를린에서는 공상과학영화 섹션에서 상을 받았고 밀라노에서는 기술 부문에서 2개의 상을 받았습니다. AI로 만든 영화가 많지 않다보니 새로운 기술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서 상을 주신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AI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궁금해하실 것 같습니다. 제작 과정을 알려주시죠
제가 영화를 배운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생각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어보자는 게 의도였습니다. 처음에 시나리오나 시놉시스, 이야기 구조는 제가 직접 작성하고 챗GPT와 소통하면서 아이디어와 디테일에 대한 조언을 구했습니다. 대사의 경우 AI에 맡길까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AI가 아직 인간의 언어를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고 챗GPT가 쓴 대본도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은, 평이한 대사라 제가 직접 써야했습니다. 역시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AI가 아닌, 인간만의 영역입니다. 그렇게 대사를 쓰고 커트를 분할해서 어떤 장면이 들어가야할 지를 나름대로 구분하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제작 들어갈 때는 이미지 생성 AI를 활용해서 재료가 되는 이미지 컷을 뽑으면 그걸 영상화하는 AI가 있습니다. 일례로 영화에서 '지구가 멈췄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지구와 달이 공존하는 장면을 만든다면 이미지를 먼저 뽑고 영상을 만들 때 '지구가 돌다 멈춘다'는 식의 명령을 내리고 프롬프트를 제시하면 여러 영상이 나오고 거기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작업을 반복합니다.
이 작업이 끝나면 편집을 하게 되는데 여기는 AI가 아닌 전통적인 영상 편집술을 사용합니다. 마지막에는 AI를 이용해 대본을 읽을 수 있도록 하고 대사를 따서 타임라인에 올리고 마지막으로 효과음까지 입히면 마무리가 됩니다.
제작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총 제작 기간은 2주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중 맨 처음 기획하고 시나리오 쓰는 데 일주일 정도 걸렸습니다. 기술보다 기획하고 시나리오 쓰는 데 시간이 더 걸렸죠. 가볍게 접근해보자고 생각하면 누구나 만들 수 있고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수 있기에 많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어떻게 구상을 했나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등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기존에 살고 있는 세계는 동굴 속의 허상이고 동굴 속 세상이 진짜라고 믿는, 동굴을 나가지 않으면 진짜 세상을 모르는 것, <설국열차>에서도 열차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고 다들 생각하지만 밖으로 나가도 살 수 있다는 희망,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그 서사가 우리 영화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영화는 AI에 대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K-90이라는 이름의 'AI 데이터'인데 달이 이 세계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지만, 달이 깜박이는 것을 본 순간 가짜가 아닌가라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달이 깜박인다는 것은 AI의 입장에서는 오류가 생겼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을 AI가 인지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상상했습니다.
만약 AI가 인간의 지능과 감수성을 가진다고 하면 세상에 의문을 품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하지 않을까, 그 생각이 이루어지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했고 영화 속 AI의 고민과 실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가 다르지 않다고 봤습니다. 진짜란, 그리고 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한 마디로 AI의 '진실 찾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이 '백색 소음', '백색 파동'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제목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본래 정보이론에서 나온 것을 참고한 것인데 사실 백남준 선생님이 '화이트 노이즈'를 해석한 것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백색 소음은 최대치의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TV라는 것이 각각 픽셀마다 보내는 신호를 화면에 모아 이미지를 만드는 것인데 정보가 최대치가 된다고 해서 의미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돈되고 인지할 수 있는 정보로 변환이 되어야 의미가 발견되죠. 하지만 백남준 선생님은 백색 소음이 '진실된 자연의 언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과'라는 정돈된 이미지가 있는데 그 사과가 썩어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이고 그것이 백 선생님이 이야기한 '백색 소음'이 되는 것이죠
지금 AI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방식이 사실은 그 전의 상태를 역으로 돌리는 형태입니다. 처음의 이미지에서 노이즈를 덧대어서 '그래도 인지할 수 있냐'를 묻고 마지막 백색 소음 단계까지 가서도 '인지할 수 있느냐'를 살펴봅니다. 무질서한 정보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AI에 적용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고 제가 몰랐던 연결고리가 있다고 봤습니다.
영화의 부제가 'Ghost Out Of The Shell'인데 과거 영화 <공각기동대>의 영어 제목이 'Ghost In The Shell'이었습니다. 연관이 있는지?
<공각기동대>는 로봇이 겪는 정체성의 문제를 다룹니다. 쉘(Shell) 안에 갇힌 영혼이죠. 저는 그 쉘을 깨고 바깥으로 나온 영혼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인공지능 '마더'와의 대화에서 "어디로 가고 싶습니까?"라는 마더의 질문에 K-90은 "어디든 상관없어"라고 답하고 마지막에 "자유로군"이라고 말합니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고 하면 혼동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뭘 해도 상관없는, 제약이 없는 상태가 바로 자유의 기본 조건이라고 저는 봅니다. 자유가 그런 것 아닐까요?

"진실이라 부르는 것은 마치 텔레비전이 만들어 낸 찰나의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마더의 대사가 있습니다. 혹시 '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유라는 의미인지?
진실이라는 것은 어떤 특정 순간에만 유효한 것 같습니다. 저는 진정한, 영원한 진실은 없다고 봅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지만 30년 전에는 제가 어린이라는 것이 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30년 후에는 제가 노인이라는 것이 진실입니다.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진실은 달라지죠. 하지만 우리는 영원한 진리에 대한 환상을 늘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잠깐의 진실을 영원불멸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 진실을 아는 것이 바로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깨닫을 때 거기서 오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이 나온 이유도 그것인 것 같아요.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무엇이 되든 상관없다. 그게 진실이라고 봅니다. 영화 속 K-90도 결국 진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뭘 해도 자유롭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이 대사도 눈길을 끕니다. "달은 가장 오래된 비밀".
백남준 선생님의 '달은 가장 오래된 TV'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백남준 선생은 '공상과학'을 최소한의 정보를 가지고 그 당시 상황을 추측하거나 그려낸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상과학은 미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인데 과거와 관련된 최소한의 정보를 가지고 그 당시의 상황을 추측하는 것도 공상과학에 해당되는 거죠.
백 선생님은 공상과학을 신석기 시대까지 넓히셨습니다. TV도 변화하지만 달 역시 변화합니다. 달도 하루하루 끊임없이 이미지가 변하고 매일매일 떠 있는 곳도 다르죠. TV에서 진실을 추구한 것처럼 달에서도 진실을 추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로 처음과 마지막에 TV가 나오는데 눈치 채셨겠지만 이 역시 백남준 선생님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호평도 받고 상도 받으셨는데 해외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영화제에서 상을 많이 주셨어요. 아직도 얼떨떨한데(웃음) 처음에는 AI영화제에 내려고 했지만 어쩌다보니 일반 영화제에서 더 많이 불러주시고 상도 주셨습니다. 영화계에서도 AI를 어떻게 바라봐야할지를 굉장히 심각하게 고민한다고 하더군요. 한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감독님이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AI 영화를 어떻게 바라봐야하는지를 물으셨는데 AI 영화를 하나의 장르로 봐야한다고 했고 AI 창작물 역시 인간과의 상호작용으로 나오는 결과물이기에 이를 AI 것, 인간의 것이라고 구분하는 자체가 본질을 잘 모르는 것이라고 했어요. 시연까지 하며 제 생각을 말씀드리니 감독님도 '감 잡았다'고 하시더군요(웃음).
여전히 AI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영화계 사람이 아니라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직업의 종류나 역할이 계속 달라져왔잖아요. 만약 AI 시대가 되면 물론 사라지는 직업군이 나오겠지만 AI로 대체된다고 해서 나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AI가 거스를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인간이 노동하는 시간은 물론 줄어들겠지만 기획하는 역할은 계속 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그동안의 노동은 labor, 즉 돈을 벌어야하기에 자신이 스스로 힘든 일을 하거나 남의 돈을 받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었어요. 노예와 다름 없었죠. 하지만 이제 work, 능동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일을 통한 성취감이 더 커지게 되면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막연하나마 가지고 있습니다.

AI 영화가 이처럼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AI 영화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
방금 앞에서 말한 '기대감'이 각광받는 이유입니다. 기존의 큰 규모의 자본으로 제작됐던 것이 자본이 많이 들지 않는, 1인으로도 가능한 것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효용가치가 커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겁니다. 방송도 이제는 1인 방송 시대가 됐고 파급력이 더 커졌는데 영화도 그렇게 변할 것 같습니다. 대중화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반영됐다고 봅니다.
지금 국제적인 대기업들이 AI에 어마어마하게 투자를 하는데 시장 논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고 봅니다. 돈이 투입된다는 것은 흐름이 그쪽으로 바뀐다는 것이죠. 돈이 되고 미래가 된다고 보기에 투자를 하는 겁니다. 장밋빛이라고 하기는 조금 성급하지만 전망성이 있고 발전 속도도 빠릅니다. 이를 잘 활용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죠. 하지만 워낙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에 이제 거대 자본이 필요하지 않은 산업으로 바뀔 것이라고 봅니다.
차기작으로 카프카의 <변신>에서 영감을 얻은, 고통과 혼란 속에서도 생명의 본질과 자아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직은 구상 단계이기는 한데 말씀을 드리자면 이 영화도 진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간이 주인공인데 보통 사람과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 그럼에도 현실에 분명 존재하는 사람이 보는 세계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변신>이란 작품이 어느 날 눈을 뜨니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이 다음날 갑자기 거짓이 되고, 극단적으로 보면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이 상대방과 다른 세상일 수도 있죠. 우리가 몰랐던 세상이 오는 이 상황이 지금 이 시대에 맞는 것인지를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앞으로의 작품 세계가 궁금합니다
저는 사실 영화보다 AI를 활용한 여러 예술을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꼭 영화가 아니더라도 다른 장르에서 실험을 계속할 것입니다. 기술과 예술을 이용해 작업을 하는 것이 제가 꿈꾸는 세상이고 여러분들도 자신이 꿈꾸는 세상, 원하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