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매광산 광부 집단수몰사건
옥매광산 광부 집단수몰사건
  • 박영길A 기자
  • 승인 2017.09.06 16: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옥매광산 추모제
(내외뉴스=박영길A 기자) 황산 옥매광산 광부수몰사건은 일제강점기 때 제주도로 강제로 끌러간 광부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바다에 집단 수몰된 사건이다.

황산면과 문내면 등의 광부들은 1945년 3월 하순경 일본경찰과 헌병에 의해 강제로 배에 태워져 제주도로 끌러간다. 이들은 제주도 서귀포 등지에서 군사시설인 굴을 파는 일에 투입됐다가 같은 해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어렵게 배를 구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당시 배에는 일본인 5명을 포함해 225명이 타고 있었는데 배가 추자도 앞에 이르렀을 때 배에 큰 불이 나고 승선한 광부들은 모두 바다로 뛰어내려 널빤지와 깃대 등에 매달려 구조를 기다리게 된다.

표류 8시간 만에 그 앞을 지나던 일본 경비정에 의해 구조작업이 시작되는데 일본 경비정은 구조된 137명의 사람들 중 일본인 5명이 포함된 것이 확인되자 나머지 118명의 광부들은 그대로 버려둔 채 현장을 떠나 버린다.

이 사건 이후 황산면과 문내면은 초상집이 된다. 광부들이 떠난 항구에선 원혼들을 달래기 위한 큰 굿이 2∼3개월간 치러지고 한 마을에 30호 이상이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일이 매년 반복된다.

현재 이 사건과 관련돼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는 이는 김백운(91·목포거주)씨이며 유족들은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태이다. 돌아오지 못한 광부들의 후손들은 가난 때문에 고향을 등졌기에 당시 생존한 광부들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간간히 추모제를 이어왔다. 추모제일은 광부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1945년 8월 23일(음력 7월 16일)에 합동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지난 8월 11일 열린 황산옥매광산 광부 집단수몰사건 추모조형물 건립추진위 발족식에서 그동안 황산옥매광산 광부 수몰사건을 조사해온 성균관대 동아시아 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인 강정숙 박사는 “1965년 한일협정 시기에 한국정부는 국내강제동원의 중요성을 몰랐다. 오히려 일본정부가 문제로 삼으려 했다에도 한국정부가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고 넘기는 바람에 일제강점기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위원회에서도 국내동원에 대한 지원이나 보상을 제외시켰다”며 “정부차원에서 국내 강제동원 희생자에 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오늘의 이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 : (주)내외뉴스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04690
  • 인터넷신문등록일자 : 2017년 09월 04일
  • 발행일자 : 2017년 09월 04일
  • 제호 : 내외방송
  • 내외뉴스 주간신문 등록 : 서울, 다 08044
  • 등록일 : 2008년 08월 12일
  • 발행·편집인 : 최수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3 (뉴스센터)
  • 대표전화 : 02-762-5114
  • 팩스 : 02-747-534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진
  • 내외방송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내외방송.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wtn.co.kr
인신위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