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외방송=박세정 기자) 국가보훈처(이하 보훈처)는 19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윤봉길의사의 순국 90주기 추념식이 개최됐다고 밝혔다.
이번 추념식에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명노승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장을 비롯해 기념사업회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추념식은 국민의례, 약전봉독(생애와 업적 따위를 간략하게 적은 기록을 받들어 읽음), 추념사, 헌화·분향, 유시 낭독, 추모가 순으로 진행했다.
윤봉길 의사는 1919년 3ㆍ1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해 학교를 자퇴하고 사설 서당인 오치서숙에서 한학을 수확했다.
1931년 중국 상해에서는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의열투쟁의 결의를 다지고 1932년 4월 26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천장절(天長節, 일왕의 생일)을 맞아 일본군의 상해 점령 전승 경축식이 열린 홍커우공원에서 오전 11시 40분경에 수통형 폭탄을 단상 위로 투척했다.
이 의거로 시라카와 대장과 가와바타 거류민단장이 사망했고 노무라 중장, 시게미쓰 공사 등이 중상을 입었다.
보훈처는 "윤 의사의 의거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중국의 지원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의 구심체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의거 직후 윤 의사는 현장에서 일경에게 체포돼 상해 일본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았다.
그해 5월 상해 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12월 19일 가나자와 육군형무소 공병 작업장에서 25세 나이로 총탄을 맞고 순국했다.
윤 의사의 유해는 김구 선생의 요청에 따라 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돼 1946년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1962년 정부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주는 것) 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윤봉길 의사 순국 90주기를 맞아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일생을 바쳤던 의사님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혼을 엄숙한 마음으로 되새기겠다"며 "국민들이 의사님의 숭고한 뜻과 정신을 언제나 기억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