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선) 학폭은 어디에서 비롯되나?
(데스크 시선) 학폭은 어디에서 비롯되나?
  • 설동성 기자
  • 승인 2023.03.1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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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내외방송) 학폭(학교폭력)이 끊임없이 터지고 있습니다. 현재 발생하는 것도 있고, 과거의 학폭이 문제화되기도 합니다. 지난날의 학폭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사죄하고 일선에서 물러나는 유명 인사도 많습니다. 최근에는 어느 고위공직 내정자가 자녀의 과거 학폭이 드러나면서 취임도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한번 터지면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됩니다. 학폭을 주제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매번 대박이 납니다. 학폭 드라마의 담당 PD가 과거 자신의 학폭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학폭에 대해 무척이나 엄격한 편입니다. 물론 일이 터진 후에야 그렇습니다. 하지만 예방은 잘 안되고, 학폭을 당하는 피해자가 호소해도 도움을 못 받기 일쑤입니다.

학폭의 외양적 특징은 뭘까요.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관계를 보겠습니다. 가해자는 대부분 힘있는 세력에 속합니다. 이른바 ‘일진’이거나, 부모가 권력층 인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힘있는 쪽이 자신의 위력(威力)으로 힘없는 쪽을 괴롭힙니다. 
   
흔히 애들은 싸우면서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학교 뒷산에서 일대일 결투가 벌어지곤 했습니다. 물론 암묵적인 전제가 있습니다. 동등한 입장에서 무기없이 정정당당하게 한판 붙는 겁니다. 싸움이 일방적으로 흐르면 당연히 주변에서 말리면서 끝납니다. 이 정도는 우리 사회도 용인해왔을 겁니다. 이를 폭력으로 고발했다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반칙 등이 나오면 학교의 징계를 받았을 겁니다. 그래도 학폭과는 다릅니다.

학폭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요? 가해자의 성격과 성장과정,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관계 등 미시적 측면, 학폭 발생에 학교라는 밀폐된 공간의 환경과 우리 사회 구조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따져보는 거시적 측면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문화를 들여다보겠습니다. 

학교는 사회라는 공동체로 진출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예비공동체입니다. 공동체 구성원들, 즉, 학생들은 공동체 운영의 원리를 배웁니다. 공동체가 잘 돌아가려면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수적입니다. 타인들과 함께 가면서 함께 하는 문화를 익힙니다. 친구들간에 부대끼면서 소통하고, 말다툼도 하고, 어쩌다 주먹다짐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공동체에서 필수적으로 나타나는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회공동체 구성원으로 성장해갑니다. 교과학업은 이런 목적을 구현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교과학업 성적은 그저 성적일 뿐입니다. 한마디로 학교라는 공동체는 같이, 그리고 함께 사는 법을 익히는 곳입니다. 이런 여건에서는 학폭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학교교육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가는 법을 배우기보다는, 친구를 누르고 이기는 법을 배웁니다. 공부에서 이겨야 하고, 싸움에서도 이겨야 합니다. 이쯤 되면 친구는 같이 가는 동반자가 아니라, 거꾸러뜨려야 하는 경쟁자가 됩니다. 이를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이 동원됩니다. 학생 본인의 힘이 딸리면 부모 힘을 이용해서라도 친구를 누릅니다. 힘있는 친구는 힘없는 친구를 함부로 대하고 괴롭힙니다. 왜 그랬느냐고 하면 그냥 장난삼아 재미로 그랬다고 합니다. 한 번이 두 번, 두 번이 세 번, 이렇게 계속되면서 쾌감의 강도가 높아지겠지만, 피해자는 트라우마의 강도가 높아집니다. 가해자의 반성은 사치입니다. 부모님들도 자녀들 기죽일까봐 적극적으로 나무라지 않을 겁니다. 학교측도 학교의 명예가 손상될까봐 숨기는데 급급합니다. 학생의 삶이 위태로워졌는데도 학교는 그저 명예 타령입니다. 이러다 보면 가해자는 오히려 기세등등해지고, 피해자는 어디 호소할 데도 없이 2차, 3차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같은 한국의 일그러진 교육문화는 초등학교부터 시작해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계속될 겁니다. 

작가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무대는 자유당 정권 말기 어느 시골 초등학교. 학교라는 공간 내 그들만의 세상에서 왕따 등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난무합니다. 학폭입니다. 동급생에 비해 나이가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 ‘일진’이 지배자입니다. 완벽한 모범생이지만 일그러진 영웅입니다. 다른 학생들은 피지배자가 돼서 굴종합니다. 친구가 당해도 모른 체 합니다. 선생님들도 공모자로 전락합니다. 이같은 일그러진 영웅이 지배하는 왕국은 새로 부임해온 젊은 선생님에 의해 무너집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겠습니다. 학폭 문제 중 하나로 그 비열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정당하게 한판 붙는 것이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가해 방법이 무척이나 비열합니다. 옆에 있는 친구들도 힘 센 가해자로부터 당할까봐 모른 체 합니다. 역시 비열합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지배자가 온갖 나쁜 짓을 저질러도, 급우가 당해도 나 몰라라 하는 바로 그 비열함입니다. 

학폭은 학습효과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한번 이슈가 될 때마다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정부 차원에서 이런 저런 대책을 쏟아내는데도 끊이질 않는 것 보면 그렇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은밀하게 학폭이 발생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 교육문화가 공동체의 같이 사는 법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바뀌지 않는 한, 친구를 동반자가 아닌 경쟁자로 여기는 시선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학교 폭력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타인과 함께 하는 사회’와 ‘타인을 이기는 사회’. 우리는 어느 쪽을 향하는 교육을 택해야 할까요. 답은 분명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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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 2023-03-13 16:39:03
군대 폭력은 거의다 사라진 것 같은데 학교 폭력은 왜 수그러들지 않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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