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탬'을 주고 싶었던 화상(畵商)의 애정이 만든 '한국화의 역사'
'보탬'을 주고 싶었던 화상(畵商)의 애정이 만든 '한국화의 역사'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3.05.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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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동녘에서 거닐다 :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
김규진, 풍죽(風竹), 1920년대, 비단에 먹, 134×39cm, 국립현대미술관 동산 박주환 컬렉션. (사진=국립현대미술관)
김규진, 풍죽(風竹), 1920년대, 비단에 먹, 134×39cm, 국립현대미술관 동산 박주환 컬렉션.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서울=내외방송) "거창하게 시작하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평생을 일하시면서 (미술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17일 오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동산방화랑 설립자인 故 동산 박주환(1929~2020) 대표가 수집한 90여 점의 한국화 대표작이 전시되는 <동녘에서 거닐다 :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이하 <동산 박주환 컬렉션>) 언론공개회에서 아들인 박우홍 현 동산방 화랑 대표가 전한 말이다. 

박우홍 대표는 지난 2021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화 154점을 포함한 회화 198점, 조각 6점, 판화 4점, 서예 1점 등 총 209점을 기증했는데 이 중 한국화 대표작 90여 점이 18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전시된다.

정은영, 모란과 나비, 1980년대 전반, 종이에 색, 66×62.3cm, 국립현대미술관 동산 박주환 컬렉션.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정은영, 모란과 나비, 1980년대 전반, 종이에 색, 66×62.3cm, 국립현대미술관 동산 박주환 컬렉션. (사진=국립현대미술관)

그림 교육으로 사군자화 대중화에 힘쓰며 한국 근대미술의 미적 가치를 탐구한 김규진, 남종화단의 명맥을 이은 허백련, 한국의 대표작가인 김은호 이상범 이용우 김기창 이응노 허건 등의 산수화, 한국 채색화의 전통을 이어온 정은영 유지원 김흥종의 영모도와 화접도, 현대적 해석과 표현을 시도한 박노수 서세옥 장운상, 산수화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유근택 강경구 등 80여년간 한국화를 지켜온 작가들의 대표작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동산 박주환은 1961년 서울 인사동에 표구사 '동산방'을 개업했고 이를 기반으로 1974년 동산방 화랑을 개업했다. 그는 표구를 위해 수천 점의 우리 고미술품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뜯으면서 작품에 대한 안목을 높였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화 전문 화랑을 통해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실험적으로 전시를 기획하면서 현대 한국화단의 기틀을 만들어냈다. 

그는 작품을 수집하면서 작가의 명성이나 가격의 높고 낮음 등을 생각하지 않았고 유명한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와 친분이 있거나 화랑에서 전시를 해던 작가의 작품을 수집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그의 미술품 수집이 유명한 그림을 사서 비싼 값을 주고 팔거나 내놓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앞에서 박우홍 대표가 말한 것처럼 '미술인들에게 작은 보탬이라도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 속에서 잊혀지고 있는 작가, 거장들의 이름에 가려진 작가 등을 발굴하고 이를 알리고 이 작가들이 최소한이라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덜 수 있어야한다는 그의 마음이 전시에서 느껴졌다. 1977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하자 자신이 소장한 이상범 화백의 <초동(初冬)>을 기증했다는 것도 그의 '보탬'에 대한 생각을 엿보게 한다. 

이상범, 초동(初冬), 1926, 종이에 먹, 색, 152×182cm, 국립현대미술관 동산 박주환 컬렉션.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상범, 초동(初冬), 1926, 종이에 먹, 색, 152×182cm, 국립현대미술관 동산 박주환 컬렉션. (사진=국립현대미술관)

미술 작품에 대한 그의 애정을 짐작케 하는 글이 있어 인용해본다. "동산은 좋은 작품 앞에서 연애하듯 가슴앓이를 했다. 좋은 작품이 저평가를 받으면 속상해했다. 아끼고 애지중지하던 소장품을 팔고 나면 1주일쯤 화랑 분위기가 얼음장으로 변했다고 한다. 연인을 멀리 떠나보낸 듯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질을 내고 좌불안석 불편한 심사를 표현했다는 것이다"(정재숙, <동산 박주환 약전> 중에서).

<동산 박주환 컬렉션>은 동산 선생이 소장했던 한국화를 통해 192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화의 80년 역사를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1920년대에 나온 김규진의 <풍죽(風竹)>을 시작으로 전통회화를 바탕으로 한 과감한 실험. 전통 수묵화의 기초 요소인 '지필묵'을 벗어난 자유로운 표현, 한국화의 질서를 적용한 서양화 등 한국화의 다양한 변화와 시도를 체감할 수 있다. 

또 하나, 모처럼 담백함이 돋보이는 한국의 전통 수묵화, 산수화를 볼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채색을 하지 않고 붓과 먹만을 이용해 대나무, 매화, 진경산수를 그렸던 고전적인 성향의 그림들을 접할 기회가 시간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는데 이 전시를 통해 한국화의 원형이 전하는 담백함, 먹의 매력과 여백의 미 등 한국화 고유의 정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세옥, 도약, 1998, 종이에 먹, 색, 39.4×39.4cm, 국립현대미술관 동산 박주환 컬렉션.
서세옥, 도약, 1998, 종이에 먹, 색, 39.4×39.4cm, 국립현대미술관 동산 박주환 컬렉션.

그리고 덧붙인다면 한동안 우리는 우리의 그림을 '동양화'라고 표현했고 지금도 '동양화'와 '한국화'를 혼동해서 쓰는 경우가 많지만 엄연히 우리의 그림은 이제 '한국화'라고 불러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중국이나 일본, 기타 나라와 분명 다른 요소가 존재하고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발전시킨 장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동양화'보다는 '한국화'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화의 역사, 그 역사를 만들어나갔던 수많은 작가들, 그리고 그 역사를 지키고 싶었던 사람의 노력과 애정이 담긴 전시가 바로 <동산 박주환 컬렉션>이다. 전시는 2024년 2월 12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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