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73주년 기획] '성북천에 평화를 심다' 6.25 참전용사 심영우 옹의 '애국심'
[6.25 73주년 기획] '성북천에 평화를 심다' 6.25 참전용사 심영우 옹의 '애국심'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3.06.24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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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에서 전투 참여, 성북천에 무궁화 심으며 애국심 실천
6.25 참전용사 심영우 옹. 오른쪽 표지석은 지난 23일 성북구가 무궁화에 대한 심 옹의 노력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사진=2023.6.24 임동현 기자)
6.25 참전용사 심영우 옹. 오른쪽 표지석은 지난 23일 성북구가 무궁화에 대한 심 옹의 노력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사진=2023.6.24 임동현 기자)

(서울=내외방송) 지난 23일, 서울 성북천 '희망의 다리' 인근에 표지석이 세워졌다. 표지석에는 '성북천에 평화를 심다'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6.25 참전용사이신 심영우님께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2008년 성북천에 무궁화를 심었습니다'. 6.25 참전용사로, 중동의 노동자로, 그리고 성북천에 우리의 국화(國花)인 무궁화를 심으며 애국심을 실천했던 심영우 옹(92)의 노력을 기념하는 표지석이었다.

6.25 73주년을 앞둔 24일, 참전용사이자 '성북천 무궁화 할아버지' 심영우 옹을 만나기 위해 구청 관계자와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자택을 찾았다. 심 옹은 활짝 웃는 얼굴로 반갑게 우리의 방문을 환영했다. "별 것도 아닌 일 가지고 여기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차가운 음료수 한 병도 건네신다.

"서로가 마주치면 총을 쏴야하는, 죽기 아니면 살기였지"

심영우 옹이 태어난 곳은 강원도 인제. 38선에 거의 맞닿아 있는 지역이다. 그의 아버지는 19세에 한문 선생이 됐고 21세에 이장을 맡을 정도로 영리한 분이었지만 일제의 강제 징용으로 인해 남양군도로 끌려갔고 결국 그 후유증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일제가 강제로 징집 영장을 돌리게 했어요. 아버지께서 그 역할을 하셔야하는 것이지. 근데 징집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죽으라는 이야기잖아, 영장을 받고 어머니들이 대성 통곡을 하고... 차마 동네 사람들에게, 친척들에게 그 영장을 줄 수 없었던 거지. 그래서 '영장 안 돌릴테니 차라리 나를 끌고 가라'고 한 거에요. 그랬더니 진짜로 남양군도로 보냈어. 해방이 되고 이듬해에 돌아오시기는 했는데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셨어요. 미군의 폭격이 계속되서 1년간 쌀 구경을 못했다고 하니까... 섬에 있는 과일로 연명하고 개, 고양이까지 잡아먹었을 정도였어요. 그 후유증으로 결국 일찍 돌아가시고 만 거야..."

아버지를 잃고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6.25 전쟁이 일어났고 심영우 옹은 최전방에서 군인으로 '박고지 전투' 등 치열한 전투를 경험했다.. 1사단 12연대 1대대 3중대. 그의 소속이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먼저 발견하면 바로 총을 쏘는, 수시로 교전을 치르면서 언제 어디서 죽을 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됐다. 말 그대로 '죽기 아니면 살기'였다.

표지석을 바라보는 심영우 옹. (사진=2023.6.24 임동현 기자)
표지석을 바라보는 심영우 옹. (사진=2023.6.24 임동현 기자)

"정말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아마 상상조차도 어려울거야. 수색 잠복을 자주 나갔는데 서로 만나게 되면 교전이야. 그러니까 마주치면 우리도 죽고 적군도 죽어요. 우리가 발견하면 먼저 쏴야해. 우리가 있는 곳이 강을 끼고 있어서 개괄지가 있는데 그 개괄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쪽이 공격을 하는거야. 죽느냐 사느냐, 죽기 아니면 살기였어. 나와 같이 군에 간 사람이 12명이었는데 나하고 다른 친구 2명만 살았고 나머지는 다 죽었어요. 나도 몇 번 죽을뻔한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총알이 나를 빗겨가더라고(웃음)". 

삶과 죽음의 갈림길, 불과 몇 시간전까지만 해도 같이 어울리던 동료의 죽음을 수시로 맞아야하는 상황.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를 지키게 한 것은 바로 애국심이었다.

"동료가 죽은 것을 보면 정말 가슴아파요. 같이 밥도 먹고 했던 동료인데... 내가 죽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지... 그러면서 '아, 이 친구는 이 나라를 위해 나보다 먼저 갔다'고 생각했어. 내가 나라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버틸 수 있었던 거지".

마침내 휴전이 됐고 심영우 옹은 대대 연락병으로, 군악대로 군 생활을 계속하게 된다. 그리고 제대 후 그는 중동으로 건너가 땀을 흘린다. 참전용사에서 산업 역군으로 제2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회사에서 보급 업무를 했어요. 영어를 하나도 몰라서 통역 통해서 겨우 서류 만들어서 냈지.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는데 나는 자격증이 하나도 없었어. 그래서 월급이 상당히 적었어. 시간 초과 근무를 하니까 겨우 돈이 더 나오더라구".

심영우 옹의 정성으로 꽃을 피운 무궁화. (사진=2023.6.24 임동현 기자)
심영우 옹의 정성으로 꽃을 피운 무궁화. (사진=2023.6.24 임동현 기자)

'성북천에 무궁화를 심어보자' 우공이산을 방불케 한 정성

이후 그는 국내에서 자영업자로 일했고 2남 2녀의 자녀를 훌륭히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동네에 있는 성북천을 지나던 중 갑작스럽게 머리에 스친 생각이 있었다. '성북천에 무궁화를 심어보자!'

"아침 저녁 운동하던 곳인데 '여기에 무궁화를 심으면 성북천을 지나는 분들이 무궁화를 보고 나라에 대한 생각을 한 번은 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 거야. 해 보자. 집에 있는 화분에 가지치기를 해서 무궁화를 심어봤는데 열흘 정도 되니까 잎이 나기 시작하더라고. 아 됐다. 성북천에 직접 무궁화도 심고 물도 하루에 한 번 주고 그렇게 시작했지".

하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성북천의 특성상 돌이 많고 흙이 많지 않기 때문에 무궁화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게다가 중간에 꽃을 꺾는 이들도 있었고 '성북천 물을 보고 싶은데 무궁화가 다 가린다'며 심지 말라고 항의한 주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공이산'을 방불케하는 그의 정성으로 약 40여 그루의 무궁화 중 15그루가 건강하게 뿌리를 내렸고 성북천은 무궁화가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새롭게 변했다. 15년의 세월 동안 직접 무궁화를 돌봐왔던 심 옹의 정성은 이제 자녀들이 잇고 있으며 그의 바램대로 성북천을 찾는 주민들도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시간을 잠시나마 갖게 됐다.

이를 알게 된 성북구는 무궁화를 심은 곳에 표지석을 세워 심영우 옹에게 존경을 표했다. 그리고 앞으로 구에서 무궁화를 관리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법규 문제 때문에 앞으로 무궁화를 직접 심는 행위는 금지된다고 한다. 

일제의 만행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6.25의 참화 속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중동의 더위와 낮은 임금에 시달리면서도 그를 지탱시킨 것은 애국심이었다. 그리고 그 애국심은 성북천을 '무궁화 동산'으로 탈바꿈시켰다. 6.25 73주년, 그리고 정전 70주년을 맞는 올해, 그에게 '애국'이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애국은 절대 입으로만 할 수 없어요. 행동이 뒤따라야 애국이죠. 내 맘대로 살려고 하면 안돼요. 사회에서 꼭 지켜야할 규정이 있고 법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앞뒤를 보고 사정을 보고 행동해아지 그냥 막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되요. 규정 지키고 법 지키고 그렇게 반듯하게 살아가는 게 곧 애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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