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좋은 사람] "받은 것을 주민들께 돌려드는 것, 저의 '임무'입니다"
[우리동네 좋은 사람] "받은 것을 주민들께 돌려드는 것, 저의 '임무'입니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3.11.1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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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물 봉사활동, 심폐소생술 재능기부... 전호연 서울 성북동대장의 '사랑나눔'
전호연 서울 성북동대장. (사진=임동현 기자)
전호연 서울 성북동대장. (사진=임동현 기자)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숨이 막힐 정도의 폭염이 계속되던 지난 여름, 서울 성북동 다정다감 전통찻집 앞 나무그늘 아래 '어르신 쉼터'를 찾은 이가 있었다. 무더운 여름 더위 속에서 그는 더위에 지친 어르신들에게 얼린 500ml 생수를 나누어 주었다. 북정마을 정자에서 더위를 피하며 쉬고 있던 어르신들은 뜻밖의 시원한 물 선물에 어느새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 더위에 얼음물을 나눠주며 어르신들에게 웃음을 안긴 사람. 바로 서울 성북동의 전호연 예비군 동대장이다. 흔히 '동대장'이라고 하면 예비군훈련을 담당하고 주도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전호연 동대장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성북동의 각종 행사에 '틀림없이 나타나는' 든든한 지역의 일꾼이다.

"제가 2016년 7월부터 동대장을 맡았어요. 전부터 다른 분들을 돕고픈 마음은 있었는데 군 생활을 오래하다보니 접할 기회가 없었죠. 그러다가 동대장을 맡으면서 부녀회나 통장협의회에 계신 분들이 정말 많은 일을 하고 계신 것을 봤어요. 그분들이 하시는 일을 도와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1993년부터 군인으로 일해온 전호연 동대장은 2015년 소령으로 전역을 했다.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토목건축을 전공했고 병과도 공병이었기에 그는 토목건축 쪽으로 직장을 구하려했다. 하지만 전역을 앞두고 그는 한 가지 고민을 하게 된다.

"제 진짜 전공이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토목건축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20년 넘게 군인으로 있었으니까요. 한 2주 정도 고민하다가 20년 넘게 생활한 것이 제 전공이라는 결론을 내렸죠. 사실 그 무렵에 '동대장'이라는 직책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1년간 시험을 준비하고 합격해서 동대장이 됐죠".

아무래도 동대장의 가장 큰 역할은 예비군훈련의 지도와 통제. 과거 예비군훈련을 생각해보면 예비군들의 방종(?)을 통제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은데 혹시 요즘도 그럴까?

"많은 분들이 예비군 훈련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시는데 예전처럼 훈련장에서 술먹고 고스톱치고 몰래 숨고 하는 건 정말 옛날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각 훈련장마다 성과가 좋으면 점수를 잘 받고 그러면 조기 퇴소가 가능하기에 예비군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으면 안 되고 점수를 잘 받으면 일찍 퇴소를 할 수 있으니 저절로 자발적인 참여가 가능해지는 거죠. 이런 상황에 작계훈련에도 영향을 미쳐서 이제는 향방작계훈련 때도 열심히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 가지 바람을 전했다. "항방작계 훈련이나 동원령이 발령되어서 임무를 수행할 때 저희들 표현으로 '예비전력 자원'이 없으면 임무수행이 되지 않습니다. 예비군들이 임무수행을 할 수 있도록 협의 단체나 주민센터가 방위지원본부가 되어 민간 자원에 대한 지원을 많이 받아야합니다. 평소에는 거의 단절된 것처럼 있다가 '필요하니까 주세요' 식으로 하는 건 무리입니다. 평소에도 서로 유대감을 갖고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선뜻 돕는 부분이 필요합니다". 

성북동 주민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전호연 동대장. (사진=성북구)
성북동 주민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전호연 동대장. (사진=성북구)

그는 2016년부터 심폐소생술, 자동제세동기 강사로 활동 중이며 현재 성북동 주민 및 주민센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과 응급처지 방법, 소화기 사용법 등을 교육하며 재능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올 여름, 그는 어르신들에게 얼음물을 나누어주는 '친절한 군인 아저씨'가 됐다.

"작계훈련 과정에 '작전 지역 도보답사'가 있습니다. 하늘공원까지 올라가는 코스인데 굉장히 경사가 가파르고 힘든 코스입니다. 다행히 전반기에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하반기 훈련이 8, 9월에 잡혀있어 전반기 코스대로 가면 너무 더워서 예비군들이 힘들어할 것으로 봤어요. 시간도 오후 2~4시라 가장 더울 때였고요". 

"최적의 코스를 찾으려고 돌아다녔는데 그 시간에 어르신들이 모여서 그늘에서 쉬고 계시는데 부채질만 하실 뿐 더위를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얼음물 2, 3개만 들고 '할머니 이것 잡수세요'라며 드렸는데 계속 돌아다니니 그냥 갈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물을 미리 얼리고 어르신들께 드리게 된 것이 이 일의 시작입니다".

"처음에는 물을 드리면 다들 의아해하시고 '이걸 왜 주나'라는 표정을 지으셨죠. 동대장이란 말도 모르시는 분들도 많으시잖아요. 그래서 물을 드리면서 '저 주민센터에 있는 군인이에요' 하니까 '아, 군인이야?'하면서 맞장구를 쳐주시고 나중에는 주민센터에 왔다갔다하시는 분들이 동대장이라고 알려주시면서 다른 분들도 아시게 됐죠".

그러다보니 어르신들은 이제 그를 보면 '시원한 얼음물'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어주신다.

"군복을 입고 북정마을을 지나가는데 어르신들이 정자에 앉아계시더라고요. 인사를 하니 처음에는 깜짝 놀래다가 '맨날 물주는 아저씨 아냐'라고 저를 알아보시더군요. 어르신께서 저를 알아주신 게 너무나 고맙고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잠깐, 직접 물을 구입하고 얼리는 준비를 해야하는데 부담은 없었을까?

"통장님이나 부녀회장님 같은 분들을 보면 명절이나 복날 같은 때 기부를 많이 하시잖아요. 저는 그분들의 기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물은 인터넷에서 사면 100개에 2만원 정도 밖에 안 하니까 큰 부담이 없어요. 동대에 냉장고가 있으니 언제든 물을 얼릴 수 있고요".

표창을 받은 전호연 동대장. 왼쪽은 이승로 성북구청장. (사진=성북구)
표창을 받은 전호연 동대장. 왼쪽은 이승로 성북구청장. (사진=성북구)

이뿐만이 아니다. 명절 나눔행사, 주민 자율 대청소, 성북동 예초작업 활동, 구민 체육대회 등 성북동의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는 궃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주민들을 도우며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힘만 보태는 것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일들이 모두 일과 중에 있고 물을 나누어드리는 것도 일과 시간을 활용한 것이기에 일과 중에 하는 일은 모두 제 임무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르신들이 계시고 주민 분들이 계시기에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고 동대장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죠". 

"저는 특별하게 '봉사를 한다'는 개념보다는 제가 받았던 것을 돌려드리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허리가 안 좋으시고 다리를 절뚝이면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힘쓸 일 있으면 언제든 제게 말씀하세요'라고 말해주면서 받았던 것을 돌려드리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한다. 전 동대장의 생각은 어떨까?

"제가 지금 헌혈을 103번을 했고 적십자회비도 계속 납부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편함을 보니 적십자회비 고지서가 있더라고요. 그동안 냈던 회비는 다 제가 자발적으로 낸 것인데 고지서를 보니 강제로 내라는 느낌을 받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 젊은 분들도 봉사하고픈 마음, 동네 일에 참여하고픈 마음이 다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행동으로 이끌려면 '계기'가 있어야하고 이를 지속시킬 사회적인 여건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예를 든 것처럼 강제로 하라는 느낌을 받거나 손해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마음이 돌아설 것 같습니다. 이분들이 자발적으로 봉사를 하고 이를 지속시킬 수 있는 요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제 겨울, 전호연 동대장은 또 하나의 '따뜻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겨울에는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매일 나오시지는 못하죠. 특히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잘 나오시지 않고 조금 추워도 바람이 잦아들면 밖에 나오시는 분들이 그래도 계세요. 여름처럼 매일 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요일을 정해서 혹은 어르신들이 많이 나오시는 때에 저희 집에 있는 찜기 등을 이용해서 호빵이나 만두, 고구마 등을 조금씩 드리려합니다. 경제적인 걱정을 하기보다는 '뭘 드리면 좋을까'  그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전호연 동대장은 주민센터 직원들 등의 도움에 대해 감사하면서 계속해서 작으나마 봉사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번에 물을 나눠드리는데 어르신들이 '나무에 벌레들이 많이 떨어져 계속 물린다'고 불편을 호소하셔서 동장님께 말씀드렸더니 20분 만에 방역차가 와서 벌레를 다 잡았어요. 동장님과 주민센터 직원분들이 많은 도움 주시고 많은 활동 하신다는 것 알려드리고 싶고, 어떤 새로운 일을 하고 일을 벌리기보다는 지금처럼 나눠드리는 일에 집중하고, 작더라도 지속가능한 일을 하는 게 제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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