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그림으로 표현하고 실현하려한 영조와 정조의 '이상'
글로, 그림으로 표현하고 실현하려한 영조와 정조의 '이상'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3.12.11 12: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탕탕평평-글과 그림의 힘'
영조가 합법적으로 왕위에 올랐음을 백성에게 알리는 '천의소감 언해', (사진=임동현 기자)
영조가 합법적으로 왕위에 올랐음을 백성에게 알리는 '천의소감 언해', (사진=임동현 기자)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영조와 정조, 18세기 조선을 이끌었던 두 군주다. 하지만 영조는 '형(경종)을 독살하고 왕이 됐다'는 소문에 시달렸고 정조 역시 세손 시절 '죄인(사도세자)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다'는 흉언에 시달려야 했다. 이들이 정당한 왕위 계승자임을 입증하고 정통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선택한 것은 바로 '글과 그림'이었다. '탕평(蕩平)'을 내세웠던 영조와 개혁을 추진하려던 정조의 이상은 글로, 그림으로 표현되어 당대의 백성들에게 전해졌고 이제 후손들에게도 전해지고 있는 중이다.

2024년, 영조 즉위 300주년을 앞두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8일부터 개최한 특별전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은 바로 글과 그림으로 왕가의 정통성을 보여주려했던 영조와 정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전시다. 이들이 인재 등용, 왕도 세우기를 통해 '질서와 화합의 탕평'을 이루어내려는 노력을 알 수 있게 하는 서적과 어필(御筆) 등은 18세기 궁중서화의 화려한 품격과 장중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상적인 국가로 나아가려는 두 군주의 몸부림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특별전의 시작은 두 군주가 글과 그림으로 자신들의 국정 운영 방침을 알리는 서적과 글이다. 영조가 '경종 독살설'을 주장한 이들을 왜 처형했는지,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즉위를 반대했던 이들을 처단해야했던 이유를 글을 통해 전하고 있다. 

특히 영조는 백성들에게 직접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밝히기 위해 한글로 풀어쓴 언해본을 제작하기도 했고 1728년 급진파 소론 등이 일으킨 무신란을 진압한 후에는 <감란록>이라는 책을 통해 반란의 근본적 원인을 '붕당'으로 지적하는데 이는 최초로 서적 출판과 배포를 통해 국정 운영 방침을 명확히 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이들은 또 신하에게 글이나 시를 전하며 자신들의 마음을 전하고 업무 태도에 대한 권면을 하기도 했다.  '두루 사귀고 치우치지 않음은 군자의 공정한 마음이요, 치우치고 두루 사귀지 않음은 소인의 사사로운 마음이다'. 탕평을 향한 영조의 의지가 느껴지는 글이다.

최초로 일반에 공개된 김두량의 '삽살개'. (사진=임동현 기자)
최초로 일반에 공개된 김두량의 '삽살개'. (사진=임동현 기자)

이 전시가 관심을 모으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그동안 책으로만 봐왔던 김두량의 <삽살개>가 최초로 일반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털이 복슬복슬한 삽살개가 사납게 짖는 모습을 김두량이 그렸고 여기에 영조가 직접 쓴 시가 담겼다. 

'사립문을 밤에 지키는 것이 너의 일이거늘 어찌하여 길에서 낮에 이같이 짖고 있는 게냐'. 영조는 이 시를 통해 '낮에 짖어대는 삽살개'를 탕평을 반대하는 신하들에 빗댔다. 즉 밤에 사립문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해야하는 삽살개가 대낮에 짖어대는 것과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서 탕평을 비판하는 신하들이 같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 한 인물이 등장한다. 우리에게 '암행어사'로 너무나 잘 알려진 박문수다. 박문수는 영조가 왕세제였던 당시 교육을 담당했고 부족한 세수 해결을 위해 '균역법'을 제시하는 등 영조의 탕평정치를 뒷받침한 인물이다. 그의 38세 초상화와 60세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있는데 이를 통해 조선후기 초상화 기술을 엿볼 수 있다.

정조는 근신들이 지방관으로 임명될 때마다 시를 써서 이들이 갈 길을 격려했다고 한다. 정조가 '정성을 다해 죽기로 맹세해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평가한 정민시가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정조는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지금의 복잡한 일은 오직 백성을 보살펴야하니 예부터 지방 순시의 임무는 가까운 신하에게 맡겨왔다네'.

뿐만 아니라 정조는 노론의 영수 심환지에게 297통이나 비밀 편지를 쓰며 국정을 논했고 문제를 일으킨 신하를 비판하면서 '호로자식'이라고 표현하는 파격을 보이기도 했다. 또 '효(孝)'를 내세워 친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추승하려 노력했으며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을 처벌한 것이 아니라 설득하고 재평가하며 마침내 임금에 버금가는 '여덟 자' 존호를 사도세자에게 올렸다. 글의 힘이 사도세자를 살린 것이다.

신하 정민시가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정조가 쓴 '신제학정민시출안호남'. (사진=임동현 기자)
신하 정민시가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정조가 쓴 '신제학정민시출안호남'. (사진=임동현 기자)

이 전시에서 주목해야할 또 하나의 작품은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사도세자가 묻혀있던 수원 화성에 행차한 과정을 담아낸 <화성원행도>다. 여덟 폭의 그림으로 구성된 <화성원행도>는 화성향교 참배, 혜경궁 홍씨 회갑연, 양로연, 야간 군사훈련, 한양으로 돌아가는 행렬, 그리고 배다리로 한강을 건너는 모습 등이 담겨져 있다.

이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면 왕을 중심으로 신하들이 줄을 지어 질서정연하게 있는 모습이 보인다. 거기에 행렬을 바라보는 백성들의 모습은 자유롭고 편안하다. 바로 여기에 그동안 영조와 정조가 꿈꾸었던 '탕평'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다. 서로를 향해 칼을 겨루지 않고 질서를 지키는 신하들과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백성들. 그 이상이 담겨진 작품이 <화성원행도>다. 전시는 바로 이 의궤도와 함께 마무리된다.

아, 그리고 전시를 보다보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를 접하게 될 것이다. 바로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영조 역으로 출연한 배우 이덕화의 목소리다. 영조가 쓴 글과 시를 오디오 가이드에 참여한 이덕화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화성원행도' 중 배다리로 한강을 건너는 어가의 모습. (사진=임동현 기자)
'화성원행도' 중 배다리로 한강을 건너는 어가의 모습. (사진=임동현 기자)

<탕탕평평-글과 그림의 힘>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글과 그림'이 어떤 역할을 하고 이를 통해 이루어낸 결과를 보며 말 그대로 '글과 그림의 힘'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를 넘어 나라를 운영하는 이들의 '문화적 소양'을 짚어봐야할 전시이기도 하다. 이 전시에 나온 서적과 글, 그림이 가능했던 것은 영조와 정조,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이들의 문화적 소양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를 오늘날로 대입해본다면 솔직히 마음이 무겁다. 온통 상대방을 비난하는 말로만 이루어지는 정치 기사, 비꼬기로 일관하는 정치인의 말들, 과연 이렇게 문화적인 소양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정치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조선 후기 '문화 정치'를 이렇게 부러워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특별전은 내년 3월 10일까지 열린다.


오늘의 이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 : (주)내외뉴스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04690
  • 인터넷신문등록일자 : 2017년 09월 04일
  • 발행일자 : 2017년 09월 04일
  • 제호 : 내외방송
  • 내외뉴스 주간신문 등록 : 서울, 다 08044
  • 등록일 : 2008년 08월 12일
  • 발행·편집인 : 최수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3 (뉴스센터)
  • 대표전화 : 02-762-5114
  • 팩스 : 02-747-534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진
  • 내외방송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내외방송.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wtn.co.kr
인신위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