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어떤 어른이 되어야할까요? 관객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
[인터뷰] "어떤 어른이 되어야할까요? 관객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4.06.11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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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양치기' 손경원 감독
'양치기'를 만든 손경원 감독. (사진=마노엔터테인먼트)
'양치기'를 만든 손경원 감독. (사진=마노엔터테인먼트)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선생님이 때렸어요". 한 소년이 한 거짓말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 교사는 졸지에 '학생을 때린 교사'가 되고 억울함을 호소해도 주변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아이는 거짓말을 했을까? 극한으로 몰린 교사 앞에 한동안 사라졌던 아이가 나타난다. 깊어지는 갈등과 불신, 학대 속에서 두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거짓말이 만들어낸 위험한 파국. 12일 개봉하는 영화 <양치기>의 주요 내용이다.

이 영화를 만든 손경원 감독은 단편 <가족사진>(2017), <36.5>(2019), <방과 후>(2020)를 통해 주목받았으며 이번에 <방과 후>를 장편으로 늘려 첫 장편영화 <양치기>를 만들었다. 각종 영화제에서 상영되며 관객들을 만났고 이제 일반 관객들과 만나게 되는 <양치기>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할까?'라는 감독의 고민이 담긴 영화다. 그 고민에 관객들, 그리고 이 인터뷰를 보게 될 독자들의 동참을 바라는 마음으로 손경원 감독과의 인터뷰를 공개한다. 

오는 12일 <양치기>가 개봉합니다. 개봉을 앞둔 소감 부탁드립니다.

실감이 잘 안나네요(웃음). 촬영을 시작한 기점으로 거의 3년이 다 되어가는데 극장 개봉을 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말 기쁘고 감사하고 또 긴장도 됩니다. 영화제 끝나고 편집을 다시 했는데 정말 새로운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기다려주신 스탭, 배우 분들에게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단편 <방과 후>를 장편 <양치기>로 만든 계기는 무엇인지요?

제가 대학교 졸업작품으로 이 이야기를 떠올려서 단편을 만들었는데 만들고 나서 뭔가 해소되지 않은 답답함이 있었어요. 이렇게 지나가기에는 이야기를 제대로 못끝낸 것 같다라는 생각에 장편 시나리오로 다시 작업을 하게 됐죠. 단편에서는 장르적인 긴장감이나 스릴러에 집중했던 것 같고 그러다보니 제가 전달하고픈 메시지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당시에는 만드는 데 급급했죠. 졸업을 해야하니까(웃음).

쓰면서 어떻게 제대로 제 의도를 전달할 지를 많이 고민했던 것 같고 그래서 엔딩에도 이 부분을 반영했던 것 같아요. <양치기>를 다 쓰고 나서 '이제야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다 썼다. 이제 놓아주자'라고 생각했죠. 이제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웃음).

두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결말과 요한(오한결 분)의 가족 이야기, 보육원이라는 새로운 공간, 그리고 보육원의 아이 '은지'와 요한의 집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의 존재입니다. 특히 새로 등장한 인물들의 존재감이 큰데 이야기가 확장되어간 과정이 궁금하네요

<방과 후>의 요한이 두려운 존재고 악마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보신 분들이 모두 다 '무서운 아이'라고 생각한 거에요. 이면은 안 보고 겉면만 보고 무서운 아이라고 판단하신 거죠. 요한이를 단순히 '영악한 아이'로 그치게 하지 않으려면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요한이 가족의 이야기를 더하고 요한의 거짓말이 어떤 이유에서 시작되었는지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단편에서는 방과 후 교사,. 장편에서는 담임 교사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교사가 아이의 거짓말에 의해서 곤경에 처한다'는 상황은 똑같아요. 똑같은 상황이지만 이를 둘러싼 군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할머니 '춘자'는 요한의 가족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인물이지만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아요. 무관심한 이웃, 보편적인 인간 군상으로 봤고 '은지'는 아이들에게 어른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캐릭터였어요.

저는 은지와 요한이 똑같다고 봤고 이들이 주변에 어떤 어른이 있냐, 어떤 대응을 받았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요한이나 은지가 어떻게 자라느냐는 결국 주변 어른들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렇게 쓰다보니 두 인물 모두 영화에 꼭 필요한 캐릭터가 됐지요.

영화 '양치기'. (사진=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 '양치기'. (사진=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보신 분들은 '서이초 사건' 등 교사 관련 사건들을 계속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언론시사회 때도 변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면에서 <양치기>, 그 이전에 <방과 후>를 만들 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방과 후>를 만든 게 2019년이었는데 그 때는 교권 문제보다는 아동학대 사건이 우후죽순처럼 뉴스에 나왔던 때였어요. 정말 심각하다고 봤는데 이는 한순간의 생각이었고 비슷한 일들이 계속되니까 '왜 이게 반복될까? 나는 놀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건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그 의문을 가지고 단편 <방과 후>를 만들었고 <양치기>를 만들었는데 허구가 바탕인 이 이야기와 너무 유사한 사건들이 작년에 이슈가 되어서 놀랐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위치만 다를 뿐 어른과 아이 사이의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요한을 연기한 오한결 배우에게 '요한 수첩'을 만들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변화무쌍한 인물이 요한인데 어떤 캐릭터로 생각하고 '요한'을 만들었고 오한결 배우에게 특별히 주문했던 부분이 있었는지?

요한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보다 영리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똑똑하고 눈치가 빨라요. 정말로 속을 알 수 없고 거짓말을 하는지 참말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오한결 배우에게 속마음을 숨기는 것에 중점을 두고 연기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결 배우가 그 나이대 아이답게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지만, 또 동시에 내면이 성숙해서 요한을 잘 표현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 수첩'은 요한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요한이 처한 환경이나 행하는 말이나 행동이 보편적이지는 않습니다. 이를 잘 이해시키기 위한 이유도 있었고, 요한을 연기하면서 한결 배우가 상처를 받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요한을 분리, 타자화해서 하나의 캐릭터로 인식시키기 위함도 있었습니다. 요한을 학대하는 부모 역할을 한 배우들도 촬영 끝나면 서로 다독이면서 상처를 받지 않도록 도와줬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주인공 수현(손수현 분)을 ‘극한’으로 몰고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갑작스러운 현실의 변화와 그로 인해 미쳐가는 수현의 모습이 공포까지 느끼게 하는데 이렇게까지 했을 필요가 있었는지, 연기를 한 손수현 배우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네요

인간은 누구나 예측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실수'를 한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누구나 실수를 함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실수에 대한 관용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죠. 타인의 비난 속에 자신은 억울함을 느끼게 되고 그 억울함이 커지면서 의도하지 않은 행동을 하고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이런 현실을 보여주려면 수현의 상황을 극한까지 치닫게 해야한다고 봤습니다.

손수현 배우는 제 의도를 잘 이해해주셨고, 촬영 내내 심리적으로 고단했을텐데 내색 없이 소화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수현 배우와의 작업은 처음이었지만 좋은 호흡을 맞췄다고 생각합니다.

(왼쪽부터) 손수현 배우, 오한결 배우, 손경원 감독. (사진=임동현 기자)
(왼쪽부터) 손수현 배우, 오한결 배우, 손경원 감독. (사진=임동현 기자)

영화에서 수현의 애인, 선생님들 등은 수현에게 '솔직함'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수현이 사실을 말해도 이들은 거짓말이라 생각하고 외면합니다. 영화에서 ‘솔직함’을 강조한 부분이 궁금합니다. 또 할머니가 ‘신경 끄고 사는 것이 편해’라는 대사를 하는데 영화를 복기해보니 은근 임팩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요... '거짓말'이라는 단어에는 왠지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는 것 같은데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잖아요. 때로는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있죠. 하지만 거짓말은 꼭 자국이 남는 것처럼, 이유를 막론하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재단하는 잣대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사람을 '양치기'라고 단정하죠. 너무 섣부른 판단이라는 생각을 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솔직하지 않다고 해서 나쁜 건 아니잖아요. 

할머니의 대사는 앞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이웃,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에 일에 신경 끄고 사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잖아요. 그런 작은 생각이 모이고 모여, 이런 비극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보고 있어요.

감독님의 단편과 이번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외면을 당하거나 외면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공통점이 보입니다. 이유를 떠나, 자의나 타의를 떠나 이 상황이 벌어지는데 ‘외면’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하네요 

저도 의도하진 않았는데 듣고 보니 그러네요(웃음). 신기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어렵잖아요. 그래서 외면 당하는 것이 정말 서글프고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어려움에 처한 인물들에 마음이 동하는 것 같습니다.

‘익숙하지만 불편한 것’에 시선을 두고 있다는 소개글을 보았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세상이 부자연스러운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 부자연스러움에 사람들은 어느새 익숙해진 것 같고요. 그래서 어떤 화두를 던지면 불편한 말이 되곤 합니다. 요한이란 캐릭터를 만들면서 아이들의 표정에 뭔가 다른 감정을 느꼈다고 아까 말씀드렸는데 이 역시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거지만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쓴 이야기도 그랬고 앞으로의 이야기도 무심결에 지나갈 수 있는 익숙한 것이지만 이야기하기 불편한 것을 꺼내는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사진=마노엔터테인먼트)
(사진=마노엔터테인먼트)

‘어떤 어른이 되어야할지 고민’이라는 본인의 생각이 담긴 영화들인데 영화를 만들면서 어느 정도 생각이 잡히고 있는지요?

아니요(웃음). 아직 모르겠어요.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고 <양치기>를 만들 때까지 저를 가장 크게 지배했던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은연 중에(제가 만든 영화들에) 이 생각이 반영이 됐고 이번 <양치기>에서 가장 크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아이와 어른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어떤 어른이 되어야할 지 고민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그 생각을 담아냈죠.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고민이기는 하지만 필요한 고민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열심히 답을 찾고 있는 중이고 이번 영화를 관객분들이 보시고 제 고민 해결을 도와주십사하는 마음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관객 여러분들도 이 고민을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차기작으로 ‘닮고 싶지 않음에도 닮아가는 핏줄의 무정함을 그려낸 삼대의 이야기’를 준비 중이라고 했는데 특별히 그 이야기를 고른 이유가 있는지? 

올해 초 <양치기>의 후반작업이 끝나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해가 바뀌고,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나니 올해는 부쩍 저 스스로에게 부모님의 모습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특히 어릴 적부터 닮고 싶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닮은 모습을 보니, 참 핏줄이라는 게 무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반대로, 부모 역시 자식이 본인의 어떤 점만큼은 닮진 않길 바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삼대의 대물림에 대해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삼대의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열심히 시나리오를 쓰고 있습니다. 

끝으로 <양치기>를 보실 관객 여러분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어른과 아이의 이야기인데 제가 살면서 느낀 '아이에게 어떤 어른이 되는 게 맞는걸까'라는 고민을 담은 영화입니다. 즐거운 영화도 아니고 명쾌하게 대답을 해주는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를 통해서 같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아이들을 향한 고민을 같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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