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어둠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해적 유토피아'는 낯선데...
[문화산책] 어둠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해적 유토피아'는 낯선데...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4.09.0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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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비엔날레, 보편적인 이야기를 전했으면 하는 아쉬움 남겼다
부산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부산현대미술관. (사진=임동현 기자)
부산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부산현대미술관. (사진=임동현 기자)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9월은 미술 애호가들이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달이다. 전 세계 화랑들이 집결하는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Frieze Seoul)'과 '키아프 서울(Kiaf Seoul)이 서울에서 열리며 부산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등 국제적인 미술 행사도 함께 열린다. 이에 맞춰 문화체육관광부도 '미술주간' 행사를 열어 미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넓히려한다.  서울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열리는 미술의 향연과 국내외 작가들의 만남, 그리고 그에 맞춰 열리는 파티 등은 대한민국을 '미술의 열기'로 이끌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미술시장은 정말 활기가 넘치고 있다. 젊은 관객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각종 유명인들이 직접 작품 활동을 하며 미술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림 시장 역시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미술이 점점 전성기를 맞이하는 느낌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높은 장벽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안목도 물론 중요하지만 미술에 다가가려는 사람들에게 보여줘야할 작가들, 미술 관계자들의 '친절함'이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이 한 이유다. 게다가 미술전이 내세우는 주제 역시 보통 사람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주제를 내놓는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지시 한 '허물'. (사진=임동현 기자)
지시 한 '허물'. (사진=임동현 기자)

지난달 17일 개막한 부산비엔날레의 올해 주제는 '어둠에서 보기'였다. 비엔날레 측은 주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어둠을 두려워하는 대신 어둠의 깊이가 포용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종종 어둠 속에 갇힌 채,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세상의 역학으로부터 벗어나 있습니다. '어둠에서 보기'는 '해적 계몽주의'와 '불교의 깨달음'이라는 개념 사이의 정신적 공간에서 펼쳐집니다. 의외이면서도 서로를 보완하기도 하는 '도망자'와 '사색가'의 길을 포개어본 것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해적 계몽주의'다. 처음 들어본 이들이 많을 것이다. 초기 자치 사회인 '해적 유토피아'의 개념을 빌려왔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규범적인 문화에서 추방된 사람들에게 일종의 피난처 역할을 했으며 다문화적이고, 관용적이며, 젠더 포용성이 높은, 가히 실험적일 정도로 평등한 사회가 바로 '해적 유토피아'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비엔날레는 불교의 '도량'을 포함시킨다.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 공동체 안에서의 겸손을 중시하며, 이러한 태도에 경의를 표해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해적 유토피아와 도량. 이 모두는 해방의 공간이자 의식의 공간이고, 여기서부터 세계의 재구상을 상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차지량 '보이는 모든 것에 무지개가 있는 것처럼'. (사진=임동현 기자)
차지량 '보이는 모든 것에 무지개가 있는 것처럼'. (사진=임동현 기자)

부산현대미술관과 부산근현대역사관, 한성1918과 초량재에서 각각 선보이는 전시물들을 보면서 주제인 '어둠속의 보기'와의 연관성을 계속 떠올려 보았다. 1918년 한성은행 부산지점이 있었던 건물인 한성1918과 한국은행 부산지점이 있던 곳으로 은행이었을 때 사용했던 금고를 그대로 보존한 부산근현대역사관 금고미술관, 60년대 초 부산의 주택을 개조한 초량재를 활용하면서 부산비엔날레는 '부산의 과거'와 함께 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각각의 작품 중에는 분명 눈여겨볼 만한 작품들이 많았다. 전시의 주제처럼 정말 '어둠 속에서 작품을 보고 느껴야 하는' 지시 한의 <나방들>과 <허물>, 다양한 미디어와 소품들, 엽서들 등을 활용해 개인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차지량의 <보이는 모든 것에 무지개가 있는 것처럼>, 참여자들이 낭독자가 되고 그들의 목소리가 하나의 작품으로 형성이 되는 린 치 웨이의 <테이프 뮤직>, 은색의 오브제와 녹색의 식물을 인공적으로 조합해 환경을 만드는 것인지 파괴하는 것인지 분간을 하기 어렵게 하는 우버모르겐의 <은빛 특이점> 등은 인상적이었다.

우버모르겐 '은빛 특이점'. (사진=임동현 기자)
우버모르겐 '은빛 특이점'. (사진=임동현 기자)

난파된 해적선을 표현한 정유진의 <망망대해로>, '자궁의 어둠'을 표현한 한 멍윈의 <밤의 수트라>, 자신의 나체를 카메라 앞에 보여주고 우스꽝스럽게 유럽 문명을 보여주는 올라델레 아지보예 밤보예의 사진 시리즈 <축하>와 <파열> 역시 묵직한 주제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전시를 보면서 우리는 '어둠 속의 보기'를 생각하게 된다. 물론 '어둠'을 없애려면 '빛'이 있어야하지만 '빛'을 얻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봐야하는 시도를 해야한다. 그렇게 전시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내는 것보다는 빛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어둠을 바라보고 극복해야할 지를 묻고 또 묻는다. 

송천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사진=임동현 기자)
송천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사진=임동현 기자)

아마 비엔날레가 내린 답은 부산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송천의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가 아닌가 싶다. 송천은 불화와 더불어 성모 마리아를 불화의 기법으로 표현한다. 그렇게 송천은 관세음보살과 성모 마리아와의 만남을 실현시킨다. 구원자들이 마주보며 이루어내는 화합의 빛. 그것이 어둠을 이기는 것이라고 비엔날레는 설명하는 듯하다.

하지만 기자가 생각한 답은 역시 부산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윤석남의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 시리즈>였다. 이화림, 동풍신, 어윤희 등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윤석남은 대형 벽화로 표현한다. 이 작품을 본 순간 기자는 '어둠 속의 보기'가 가능한 이유를 알아냈다. 비록 세상은 어둠으로 덮여 있지만 어느 곳에서는 은밀하게 '빛'을 만드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은 비록 약하나마 빛을 전하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윤석남이 표현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었고 그들이 전한 작은 빛이 있었기에 어둠 속에서도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윤석남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 시리즈'. (사진=임동현 기자)
윤석남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 시리즈'. (사진=임동현 기자)

좋은 작품들이 전시된 비엔날레지만 두 가지의 아쉬움은 존재했다. 하나는 부산비엔날레이지만 '부산'이 표면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이 전시를 보는 일반 관객들이 과연 '어둠 속의 보기'를 인식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어려운 말들로 씌여졌고 앞에서 말한 '해적 유토피아'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너무나 낯선 존재다.

참고로 지난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는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였다. 자신조차 이방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동조의 마음까지 들게 하는 주제였다. 보편적인 주제, 부산을 한껏 살리는 비엔날레로 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는 올해의 비엔날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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